종점까지 가보는 사람

by 권성선

결혼 전에는 이사를 자주 다녔다.

이삿짐을 풀고 나면, 늘 하는 일이 있었다. 버스를 타는 것이다.

아무 목적지 없이, 그냥 그 버스의 종점까지. 그리고 다시 돌아오는 길까지.

버스 노선을 따라가다 보면 그 지역의 윤곽이 대략 그려진다.

어느 구간은 아파트 단지로 빽빽하고, 어느 구간은 오래된 골목이 남아 있다.

사람들의 얼굴, 간판의 글씨체, 정류장의 이름 하나하나가

새로운 삶의 경계를 가늠하게 해준다.

대구에서는 공장단지를 가로질러 종점까지 가보았다.

대전에서는 유성 온천을 지나 산자락까지

안양에서는 평촌을 벗어나 논밭이 남은 외곽까지.

서울 마포에서는 마을버스를 타고 어디쯤이 내 생활권이 될지 가늠했다.

누군가는 짐을 풀며 집 안을 꾸미지만

나는 버스를 타며 마음의 지도를 그렸다.

이사란 단순히 주소를 옮기는 일이 아니라

나를 둘러싼 세계의 범위를 다시 정하는 일이다.

버스 종점에서 내릴 때면 늘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제 이곳의 끝을 봤으니 다시 시작할 수 있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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