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주가 마시고 싶던 날

by 권성선

작년 이 무렵, 페이스북에 짧은 글을 남겼다.
“독주가 마시고 싶다.”
짧은 문장 안에 그날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 무렵, 엄마가 우연히 친고모와 통화를 하게 되었다.
몇십 년 만의 통화였다고 했다.
그런데도 고모는 마치 어제도 통화했던 사람처럼 반가워했고,
대화는 자연스럽게 생부의 근황으로 흘러갔다.

엄마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 사람 아들이 얼마 전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대.
그래서 폐인처럼 지낸다더라.”

순간, 공기가 멈춘 듯했다.
내가 모르는 누군가의 죽음.
그 사람은 내 아버지의 또 다른 자식이었다.
그러니까 나에게는 이름도, 얼굴도, 목소리도 모르는 동생이 있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동생은 이제 이 세상에 없다.

길에서 마주쳐도 알아보지 못할 사람들.
생부는 초등학교 때 두어 번, 고등학교 때 두어 번,
대학 졸업 후 두어 번쯤 더 본 것이 전부였다.
그마저도 어색함과 불편함이 뒤섞인 만남이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렇게 떠났으면, 잘 살 것이지...
그래야 두고두고 원망이라도 하며 살 텐데.”

입 밖으로 내지 못한 말이 오래 머물렀다.
그 사람의 여자가 아이들만 두고 떠났고,
그는 혼자서 두 남매를 키우며 살아왔다고 했다.
그 아이들이 그의 전부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 중 한 아이가 세상을 떠났다니
그의 삶을 상상하니 마음 한켠이 묘하게 저려왔다.

며칠 전, SNS가 알려준 ‘과거의 오늘’에서
그때의 문장을 다시 보았다.
“독주가 마시고 싶다.”

그 문장을 보는 순간 묵혀 두었던 감정들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서운함, 슬픔, 미움, 그리고 어쩌면 가장 오래된 그리움 같은 것들.

이제 와 생각해보면
나는 술을 마시고 싶었던 게 아니라
그 감정들을 삼키고 싶었던 것 같다.
입안에서 타는 듯한 알코올처럼
쓴 마음이 천천히 내려가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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