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주로를 걷는 시간

by 권성선

어제 길을 걷는데, 문득 얼마 전 활주로를 달리던 비행기가 떠올랐다.

커다란 몸체를 이끌고 지면을 오래 달리던 비행기.

그 순간만 놓고 보면, 비행기는 그저 땅 위를 미끄러지듯 달리는 존재처럼 보였다.

하지만 나는 안다.

비행기가 활주로를 달리는 이유는 결코 그곳에 머물기 위함이 아니라는 것을.

비행기는 한참을 달린 뒤에야 비로소 떠오른다.

그 긴 거리와 반복되는 진동을 견뎌야만 높은 상공으로 올라갈 힘을 얻는다.

활주로는 목적지가 아니라 준비의 시간이다.

요즘의 내 삶도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크게 달라진 것 없는 하루들,

평지만 걷는 듯한 나날들.

어디에도 날아오르는 장면은 없고 눈에 띄는 변화도 없다.

그래서 가끔은 묻게 된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하지만 문득 깨닫는다.

지금 이 시간이 이 걸음들이 어쩌면 나만의 활주로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보이지 않게 속도를 쌓고, 보이지 않게 근육을 만들고 있는 시간.

날아오르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니라 아직 달리고 있는 중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 쉽게 잊는다.

비행기는 날기 위해 달린다.

그리고 그 달림은 겉으로 보기엔 지극히 평범해 보인다.

오늘도 나는 걷는다.

아직 날지는 못했지만, 분명 어딘가로 향하고 있다는 믿음 하나를 안고서.

작가의 이전글알고리즘이 보여준 나의 요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