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의 나는책을 읽고 나면 사람을 만나야 했다.
읽은 문장을 입 밖으로 꺼내고, 서로의 생각이 부딪히는 자리에서
내 안이 다시 채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야 생기가 도는 사람 같았다.
그땐 몰랐다.
그 방식이 나의 전부는 아니라는 걸.
요즘의 나는 다르다.
책을 읽고도 굳이 말을 붙이지 않는다.
혼자 음악을 들으며 걷고, 음악을 틀어놓은 채 멍하니 앉아 있고,
작업하고, 읽고, 쓰고, 아무도 없는 시간 속에서 오히려 마음이 고요해진다.
이 변화가 고립은 아니라는 걸 나는 안다.
외로움도 아니다.
에너지가 말라버린 것도 아니다.
아마 에너지가 순환하는 방향이 바뀐 것뿐일 것이다.
예전에는 밖으로 흘려보내야 다시 돌아왔던 에너지가 이제는 안에서 충분히 머물렀다가 천천히 흘러나온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공감받지 않아도, 이미 나 스스로에게 충분히 닿아 있으니까.
혼자 있는 시간이 좋아졌다는 건 세상을 밀어낸다는 뜻이 아니라
나를 놓치지 않게 되었다는 뜻에 가깝다.
이제 나는 안다.
사람들 사이에서 반짝이던 시절의 나도 진짜였고,
고요 속에서 충전되는 지금의 나도 진짜라는 걸.
삶은 한 가지 방식으로만 살아야 하는 게 아니었다.
에너지는 늘 움직이고, 그 흐름이 바뀌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성장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음악을 틀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나에게로 천천히 돌아온다.
이 시간들이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