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은 내가 아주 오래전에 알았던 감정과 너무도 닮아 있었다.
말투도, 걸음걸이도, 눈빛도 아니었다.
그를 둘러싼 색이 정확히 내가 한때 품고 있던 감정과 똑같았다.
서점 근처 카페에서 낯선 남자가 혼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햇살이 그를 비스듬히 감싸고 있었고,
그의 주위에는 붉은빛이 섞인 회색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그 색을 안다.
그건 자책과 미련, 그리고 꺼내지 못한 말이 뒤섞인 색.
예전에 나도 그런 색을 안고 살았었다.
지우려 할수록 더 진해졌던 그 시절 내 마음의 색이었다.
그에게 시선이 자꾸 갔다.
그가 겪고 있는 감정을 내가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나 스스로가 아직도 그 감정을 다 벗지 못했기 때문일까.
그는 커피잔을 손끝으로 돌리다 문득 시선을 들었다.
우연히 시선이 마주했다.
나는 얼른 고개를 숙였다.
돌아오는 길,
마음이 복잡하게 흔들렸다.
그를 보며 느낀 건 ‘공감’이었을까,
아니면
‘지나간 나’를 투사한 감정의 착시였을까.
감정을 본다는 건
그 감정에 빠질 위험을 안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는 그 사실을 오늘 처음 실감했다.
서점 남자와 함께 있는 시간은 차분하고 따뜻했다.
하지만 오늘 그 낯선 감정은 나를 미묘하게 어지럽혔다.
나는 두려웠다.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그 안에 내 감정을 끼워 넣는 습관이 생긴 건 아닐까.
감정을 ‘본다’는 건,
가장 먼저 상처 입는 사람이 나일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감정이 진짜인지, 내 안에서 만들어낸 환영인지는
오직 시간만이 가르쳐준다는 걸
조금씩 배우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 하루,
누구의 감정도 읽지 않기로 했다.
눈을 감고, 내 마음의 소리를 먼저 듣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