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 나는 잠들 수 없었다.
기억 속 짙은 남색이 마음을 오래도록 흔들어놓았다.
마음속 어딘가에 고요히 가라앉아 있던 감정이
천천히 위로 떠올라,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었다.
입을 열면 울 것 같았고,
그래서 나는 펜을 들었다.
서점 남자에게 편지를 쓰기로 했다.
그에게 건네고 싶은 말이 있었고,
그에게는 아마, 말보다 글이 더 자연스러운 방식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나도 그랬으니까.
처음엔 몇 줄 쓰다 찢었다.
다시 쓰고, 또 멈추고, 다시 접었다.
그러다 결국, 아주 짧고 단순한 문장을 남겼다.
“나는 감정을 볼 수 있어요.
그래서 오히려, 제 감정에는 오래도록 눈을 감고 있었던 것 같아요.”
다음 날, 서점 책상 위에 조심스럽게 그 쪽지를 남겼다.
기다리지 않으려 했지만, 마음 한편이 자꾸 들떴다.
그가 보았을까, 읽었을까,
어떤 색으로 받아들였을까.
그리고 며칠 뒤,
내가 읽고 있던 시집 속에서
한 장의 편지가 툭, 떨어졌다.
“저는 감정을 말로 설명하는 게 늘 서툴렀어요.
하지만 누군가가 제 감정을 '알아봐 준다'는 걸 처음 느꼈을 때,
그 감정은 말이 되지 않아도 괜찮아졌어요.
그날 당신 눈에 비친 제 색이 어떤 빛이었을지 궁금합니다.”
편지를 다 읽고 난 뒤,
내 마음 한 구석이 조용히 덜컥 무너졌다.
나는 누군가의 감정을 이해하려 애썼지만,
누군가가 내 감정을 이해하고 싶어 한다는 걸
처음 실감한 순간이었다.
그 밤, 나는 다시 한번 그를 떠올렸다.
회색빛 하늘 아래,
책을 넘기던 그 조용한 손끝.
그의 말 없는 위로.
그 기억은 내 안에 부드럽고 따뜻한 회색으로 남아 있었다.
말로는 설명되지 않는 감정,
그러나 분명히 ‘존재하는 감정’.
우리는 아직, 서로를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조금씩,
서로의 색을 배워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