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초록빛 위로

by 권성선

그날, 나는 조금 지쳐 있었다.

누군가의 짙은 슬픔을 보고 난 뒤엔
늘 그렇듯 마음 한켠이 무겁고 서늘해졌다.
감정을 본다는 건 때때로
그 아픔의 일부를 함께 짊어지는 일이니까.

카페에 앉아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다
문득 떠올랐다.
그 서점.
그 사람.
그리고 그가 말해준 내 색.
“안개 낀 새벽 같아요. 조용하고, 외롭고… 그래서 더 소중한 색.”
그 말이 요즘 따라 자꾸만 마음을 건드렸다.


서점에 도착했을 때, 그는 자리에 없었다.
나는 조용히 익숙한 책장을 돌며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그의 자리에 놓여 있던 작은 종이컵.
따뜻한 허브티 한 잔과 책갈피처럼 꽂혀 있던 쪽지 하나.

“오늘의 당신에게 어울릴 것 같아서요.
마음이 조금 가벼워지길 바라며.”

나는 허브티를 조심스럽게 들어 올렸다.
손끝에 닿는 온기,
차 안에서 은은하게 퍼지는 향,
그리고 내 앞에 조용히 놓인 말 없는 위로.


그 순간, 내 앞에 아주 부드러운 초록빛이 번지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나를 향해 건넨 마음이
형체 없는 연두빛으로 퍼져나갔다.
그건 무겁지도, 화려하지도 않은
그저 조용히 마음을 감싸주는 색이었다.

나는 그 빛을 오래 바라보았다.
스스로의 감정을 알아차리고,
그 감정에 누군가가 다정히 닿아주는 순간이
이토록 따뜻할 줄은 몰랐다.


언제나 감정을 읽기만 했던 나는 그날 비로소 처음
감정을 받아본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알게 되었다.
위로란, 거창한 말이나 행동이 아니라
어쩌면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온기를 조금 나누는 것.
상대가 말하지 않아도, 조용히 그 곁에 남는 일.


그날의 초록빛은 오래도록 내 마음 안에 머물렀다.
봄날 어린 싹처럼, 조용히 숨을 쉬며.

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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