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색을 잃은 저녁

by 권성선

그날 서점은 유난히 조용했다.

책장의 나무 냄새도,
창문 틈새로 스며드는 햇살도
평소와 다르지 않았지만
나는 이상하게 낯선 기분에 잠식되어 있었다.

그는 내 옆자리에 앉지 않았다.
멀찍이 떨어진 의자에 앉아 책을 펼쳤고,
우리 사이에는 무언의 공간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나는 그의 감정을 보려 했다.

늘 그렇듯, 색으로 말하는 그의 마음을 읽고 싶었다.
하지만 오늘의 그는
무지갯빛이 아닌,
희미하게 번지는 연기 같았다.

명확하지도 않고,
잡히지도 않고,
따뜻하지도 차갑지도 않은 색.


며칠 전,

그에게 내 마음을 조금 더 보여주고 싶어
책갈피 속에 짧은 쪽지를 남겼었다.

“당신 옆에 있으면,
나는 나 자신이 어떤 색인지 조금씩 알게 되는 것 같아요.”

하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쪽지에 대한 답도,
그날 이후의 눈빛도
어딘가 미세하게 멀어져 있었다.

사람의 감정은 항상 동시에 흐르지 않는다.

나는 연결되었다고 느끼는 순간에도
상대는 멀어지고 있었을 수 있다.
그 불균형이 오늘 내 마음을 가장 깊게 흔들었다.


서점의 조명이 꺼지기 전,

나는 조용히 책 한 권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나는 알았다.
그 역시
지금은 자신의 마음을 정리하는 중이라는 걸.


집으로 돌아오는 길,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아스팔트 위에 비친 네온사인이
무지갯빛으로 번졌다가
이내 금세 사라졌다.

그 빛은 마치 우리 사이에 잠깐 떠올랐다가
조용히 흩어진 감정 같았다.


모든 색이 항상 찬란하지는 않다.

때때로 무지개도 흩어지고,
마음은 제 색을 잃는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 모든 색의 소멸은
또 다른 빛을 품기 위한 준비일지도 모른다는 걸.

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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