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바웃 타임’을 보고서
나온 지 꽤 지난 영화를 봤다. 어바웃 타임, ‘시간에 대하여’라는 제목이다.
가지고 싶었지만 준비 부족이나 실수로 못 가졌던 순간들을, 그 이전 시간으로 돌아가서 다시 해볼 수 있다면! 우리 삶은 어떻게 변하게 될까? 현실에서는 결코 일어날 수 없는 환상이다. 시간을 더듬어 되돌아 간다.
순진한 주인공이 성인이 되는 날, 아버지는 아들에게 가족의 비밀을 알려준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는 것이다. 주인공은 첫사랑을 이루어 보려 시간을 되돌려본다. 어떠한 과정을 거쳐도 그녀와는 맺어지지 않는다.
대도시로 나온 그는 ‘블라인드 카페’라는, 눈을 가리고 모르는 상대를 만날 수 있는 술집에서 만난 ‘메리’와 몇 번의 시간 되새김질을 하면서 사귀게 되었다. 동거를 하고 있는 와중에도 사랑에 대한 확신이 없어 보인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편안함일까? 아니면 안정감? 눈이 하얗게 돌아가버릴 정도의 끌림이 있어야 사랑일까? 그에게서는 그러한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어느 날 이루지 못한 첫사랑을 만나게 되는데, 시간을 되돌려 몇 번을 만나지 않으려고 해 보았지만, 결국 만나게 되어 저녁을 먹게 되었고 그녀의 집 앞에까지 바래다주었다. 그녀는 그와 함께 방에 들어가 커피나 한잔하자며 유혹하는데, 그 순간 그는 잘 자라는 인사와 함께 뛰기 시작한다. 그의 방에서 자고 있는 지금의 그녀가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알게 된 거다. 마침내 청혼을 한다.
고치고 고치며 내 삶을 살아낼 수 있다면, 나에게 그것은 어느 때 일까? 좋아하는 여학생에게 고백을 했었던 순간일까? 대학입시 시험이나 대기업 면접 때였을까? 이가 빠져 임플란트를 하면서? 손가락 인대가 끊어졌을 때?
그때 그 순간에 다시 그 원인을 찾아서 돌아갈 수 있다면 고치고 또 고치며 살고 있을까? 우리가 하고 싶은 대로 바꾸어 가며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다시는 삶을 되살지 않고, 지금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이 순간의 행복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애쓰며 삶을 즐기는 주인공의 깨달음으로 끝이 난다.
사람이 그렇다. 고칠 수 없는 시간의 쳇바퀴에 던져져 땅을 치며 후회하거나, 이불속을 걷어차는 쪽팔린 순간들을 가지고 산다. 그렇게 시간을 쌓고 쌓아 살아온 우리네 삶은 주인공의 삶 못지않게 다채롭고 흥미롭다. 더한 진지함으로, 아득한 외통수로 내몰리고서도 지금 여기까지 온 것이다.
고치고 싶은 순간은 많지만, 그렇다고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내가 가지고 있는 이 상태를 들여다보고 건강한 몸, 사랑스러운 가족, 풍족하지는 않으나 배곯지 않는 월급.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까레리나’의 첫 문장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행복한 가정에는 있는 무엇 하나라도 없으면 불행한 가정이 된다. 가족의 기둥인 아빠가 아프다면 어찌 가족이 행복할 것인가? 가족이 돈이 없어 배를 곯는 것을 보는 상황에서는 그러한 상태를 벗어나는 것보다 큰 사명은 없을 것이다.
‘안분지족’, 현재 내 모습에 만족하지 못하는 현대인의 욕심을 조금 내려놓으면,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진면목으로 삶을 사랑하며, 즐길 수 있는 지경에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주인공은 잠깨기 싫은 아침에 아내의 ‘내려가서 아이 봐야겠어’하며 걱정하는 말에 자신이 하겠다고 하며, 유치원 가는 큰 딸, 세 살짜리 둘째, 막 돌이 지난 셋째까지 요리하고, 먹이고, 유치원까지 데려다주며 영화는 끝을 맺는다.
삶 속에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나에게는 아직 남아 있어, 이러한 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두렵고 막막한 삶이지만 여기 이 자리에서 내가 가진 것들을 다시 살펴본다.
한 시간 짜리 영화이지만, 많은 위로를 주는 영화다. 주인공들의 결혼식장에서 울려 퍼지는 칸초네 ‘일몬도’는 나를 위로한다. 힘들 때 다시 듣고 싶은 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