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어진 곰솔, 그들은

인간의 시간

by 봄빛

울산의 수필가인 설성제의 세번째 수필집 ‘소만에 부치다’를 집어들었다. 가볍게 뒤적이다 ‘방어진 곰솔’에 멈췄다.


인간은 시간을 만들었다. 무한하게 이어지는 연속선 속에 아침과 저녁, 봄과 겨울과 같이 감각으로 느낄 수 있는 흐름을 나누고 찾아서 시계 속으로 집어 넣었다.
세밑이다. 일년의 끝과 시작이 함께하는 시간 상의 한 점에 도달해 있다.
의식적으로 점을 찍으며, 나누어 분기한다. 어제의 나를 작년의 나로 만든다. 내일의 나는 한 살 더먹은 나이든 이가 된다. 바뀌는 것은 내 머리 속.
방어진 곰솔하면 어느 뜨거운 여름이 떠오른다. 일산해수욕장에 갔다. 바닷물이 너무 차가워 들어가지는 못하고 햇살을 피해 송림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방어진 솔밭은 높고 우거져 시원했다. 솔내음과 함께하는 바람은 나를 휘돌아 열을 내려주었다. 싱그러운 기운이 넘실거렸다. 생동감은 싱싱함이었다. 소나무는 몇 백 년을 이어왔던 모양대로 힘이 있었다.



전국의 소나무들이 병충해에 시들고 있다. 방어진 송림도 피하지 못하나 보다. 붉게 타들어간 가지는 잘려나간다. 밑둥만 덩그러니 남아 뿌리가 드러나는 나무들은 애처럽다. 푸른 동해를 닮아 늠름한 곰솔들이 하얗게 표시된다. 죽은 가지들이 제거되고나면 하얀 띠로 테두리쳐진다. 노란 별을 가슴에 달고 아우슈비츠행 열차를 타기 위해 기다리는 유대인들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은 멸종의 예감일 것이다.
인간이 호모사피엔스로서 없애버린 종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또다른 종이 사라져가는 와중에 자신들만이 보호할 수 있다는 듯, 처치하고 솎아내는 모습은 보기에 불편하다. 인간이 지배하는 생태환경 속에서 이루어지는 일면을 들여다보게 한다. 인간이 보기에 좋은 나무들만 남지 않았을까? 그로 인해 이전에는 다른 양상으로 존재할 수 있었던 벌레들이 해충이 되어버린다. 해롭다는 것은 이롭다는 것이 있을 때에만 드러나는 것이다. 인간의 오만이다.
시간은 어떠한가? 우리 조상들은 이십사절기를 나누었다. 달의 차오름과 절기의 변화가 잘 어울린다. 소만은 입하가 지난 늦봄 초여름이다.
인간이 만든 시간은 작물을 키우는데 중요했다. 어느 시점에 씨를 뿌려야하는지, 거두어야하는지 하는 것은 정착생활을 하는 농경민족에게는 가족들의 생계가 걸려있는 중요한 문제였고 삶과 직결되었다.
이제 우리는 스마트폰 시계를 보며 약속을 한다. 언제 만나자고 하면 네트워크에서 맞추어진 스마트폰의 동일한 시간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바야흐로 네트워킹 사회이다. 도로 위 차들이 지구 상공 궤도의 인공위성 지피에스를 이용해 네비게이션으로 연결되어 있듯이 인간들은 시간으로 이어져 있다.
이어짐은 분절을 낳는다. 이어져 있기에 끊어짐을 맛보는 것이다. 관념적으로만 느낄 수 있던 소외가 감각적으로도 느끼게 될 것이다.
시간의 분기점에 들으서며 인간의 오만을 보게되니 새삼스럽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것이 인간을 파멸에 이르게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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