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풍경

남해 독일마을에서

by 봄빛

남해다. 여기는 장모님 혼자 옛집을 지키고 있다. 추석 때 온 것 만 스무 번을 넘지만 마을 밖을 나선 일은 몇 번 없었다. 관광지로 유명한 곳을 제대로 다녀보지도 않았다. 시간 여유가 없다는 핑계였다. 자식 걱정에 장모님이 자주 다니던 재가 사찰에 가서 운수를 보거나 부적을 받기 위해 나선 길 뿐이었다.
이번 추석은 금요일이라 월요일 휴가를 내어 처가를 방문하는 마음이 추석 저녁 보름달처럼 여유로운 마음으로 가득했다. 추석날 차례 지내고 부리나케 남해로 왔지만, 나와 처지가 비슷한 손위 처남들은 벌써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 혼자 계신 집에 다시 온기가 들어찬다.
토요일 하루가 온전히 비었다. 뭘 할까? 독일마을이 색다르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곳에 가자고 하니 아이들과 아내가 좋다고 한다. 남해 거주하는 장모님은 볼 것도 없다며 안 간다 한다.
섬 초입에 위치한 처가에서 독일마을까지는 이십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다. 독일로 가서 젊음을 모두 보내고 외국인 배우자와 함께 돌아온 늙은 간호사, 광부들의 집이 바다가 보이는 따뜻한 섬마을에 정착한지도 벌써 스무 해가 다 되어간다.
멀리 언덕 위로 차들이 늘어서 있다. 갓길에 주차된 차들과 그 사이 좁은 길로 이동하는 이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는 광경은 남해에서는 보지 못한 모습이었다. 제대로 된 관광지에 온 기분이다.
정상에 위치한 남해 파독전시관 주차장은 들어갔다 떠밀려 나온다. 전시관에는 들어가 볼 엄두를 못 낸다. 조금 내려가니 사람들이 많이 걸어 다닌다. 펜션과 맥주집, 카페가 늘어서 있다. 아래쪽으로 내려오니 독일식 맥주집이 크게 자리 잡고 있다. 주차장이 넉넉하다. 여기에 차를 댄다.
아이들과 아내가 붉은 지붕들 사이로 내려다보이는 바다 풍광을 사진 속에 담으려 여념이 없다. 자기 모습을 찍거나 언니, 동생과 함께 포즈를 취한다. 장삿집 안에도 사람이 많다. 터가 넓어 그런지 여섯 명 자리를 쉽게 찾았다. 아이들 식성의 독일식 햄버거, 핫도그와 내가 먹고 싶던 맥주, 소시지를 주문했다. 늦은 아침이다.
어디를 가던지 맛있는 기억이 그곳을 좋은 추억으로 남게 한다. 보잘것없는 우리의 기억에도 각인되는 것은 냄새와 맛으로 이루어진다. 여행을 다닐 때 잘 먹어야 하는 이유이다.
육십 년대와 칠십 년대를 관통하는 시기에 독일로 향했던 파독 광부, 간호사가 이곳으로 온 것은 2002년이었다. 남해군에서 터를 제공했다고 하는데, 이후 조금씩 알려지며 지금처럼 자리를 잡았다. 삼십 년간 해외에서 생활하고 돌아온 이들에게 한국에 남은 가족과도 거리가 생겼을 것이다. 그들끼리 모여 그들만의 정서로 살아내 온 이십 년이 이 마을을 두 문화의 경계에서 접점으로 작용하며 상승효과를 내고 있는 것일 것이다.
삶을 살아내어 온 이들에게는 힘이 있다. 슬픔과 두려움, 고단함을 이겨내는 것은 희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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