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양보

SRT에서

by 봄빛

에스알티에서 앞자리에 노인부부가 젊은 사람이 양보가 없다며 한소리 한다. 남편이 먼저 일어나서 투덜거리며 뒤로 이동한다. 그런데도 젊은이는 자리를 비켜달라고 아내에게 요구한다. 그녀의 입에서도 남편과 똑같은 말이 한마디도 틀리지 않게 들려온다. 여자가 옆자리로 옮겨 앉고 청년은 무릎 앞 좁은 틈을 지나 창가 좌석에 앉았다.

버스에서나 지하철에서 양보를 미덕으로 삼던 때가 있었다. 버스에는 이제 노란색이나 분홍색 좌석을 지정해 놓았다. 경로석이기도 하고 임부석이기도 하다. 젊은이들은 그쪽에 잘 앉지 않는다. 내리기 편한 곳이라 몸이 불편한 사람들에게 공식적으로 지정하여 양보를 실시하고 있다.

노인부부의 시선은 알겠다. 버스에서 처럼 공식적이지는 않으나, 자신들이 나이가 들었으니 조금은 당연하다는 듯이 배려를 바란 것이다. 표를 구입하는데 자리는 없고 떨어져 앉아가기는 싫은 마음이다.

젊은이들이 조금만 불편을 감수하면 나이 든 이들이 편해지는 것이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양보를 하고 뒷자리 복도 쪽 좌석으로 갈까? 사람들 이동에 불편하고 들고나는 사람들 때문에 자리를 폈다 접었다 해야 하는 게 싫어서 창 측을 예매한 거였는데..

자리를 양보해도 문제다. 양보해준 상대가 어디서 내리는지 모른다. 그 사람들이 일어나면 또 내 자리 찾아 이동해야 한다. 이동하면서 쉬려고 해도 마음 편하게 쉬지 못하고, 딴 일을 한다고 해도 신경이 쓰일 것이다.

나도 아마 양보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사람 앞에 두고 험담을 한다면 나는 한 소리하지 않았을까?

내가 아직 젊은가? 내가 나이 들어서 저런 모습이면 어떨까?

변화에 능동적이지는 않아도 따라는 가야겠다. 가랑이 찢어져도, 힘이 들어도..

나를 지키는 것은 외적으로도 내적으로도 나만이 가지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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