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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빛 May 19. 2021

김초엽 ‘관내분실’을 읽고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나의 데이터 목록을 지워줘” 아내가 죽기 전 남편에게 유언을 남긴다. 산후우울증으로 남편과 딸과 아들과도 관계 맺기에 실패한, 정신병원에 들어가기까지 한 여인이 자신의 기록을, 기억을 찾아올 수 있는 봉안함과도 같은 디지털 도서관의 목록을 지워달라고 한다.

  어느 미래, 사람들의 뇌 속 시냅스와 전기신호들이 모두 기록되어 들여다보면 죽기 전의 그 사람과 만날 수도, 이야기할 수도 있는 시절이다.

  관내분실은 무덤에서 관을 아무도 모르는 곳에 옮겨놓은 행위와 비견되는 일이다.

  결혼 후 아이에 구애 없이 살던 화자는 갑작스러운 임신에 혼란스럽다. 애증으로 관계가 끊어지다시피 했던 돌아가신 어머니가 궁금해진다  

  요즘은 디지털도서관이 있어 사자와 이야기를 할 수 있어 다행이다. 돌아가신 후 한 번도 찾지 않았던 디지털도서관에 와서 찾아본 엄마는 목록에서 사라져 있었다. 갑작스러운 민원으로 정황을 파악한 도서관에서 아버지가 목록을 삭제해 달라고 했다는 것을 알았다. 이제야 궁금해진 엄마를 다시는 볼 수 없는 것일까?

  지문처럼 그녀를 특정할  있으면 그녀를 찾을  있다. 그런데, 살아있을 때조차 끊어지다시피  관계를 사후에 찾아본들 찾을 수 있을까?


  며칠 , 아내의 투정에 들었던 생각이 관계와 관심인데, 문득 겹쳐진다. 나는 아내에게 어떻게 대했던가, 시집와서 직장에서의 당찬 모습을 버리고  명의 아이를 기른다고 이십 년은 지나버린 그녀의 젊은 시절을..


  ‘김은하’라는 이름의 그녀는 산후우울증에 딸에게 감정을 투사했을 것이다. 그것을 받는 딸은 온 세상과 다름없이 큰 엄마의 그 감정을 고스란히 받고 결국엔 도로 튕겨내었을 것이다.

  지워달라는 목록의 그녀는 남편과 아이들에게 매몰되어 버린 시간들을 버리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괜스레 찡해진다. 아내에게 사랑한다고 문자를 보냈다. 즉시 전화가 왔다. 무슨  있냐고. 아무 일도 아니라고 당신을 사랑한다고.


  엄마와 마찬가지로 멀어져 버린 아버지를 찾아간다. 엄마가 누구였는지 아무리 찾아도 자료가 없다. 엄마의 유품은 그대로 다락에 있었다. 육아와 요리책들, 그리고 엄마가 좋아했던 책들. 어디에 내어놓아도 엄마를 특정할 수 없다.

  다시 찾은 아버지에게 엄마는 어떤 사람인지 되물을 수밖에 없다.

  그 찾아가는 과정이 절박하다. 생명을 품는 것은 그만큼이나 위대하다. 자신이 전혀 생각해보지 않은 것까지 수용하게 한다.


  베란다  산책로엔 엄마와 아기가 지나간다. 신기한 것을   꺄악 하는 아장아장 걷는 아기와  아이를 어르는 엄마가  눈을 잡아끈다.


  마침내 아빠에게서 단서가 나왔다. 디지털화로 책이 없어질 무렵 책 표지 다자이너였던 김은하의 이름으로 된 책 표지들. 엄마의 책장에는 그녀가 디자인 한 책들이 꽂혀있었다. 그녀의 지문을 찾았다.

  엄마를 찾은 지민이 엄마에게 말한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엄마를 이해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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