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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빛 Oct 29. 2021

‘노자가 옳았다’를 읽고

도올과 노자

도덕경道德經은 노자가 2600년 전 저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비한 인물로 묘사되기도 하지만,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젊은 시절 공자가 노자를 만났다고 기술해 실존인물일 가능성이 크다. 도덕경은 도경과 덕경 두 부분으로 나뉜다. 도경은 우주의 원리를 비롯해 이론적인 배경을 중시한다면, 덕경은 현실 세계를 통치하는 군자의 입장에서 표현하고 있다. 도올(역자)이 본을 삼은 책은 왕필이라는 노자 사후 5백 년이 지난 시점의 인물의 해설인데, 역대 가장 뛰어난 노자 해석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왕필의 시절에는 덕경이 도경의 앞에 있어, 덕경의 첫 장 해설에 많은 노고를 기울였다. 이 장은 ‘숭본식말崇本息末’이라는 한마디로 요약된다고 왕필은 말했다. 뿌리를 존중함으로써 말엽의 가지들을 번식하게 한다는 의미이다. 삼국지의 전란이 마무리되는 시기를 살아간 왕필은 근본이 망각되어 가는 전란의 시대를 살며 문명의 허세를 버리고 근원, 근본으로 돌아가자는 노자의 사상에 깊은 공감을 느꼈을 법하다.


덕경의 첫 장에 있는 표현으로 불거기박不居基薄, 불거기화不居基華, 거피취차居彼取此 등과 연계하여 숭본식말을 이해할 수 있다. ‘그 어미를 지킴으로써 그 자식들을 보존하고, 그 뿌리를 숭상함으로써 그 말엽의 가지들을 번성하게 하면, 그 형과 명이 다 함께 있어도(현실세계를 말함) 사특함이 생겨나지 않고, 하늘에 짝할 정도의 큰 아름다움이 있어도 화려한 허상이 설치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 어미는 멀리할 수 없는 것이요, 그 뿌리는 잃어버릴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해석이 되는데, 도경의 첫 장 논의에 비하여 덕의 논의는 한 차원이 낮다. 왕필의 주석대로 덕德은 득得(얻음)이며, 개물個物의 도道로부터 얻어 자신의 몸속에 축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덕 또한 도를 본받는 것이므로 도의 덕성을 다 지니게 된다. 도의 세계는 우주론적이고 인식론적이고 가치론적이라고 한다면 덕의 세계는 아무래도 개체의 삶, 즉 인생관의 문제, 또 치세治世 즉 정치론의 문제, 또 정치의 핵심인 전쟁의 문제 등등에 밀집되어 있다.


그럼 다시 도경의 첫 문장으로 돌아가 보자. ‘도가도道可道 비상도非常道’ 도를 도라는 언어 개념 속에 집어넣어 버리면, 그 개념화된 도는 항상 그렇게 변화하고 있는 도의 실상을 나타내지 못한다라는 뜻으로 풀이했다. 여기에는 변화하는 도의 실상(항상 그러한 도)을 긍정하고 있다. 언어 개념 속에 밀폐된 관념적 불변의 도를 부정한다. 노자는 변화를 긍정하고 불변의 허구성을 부정한다. ‘도가도’의 고정성, 관념성, 연역성, 제약성을 버리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상도常道에로 회귀하려 한다. 상도는 영원히 변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공간화된 시간성”의 성격을 거부한다. ‘도가도’를 파기하는 인간의 행위는 끊임없는 과정 속에 놓이게 된다.


이에 대한 거부는 결국 인간의 언어에 대한 불신을 내포한다. 그리고 언어를 구사하는 이성의 능력도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다.


도가도道可道 비상도非常道, 명가명名可明 비상명比常名 : 이제 한 단계 더 나아가 보자. ‘이름을 이름 지우면 그것은 늘 그러한 이름이 아니다.’로 해석되는 두 번째 문장의 가장 핵심적인 두 대립 개념을 명名과 상常으로 파악한다. 명은 고착이요 규정이요 제약이다. 방편으로서만 유용한 것이다. 이 명과 짝을 이루는 지고의 개념은 도道가 아니다. 상이라고 본다. 사실 “도덕경”은 도와 덕을 말하는 경전이 아니라, 상을 말하는 경전이 된다. 상은 변동이요 변화요 생성이요 무제약적인 것이다. 상은 관념이나 개념이 아닌 물 그 자체의 창발이다.


노자 1장에 대한 요약은 상 혹은 상도, 그 한마디로 귀결된다. 그것은 변화의 부정의 부정이며, 시간의 긍정이다. 시간을 초월하는 어떠한 실체도 부정되는 우주를 노자는 피력하고 있다.


도경과 덕경의 첫 문장에서 전체 도덕경의 대의를 짚어보았다. 어려운 철학적 사유를 정리하였기에 쉽지 않지만, 2600년을 이어오며 현재까지 전승되고 있는 노자의 힘을 느꼈다.

 

노자는 회자되는 많은 상구를 가지고 있다. 어디선가 본 듯한 말들이다.


- 도가도道可道 비상도非常道, 명가명名可明 비상명比常名을 시작으로

- 사민부쟁使民不爭 : 백성들로 하여금 다투지 않게 하라

- 천지불인天地不仁 : 천지는 인자하지 않다

- 곡신불사谷神不死 : 여성의 현존재의 특성을 우주론적으로 예찬한다

- 천장지구天長地久 : 천지의 장구함에서 성인의 행동의 준거를 찾는다

- 상선약수上善若水 :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 물을 빌어 도의 덕성을 알려준다

- 공수신퇴功遂身退 : 공이 이루어지면 몸이 물러난다. 허의 인생론을 말한다

- 장이부재長而不宰 : 자라게 하면서도 자라는 것을 지배하지 않는다

- 당기무當其無 유실지용有室之用 : 그 방의 빔에 방의 쓰임이 있다. 존재의 기능성을 규정한다

- 거피취차居彼取此 : 그것을 버리고 이것을 취한다. - ‘저것’은 관념적 허구이며 형이상학적 폭력이며 감각적 허황이다. ‘이것’은 나의 일상적 현실이며 나의 생명 중추가 느끼는 실재이며 이 세계의 번뇌이며 보리이다

- 총욕약경寵辱若驚 대환약신大患若身 : 총애를 받거나 욕을 당하거나 다 같이 놀란 것 같이 하라. 큰 환란을 귀하게 여기기를 내 몸을 귀하게 여기듯 하라. - 인간이 몸을 가지고 있어 자기 신체를 귀하게 여겨 성인으로 나아가라. 인간 존재를 마음이 아닌 몸의 존재로 인식한다

- 시지불견視之不見 청지불문聽之不聞 박지부득搏之不得 : 보아도 보이지 않는 것, 들어도 들리지 않는 것, 만져도 만져지지 않는 것. - 이 세계에 내재하면서 이 세계 전체의 생성을 관장하는 힘을 말한다

- 고지선위사자古之善爲士者 미묘현통微妙玄通 심불가식深不可識 : 예부터 도를 잘 실천하는 자는 세미하고 묘하며 가름하고 통달한다

- 치허극致虛極 수정독守靜篤 : 빔에 이르기를 지극하게 하고 고요함을 지키기를 돈독하게 하라

- 몰신불태沒身不殆 : 내 몸이 다하도록 위태롭지 아니하다

- 태상太上 하지유지下知有之 : 가장 좋은 다스림은 밑에 있는 사람들이 다스리는 자가 있다는 것만 알 뿐이다

- 대도폐大道廢 유인의有仁義 : 큰 도가 없어지니 어짐과 의로움이 있게 되었다

- 소사과욕少私寡欲 : 사사로움을 적게 하고 욕심을 적게 하라

- 절학무우絶學無憂 : 배움을 끊어라! 근심이 없을지니

- 공덕지용孔德之容 유도시종惟道是從 : 아 ~ 빔의 위대한 자태여! 오로지 도만이 그대를 따르네

- 곡즉전曲則全 왕즉직枉則直 : 꼬부라지면 온전하여지고 구부러지면 펴진다

- 희언자연希言自然 : 도가 말이 없는 것은 스스로 그러한 것이다

- 기자불립企者不立 과자불행跨者不行 : 발꿈치를 올리고 서있는 자는 오래 서 있을 수 없고, 가랭이를 벌리고 걷는 자는 오래 걸을 수 없다

- 도법자연道法自然 : 도는 스스로 그러함을 본받을 뿐이다

- 선행무철적善行無轍迹 : 잘 가는 자는 자취를 남기지 아니하고

- 지기백知基白 수기흑守基黑 위천하식爲天下式 : 그 밝음을 알고 그 어둠을 지키면 천하의 모범이 된다

- 시이성인거심是以聖人去甚 거사去奢 거태去泰 : 그러하므로 성인은 극심한 것을 버리고 사치한 것을 버리고 과분한 것을 버린다

- 과이물긍果而勿矜 : 좋은 성과가 있어도 뽐내지 아니하며

- 전승戰勝 이상례처지以喪禮處之 : 전쟁엔 승리를 거두어도 반드시 상례로서 처할 것이다

- 도상무명道常無名 : 도는 늘 이름이 없다

- 지인자지知人者智 자지자명自知者明 : 타인을 아는 자를 지혜롭다 할지 모르지만, 자기를 아는 자야말로 밝은 것이다

- 자승자강自勝者强 : 자신을 이기는 자야말로 강한 것이다

- 대도범혜大道氾兮 기가좌우其可左右 : 큰 도는 범람하는 물과도 같다. 좌로도 갈 수 있고 우로도 갈 수 있는 것이다

- 도지출구道之出口 담호기무미淡乎其無味 : 도가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도무지 담담하여 아무 맛도 없다

- 장욕약지將欲弱之 필고강지必固强之 : 장차 약하게 하면 반드시 먼저 강하게 해 주어라

- 도상무위道常無爲 이무불위而無不爲 : 도는 늘상 함이 없으면서도 하지 아니함이 없다

- 상덕부덕上德不德 시이유덕是以有德 : 상덕은 덕스럽지 아니하다. 그러하므로 덕이 있다. 덕경 첫 문장

- 만물무이생萬物無以生 장공멸裝恐滅 : 만물은 하나로써 생생하지 않으면 멸할 것이요

- 반자反者 도지동道之動 : 반대로 돌아가는 것이 도의 늘 그러한 움직임이다

- 천하만물생어유天下萬物生於有 유생어무有生於無 : 하늘 아래 만물이 모두 유에서 생겨나는도다! 그러나 유는 무에서 생겨나는도다

- 대기만성大器晩成 : 큰 그릇은 이루어진 것 같지 않다

- 도생일道生一 일생이一生二 이생삼二生三 삼생만물三生萬物 : 도는 하나를 낳고 하나는 둘을 낳고 둘은 셋을 낳고 셋은 만물을 낳는다

- 천하지지유天下之至柔 : 하늘 아래 가장 부드러운 것이

- 지족불욕知足不辱 : 족함을 알면 욕되지 않으리

- 천하유도天下有道 : 천하에 도가 있으면

- 불견이명不見而名 : 두 눈으로 직접 보지 아니하여도 사물의 참 이름을 아네

- 손지우손損之又損 : 지식이 매일매일 줄어든다

- 출생입사出生入死 : 삶의 자리에서 나오면 죽음의 자리로 들어가게 마련이다

- 도생지道生之 : 도는 만물을 생하는 것이요

- 천하유시天下有始 : 하늘 아래 시작이 있었다

- 견소왈명見小曰明 : 미세한 것을 볼 줄 아는 것을 밝음이라 한다

- 대도심이大道甚夷 : 큰길은 매우 평탄하고 쉬운데

- 선건자불발善建者不拔 : 잘 심은 것은 뽑을 수 없고

- 지자불언知者不言 : 참으로 아는 자는 함부로 말하지 아니하고

- 이정치국以政治國 : 나라를 다스릴 때는 정법으로 하고

- 기정찰찰基政察察 기민결결基民缺缺 : 그 정치가 똘똘하면 똘똘할수록 그 백성은 얼빠진 듯 멍청해진다

- 치인사천治人事天 막약색莫若嗇 : 사람을 다스리고 하늘을 섬기는데 아끼는 것처럼 좋은 것은 없다

- 치대국治大國 약팽소선若烹小鮮 : 큰 나라 다스리기를 작은 생선을 조리는 것 같이 하라. 작은 생선을 뒤적이면 그 윤택이 사라진다 - 한비자

- 도자道者 만물지오萬物之奧 : 도라는 것은 만물의 속 깊은 보금자리이다

- 위무위爲無爲 사무사事無事 미무미味無味 : 함이 없음을 함으로 삼고, 일이 없음을 일로 삼고, 맛이 없음을 맛으로 삼는다

- 이보만물지자연이불감위 以輔萬物之自然而不敢爲 : 이리하여 만물의 스스로 그러함을 도울 뿐 감히 무엇을 한다고 하지 않는다

- 시이욕상민是以欲上民 필이언하지必以言下之 : 그러하므로 백성의 위에 슬려는 자는 반드시 말로써 자기를 낮추고

- 선승적자불여善勝敵者不與 : 적을 잘 이기는 자는 대적하여 맞붙지 않는다

- 위행무행 爲行無行 : 감이 없이 간다

- 피갈회옥被褐懷玉 : 겉에는 남루한 갈포를 입고 속에는 아름다운 보옥을 품는다 - 자기가 처한 세상의 불우한 모습과 내면의 진박한 인격자세의 모순된 양면을 잘 그려내는 말이다.

- 지부지知不知 상上 : 알면서도 아는 것 같지 않은 것이 가장 좋은 것이다

- 부유불염夫唯不厭 시이불염是以不厭 : 백성들이 자기 삶을 지겹게 느끼지 않아야만 치자를 지겹게 느끼지 않고 즐겁게 추대하게 되는 법이다

- 용어감즉살勇於敢則殺 : 감히 주저 없이 강행하는 데 용감한 자는 제명을 살지 못하고

- 천망회회天網恢恢 : 하늘의 그물은 한없이 크고 또 너르다

- 민불외사民不畏死 : 백성들이 통치자의 학정으로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 천도무친天道無親 상여선인常與善人 : 하늘의 도는 친소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늘 좋은 사람과 더불어 하게 마련이다

- 소국과민小國寡民 : 될 수 있는 대로 나라의 크기를 작게 하라

- 성인지도聖人之道 위이부쟁爲以不爭 : 성인의 도는 사람을 위해 잘하면서도 사람과 다투는 법이 없다


평소 내가 좋아하고 집에 액자로 걸어놓은 말이 있다. 천지불인天地不仁이다.  말은 천지의 운행이 인간의 정감이나 바램과 무관하게  나름대로의 생성 법칙과 조화에 따라 이행되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야속하고 때로는 무자비하게 느껴진다는 뜻이다. 하늘이 얼마나 야속한가? 하지만 천지가 만들어내는 만물도 스스로 서로의 관계 속에서 질서를 형성해 나가야 한다. 자력에 의하여 온전하게 존손되지 못하면 천지는 구비된 조화를 이룰  없게 된다.


언젠가 하고 싶은 일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마음이 상하고 몸도 피폐해졌었다. 노자는 내 주변에서 나에게 힘을 준다. 나 스스로 힘을 내어야 한다. 남탓할 것 없다. 힘을 내게 해주는 그 언저리에는 우리 삶에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는 삶의 지혜를 포함하고 있는 듯하다. 한 권의 책으로 삶을 바꾸는 것은 어렵다.


한 번 더 읽어보고 되뇌이며 새겨본다. 노자적 삶을 찾아가는 길, 여행을 떠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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