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과장님과

인연

by 봄빛

30도를 오르내리는 기온 탓에 반팔에 윈드브레이크도 거추장스러워지는 날이다. 에어컨 바람에 옷을 벗기도 뭐 하다. 1432번 좌석버스는 아무도 타지 않고 있었다. 약속장소까지 혼자서 택시 탄 듯 편안하게 왔다. 서두른다고 왔는데도, 안 과장님, 김 부장, 권 사원은 벌써 와서 막 시작하고 있었다.

“와 이리 늦었노?”

김 부장이 흘기듯 물어본다.

“이 정도면 늦은 것도 아이구마.”

대답이 퉁명스럽다. 약속이 7시였는데, 30분 당기는 것을 퇴근 시간에 말해준데 대한 타박이다.

“과장님 건강하시지요?”

퇴직 후 두 번이나 쓰러져서 걱정을 끼친 선배에게 안부를 묻는다.

“요즘 집에서 박제상 유적지 아래 동네까지 갔다가 거기 운동기구 좀 하고 다시 집으로 와.”

“너무 무리하시는 거 아니에요?”

“슬로우 조깅으로 다니니까 힘들지도 않고 좋아. 4시 반에 보통 일어나.”

“아직 어두울 텐데요?”

“아니, 그때쯤이면 먼동이 훤하게 트고 있어. 밝아.”

현직 세 명과 함께 맥주에 소주를 넣어 폭탄주를 받고서는 조금씩 베어 마시고 있는 과장님을 보며 스멀스멀 기억이 피어오른다.

은편으로 들어갈 때가 10년은 지났나 보다. 그 집은 허름한 2층 카페였다. 동쪽으로 치술령과 그 아래 만화리 들판이 보이는 곳이다. 아침에는 햇살이 쑤욱 들이칠 것 같다. 처음엔 말로만 들었는데, 하나둘씩 품을 나눠 돕는 이들이 늘어서 나까지 손을 빌려주었다.

처음 가 본 집은 벌써 정리가 어느 정도 된 상태였다. 2층을 방으로 바꾸고 1층도 황토실이며, 거실, 부엌, 서재를 손 본 후였다.

동향의 집 오른쪽 앞에 저수지가 넓게 자리하고 있다. 와우.. 이건 정원에 연못이 들어 있는 형상이다. 생각보다 넓은 못은 고기도 많았다. 보통의 저수지처럼 잡초와 악다귀 같은 풀들로 뒤덮여 있었다.

창고가 집과 못 사이에 오른쪽으로 자리 잡았는데, 어디서 해왔는지 장작이 가득 쌓여 있었다. 창고 벽면에는 온갖 장비들이 차곡차곡 붙어 있고, 전기톱이며 잔디관리기까지 있었다.

잔디를 심는데, 트럭 분량을 가져와서 마당에 부려놓은 상태였다. 팀원들이 모두 달라붙어 100평은 넘을 마당을 잔디로 덮었다. 사이사이에는 판석을 놓아 이동로를 함께 만들었다. 일꾼들이 많아서 그런지 목표 시간 안에 일을 마쳤다. 그 와중에도 그의 아내는 저녁 준비를 해놓았다. 데크 위에서 바비큐다. 나무로 된 커다란 탁자에는 8명이 편하게 앉을 수 있었다. 바비큐 그릴이 아주 그럴듯했다. 숯이 불이 잘 붙어서 굽는 고기들이 맛과 향이 좋을 것 같았다.

퇴직한 이후에도 초대를 받고 가면 뭔가가 바뀌어 있었다. 못은 마당에서 연결되어 산책로가 조성되었고, 길에 면한 주차장과 마당 사이에 문을 달아서 구분을 해놓았다. 주차장도 차량 3대가 넉넉하게 댈 수 있었다.

어느 봄에는 우리 부부가 함께 갔었다. 마침 그의 아내가 차를 만들기 위해 목련꽃을 따러간다고 해서 따라나섰다. 목련이 활짝 피기 전 소담스럽게 봉우리를 지고 있을 때가 차를 만드는 시기였다. 목련 꽃나무가 있는 집을 사전에 섭외를 해 두었나 보다. 아내와 내가 한 조가 되어 두 조로 움직였다. 올가미가 달린 긴 막대를 이용해 축사의 지붕 위에 올라가서 땄는데, 위에서 감 따듯이 꽃봉오리를 따서 아래에 아내에게 건네면 따로 담았다. 위쪽은 보기보다 높아서 어쩔 때는 아찔한 상황도 있었다. 일 마치고 차 한잔 하며 살아가는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우려내었다. 마치고 나오며 꽃차를 한 아름 받았다.

마라톤을 즐겼는데 욕심나는 일은 끝까지 밀어붙이는 성향 때문에 그의 몸은 좋지 않다. 풀코스를 그렇게 뛰더니 울트라 마라톤까지 섭렵하게 되었다. 하지만, 후유증은 컸다. 어느 날 인가부터 운동이 시들해져서 물어보니, 부정맥이 왔다고 말한다. 서맥과 빈맥 사이에 정상맥박은 위태롭다. 얼굴색이 갑자기 하얗게 변했을 때는 큰일이 나는 줄 알았다. 어떨 때는 심장이 쿵쾅거리면서 뛰어 고통을 호소하기도 했다. 퇴직 후 부부가 함께하는 아침 산책길에 두 번이나 응급차를 타야 했단다.

퇴직 전에 2주간의 미국 출장이 잡혔었는데, 다녀오고서 나쁘던 허리가 아예 고장이 나버려서 병원에 입원을 했다. 설상가상으로 혈전에 막혀 뇌졸증까지 동반하게 되어 퇴직 전에는 재활한다고 고생도 많이 했다.

오늘도 보니 울타리 만든다고 권 사원이 트럭을 빌려 품을 팔아준 김에 모임이 이루어졌다. 심장에 부정맥 시술 후 큰일은 잦아졌는데 드릴링머신 같은 흔들림이 있는 작업은 못한단다. 작은 아들이 와서 구멍 뚫고 기둥새우고 나왔단다.

왜 우리는 그를 잊지 못하고 있을까. 아마도 그의 품성 때문일 것이다. 품이 넓은 그는 함부로 말하지 않았다. 정제해서 감정이 실리지 않게 전달해 주었다. 누구나 자기 잘못은 안다, 하지만 싫은 소리를 어떻게 전하느냐 하는 것은 사소하지만 인간관계에서는 큰 부분이다. 다른 상사들을 겪고서야 더욱 그를 생각하게 된다. 좋은 인연이 오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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