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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결 Mar 02. 2023

미치도록 전하고 싶은 더듬거림

정용준 작가의 '떠떠떠 떠'

정용준 작가의 '떠떠떠 떠' 미치도록 전하고 싶은 더듬거림

민병식


정용준(1981 ~   )작가는 조선대학교 러시아어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2009년 ‘현대문학’에 단편소설 ‘굿나잇, 오블로’가 당선되어 등단했고 소설집으로 ‘가나’, ‘우리는 혈육이 아니냐’, 중편소설로 ‘유령’, ‘세계의 호수’, 장편소설 ‘바벨’, ‘프롬 토니오’, ‘내가 말하고 있잖아’ 등이 있다. 수상 실적으로는 젊은작가상, 황순원문학상, 소나기마을문학상, 문지문학상, 한무숙문학상 등을 수상한 있다.


작품은 제11회 젊은 작가상 수상작이기도 하고 작가의 소설집에 '가나'에도 수록되어 있기도 하다. 장애를 가진 ‘나’는 유원지에서 백수의 왕인 사자의 탈을 쓰고 일한다. 말을 할 수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말을 할 수 없어도 타인이 이상하게 보지 않는 일이다. 그곳에서 ‘나’는 한 여자를 만난다. 마찬가지로 그곳에서 일하는 판다 탈을 쓴 여자다. 그녀 또한 할 수 있는 게 이 일밖에 없다. 그녀는 뇌전증으로 인해 수시로 발작을 일으킨다. 일을 하는 와중에 갑자기 잠이 들어버리기도 하고 덜덜덜 떨기도 한다.


‘나’는 판다가 초등학교 같은 반이기도 했던 것을 기억해 낸다. 그때 담임선생님은 툭하면 나를 세워 책을 읽으라고 해놓고 읽지 못하는 나를 그대로 세워둔 채 업무를 보았다. 그렇게 고통스러운 시간 들을 보내고 있던 때 어느 날 그녀가 갑자기 쓰러진다. 그리고 일주일 후 전학을 간다.


탈은 주로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기 귀여운 표정이다. 그녀의 발작은 시도 때도 없이 시작된다. 아이들은 탈 인형을 때리고 괴롭힌다. 여자가 탈을 쓰고 발작을 일으킬 때, 사람들은 판다가 애교 부리는 줄 알고 환호한다. 사자는 판다에게 이목집중이 되지 않게 최대한 웃긴 포즈와 시끄러운 행동을 하며 자신에게로 이목을 끈다.


어느 날 판다가 부탁을 한다.

"앞으로 내가 또 쓰러질지도 몰라. 아니 갑자기 또 그렇게 되겠지. 입에 거품을 물고 눈이 하얗게 뒤집힐 거야. 온몸을 떨며 괴물처럼 이상해지겠지. 하지만 절대로 나를 만지지 마. 허둥대지도 말고 놀라지도 마. 절대로 울지도 말고 걱정하지도 마. 가능하다면 잠시 산책을 다녀오는 것도 좋겠어. 그리고 내가 깨어나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대해줘. 내가 너의 얼굴을 보고 슬퍼하거나 놀라지 않도록. 심지어 갑자기 잠들었다는 사실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로 말이야. 그렇지 않으면 나는 견딜 수 없을 것 같아. 만약 또다시 네 눈이 지금처럼 눈물로 가득하다면 나는 너를 더 이상 만날 수 없을 것 같아."

-본문 중에서


한낮의 유원지가 갑자기 저녁처럼 깜깜해지며 큰 비가 쏟아지던 날, 유원지에 있던 사람들이 비를 피해 소리를 지르며 순식간에 어디론가 사라졌다. 비를 피해 둘은 판다와 사자의 탈을 벗어버리고 탈의실을 향해 달려가고 그곳에서 키스를 나누고 사랑을 나눈다. 그녀의 등에 ‘사랑해 라고 쓰지만 그녀는 더듬어도 좋으니 말로 해달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하지 못한다. 그녀가 갑자기 발작을 일으키고 벌거벗고 눈을 뒤집으며 뒤틀리는 그녀에게 옷가지를 덮어준다.


나는 그녀에게 말을 해야만 한다. 내가 곁에 있다고, 그러니 안심하라고 많이 사랑한다고. 그렇게 어렵게 입술을 떼고고 말을 하고 무의식 속에서 그녀는 듣는다.


"떠, 떠떠, 떠떠, 떠떠떠, 떠, 떠, 아아, 아아아하아아, 아아아, 아, 사, 사, 사아. 아, 아아, 아아아, 라라, 라라라라, 라, 라라라, 아, 아아앙, 해."


그녀는 분명 그의 말을 알아들었을 것이다. 맨바닥에 누워 온몸을 뒤틀면서도 진심어린 그의 고백을  분명히 들었을 것이다. 남들은 무슨 말인지도 모를 소리가 그녀에게 '사랑해'라고 말이다. 또렷또렷한 고백의 말보다 미치도록 전하고 싶은 더듬거림이 그토록 아름다운 이유다.

사진 전체 출처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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