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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결 Mar 27. 2023

문학 칼럼76(러시아 문학)

레프 톨스토이의 단편 '두 노인'이 보여주는 휴머니즘의 실천

[문학칼럼] 레프 톨스토이의 단편 '두 노인'이 보여주는 휴머니즘의 실천

민병식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대문호 톨스토이 (1828~1910)는 도스토옙스키와 함께 19세기 러시아 사실주의 문학의 정점이자 위대한 사상가로 여겨지는 인물이다. 안톤 체호프는 "톨스토이는 모든 이를 대변한다. 그의 작품은 사람들이 문학에 거는 기대와 희망을 모두 충족시켜 준다."라고 말했으며, 막심 고리키는 "한 세기에 걸쳐 체험한 것의 결과를 놀랄 만한 진실성과 힘과 아름다움으로 표현했다."라고 말하며 톨스토이를 '세계 전체'라고 일컬었다.


톨스토이 1828년 러시아 풀리나에서 백작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어려서 부모를 잃고 숙모에 의하여 양육되었다. 청년시절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하여 투르게네프로부터 문학성을 인정받은 그는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리나', '부활' 등 수많은 소설들을 남겼다. 톨스토이의 문학은 고백록(1879)을 기점으로 사실주의 문학 중심의 전반기와 종교 사상 중심의 후반기로 나눌 수 있는데  '안나 카레니나'를 집필하던 1870년 대 후반 인생의 의미와 목적에 대해 고민하면서 러시아 정교의 권위를 부정하고 자신의 기독교 사상을 주장하는데 위선에 찬 러시아 정교회를 비판하다가 파문당하기도 했다. 그의 후반기 문학은 기존의 기독교와는 달리 비폭력, 금욕 등을 강조하는 새로운 종교관을 반영하고 있으며 이를 톨스토이 주의라 칭한다. 이에 민담 형식으로 성경의 가르침을 효과적으로 들려줄 수 있는 단편, '바보 이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 '사람은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 '사랑이 있는 곳에 신이 있다'  등의 작품을 쓰는데 국내에는 '톨스토이 단편선'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단편 '두 노인' 역시 러시아의 민화를 바탕으로 엮어 진 이야기다. 노년이 된 친구사이인 '예핌'과 '예리세이'는 예루살렘 성지를 순례하기로 한다. 예핌은 술도  담배도 하지 않는 고지식한 사람이었으며, 건강하고 예의 바른 모범적인 신앙인이었다. 반면 예리세이는 구차하지는 않았지만 생활도 그리 넉넉지 않았고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우면서 마을사람들과 함께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둘이 여행을 시작 한지 일주일쯤 지나서였을까. 뜨거운 한낮에 목이 마른 예리세이가 농가로 물을 마시러 들어가고 에핌은 예루살렘을 향해 길을 잡는다. 그러나 농가에 들러보니 그 농가의 가족들은  전염병과 굶주림 때문에 모두가 신음하고 있었다. 예리세이는 우물을 찾아 물을 떠다주고 빵도 나누어 주고 모자라는 음식은 마을에 들러서 사오고,  뻬치카에 불도 지피고, 저녘무렵에는 스프도 끓여서 먹였다. 예리세이는 에핌을 따라가야 했지만 도저히 그자리를 떠날수가 없어서 그렇게 그들을 보살피느라 사흘이 훌쩍 지나 가 버린다. 예리세이는 지금이라도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먹을거리도 없는 병들고 굶주린 가족들을 두고 떠날수가 없었고, 지닌 여비도 그들을 위해 모두 써버린터라  아무래도 여정을 따라 잡을수는 없었다. 결국 예리세이는 예핌이 자신을 위해 촛불 하나쯤은 켜줄 것이라 생각하고 성지순례를 포기, 집으로 돌아간다.

사진 네이버


그때  성지에 도착한 예핌은  성당 한모퉁이에서 기도를 드리다가 예리세이가 팔을 벌리고 서 있는것을 보게 되는데, 사람들을 헤치고 에핌은 친구 예리세이가 있는 제단 쪽으로 뛰어 갔지만 그새 사라지고 없었다. 다음날도 예핌은 빛을 받으며 서 있는 예리세이를 보았지만 역시 다가 갔을때는 예리세이가 없어 진다. 집으로 돌아 오는길에 그 농가를 찾게 된 예핌은 예리세이가  이들 가족들을 돌보느라 성지에 오지 못했음을 알았고 집으로 돌아온 예핌은 잘 다녀 왔느냐는 예리세이의 인사를 받으며 깨달음을 얻는다. 자신은 몸으로 갔다 왔지만  친구 예리세이는 영혼이 다녀 왔다는 것을 느끼며 예핌은 사랑과 선행이 말로하는 것이 아닌 실천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소수의 귀족 들이 지배하는 사회, 경제적으로 예속된 농민 들은 비참한 삶을 살아야했던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서 톨스토이는 자신의 종교관을 바탕으로 빈부의 격차, 부조리한 사회의 모습과 병폐를 비판하고 바로잡고 싶었던 것이다. 이기심과 아집,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것을 우선으로 여기고 살면서 아무리 성지순례를 수십 번 간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마찬가지로 아무리 높은 지위에 있고 학식이 풍부하고 물질이 풍부한 상류층의 삶을 산다한들 일신의 안위와 개인의 영달을 누리기 위한 것이라면 진정 올바른 삶이라고 말할 수 없다고 말하며 아무리 내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 이 시대이지만 나보다  못한 이웃을 위해 내어 주는 봉사와 헌신의 마음과 사랑이야말로 세상을 유지시키는 힘이며 인간의 기본적인 도리라며 톨스토이는 행함이 중요하다는 실천의 휴머니즘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사진 네이버(위 배경사진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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