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결 Sep 04. 2023

짧지만 긴 여행, 속초 당일치기

여행 에세이

[에세이] 짧지만 긴 여행, 속초 당일치기

민병식


올 해 여름은 유난히 더웠다. 작렬하는 태양의 기세로 한 낮은 머리 가죽까지 타는 듯한 뜨거움으로 밖에 나갈 수 없을 정도 였지만 추위에 약하기에 겨울보다는 여름을 선호하는 나로서는 숨이 턱턱 막히는 아스팔트의 열기조차도 떠나는 것이 아쉽기만하다. 아침, 저녁으로는 기온이 뚝 떨어져 가을이 눈 앞으로 성큼 다가온 9월, 가는 여름의 끝자락을 잡고 속초의 바다를 보러가기로 한다. 강원도하면 나의 청춘시절부터 뗄래야 뗄 수없는 핫 스팟이고 언제 찾아가도 드넓은 바다가 탁 트인 공기를 불어넣어 주는 곳이다.  오늘 코스는 그유명한 코다리 냉면으로 아점을 먹고 고성 천진 해변 투썸플레이스 에서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바다 멍을 하고 처음 방문해보는 외옹치항 바다향기로 둘레길 걷기, 속초중앙시장

에서 맛난 것을 좀 사고 88생선구이집에서 추억이 가득 담긴 생선구이로 저녁을 먹은 후 귀가하는 당일 코스 일정이다.


고속도로를 타야하는데 초장부터 아무생각없이 가다가 국도를 탔다. 덕분에 세시간 넘게 걸렸지만 그래도 여행길은 마음의 넓어짐, 여유, 여행이 주는 선물로 느긋해진다. 휴게소에서 커피도 한 잔 하면서 천천히 아주 천천히 급함을 내려놓고 평소엔 돌아볼 틈도 없는 바깥 경치도 즐기면서 속초에 도착, 드디어 그토록 먹고싶었던속초가 자랑하는 코다리 냉면 집, 이조 면옥이다. 건물을 세로지어휘황찬란하다. 8년전에 한 번, 5년전 회사 워크숍 때 왔으니 실로 오랜만이다. 그런데 기대했던 코다리 냉면이 아니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손톱 쪼가리 만한 것 몇개 들어있어 일반 냉면과 거의 차이가 없다. 맛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코다리를 먹을 때 입안에서 씹히는 고소함의 식감을 느낄 수가 없어 무지 서운했다. 가격은 착한데 그만큼 재료값이 올랐으니 그럴만도 하다. 십년이면 강산이 변하는데 코다리 냉면은 오년 만에 변했다. 그많던 코다리는 누가다 먹었을까. 배신감을 맛본 오늘의 냉면은 기대와 결과의 대결에서 무승부로 끝났다.


다음 코스는 천진해변,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거리에  바다가 있는 투썸 플레이스 커피숍으로 향한다. 앗, 그런데 투썸 플레이스는 없어지고 대신 개인이 운영하는 커피숍으로 바뀌었다. 간판은 바뀌고 내용은 그대로, 이곳은 야외 공간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멍을 즐길 수 있는 그야말로 핫-스팟이다. 하늘을 파랗고고 바다는 푸르다. 오리떼가 헤엄치듯 서핑하는 젊은이들이 둥둥 바다에 떠다니는 모습이 한가롭다. 구름이 하얀색으로 하늘에  그림을 그렸다 지우기를 반복하고 사르륵 사르륵 파도는 아주 느린걸음으로 천천히 산책을 한다. 이곳에는 잡념이 없어진다. 일에 대한 강박과 스트레스도, 부모님의 편찮음에 대한 걱정도, 집 대출금 상환에 대한 조급함도 잠시 잊을 수 있도록 배려해준다. 모처럼 숨을 크게 쉴수 있는곳에서 하늘과 바다와 나는 서로 말을 붙이지 않는다. 누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지 않아도 모두를 알고있기에 그저 서로를 바라보는 격려와 위안과 토닥거림이 있을 뿐이다.


한시간 정도의 쉼의 시간을 갖고 외옹치항 바다향기로로향한다. 회사 직원이 걸으면 힐링이 된다고 추천해 준 곳인데 둘레길이 멋지게 조성되어있다. 한 걸음 두 걸음 저 멀리서 불어오는 해풍에 비릿한 해초 내음이 코를 자극하고 바위 위에서 한가롭게 볕을 쪼이는 갈매기들의 망중한은 덤이다.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까지 온통 진하고 연한 수채화 물감을 뿌려놓은 파랑의 세상에서 숨을 을 있는 힘껏 들이쉰다.


속초까지와서 여길 안갈 수 없다. 바로 속초 중앙시장에 들른다. 주말이라 그런지 인파가 어마어마하다. 오랜만에 보는 낮익은 간판, 만석 닭강정의 간판이 우리를 반기고 유명한 명물 꼬마김밥이 식욕을 자극한다. 술빵 가게 앞에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얼마나 맛이 있길래 줄을 서서 먹나, 아무리 맛있다고 해도 줄까지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 나지만 먹어보니 줄설만 하다. 어렸을 때 어머니께서 해주시던 보드라운 감촉에 익을 듯 말듯  향기롭기까지한 미세한 술향기, 부드러운 목넘김이 쫄깃하다.


삼심분이 넘는 기다림을 끝으로 술빵을 득템한 우리는 오늘의 메인 메뉴인 생선구이를 먹으러 88생선구이집으로 간다. 예전에는 허름한 단층차리 자리도 몇석 없는 그야말로 레트로 감성 물씬 풍기는 곳이었는데 현대식 다층건물로 새로 개장했다. 그만큼 돈을 낙엽처럼 긁어모았다는 뜻 아닌가. 부러워서 감탄이 절로 나온다. 옛날에는 연탄 불에 구웠는데지금은 숮불이다.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바로 앞에 있는 항구의 검푸스레한 바다 색깔과 서비스와 맛이다. 이른 점심을 먹은 이후 아무 것도 먹지 못했던 우리 일행은 허겁지겁 배를 채운다. 싱싱한 생선이 노릇노릇 구워지며 식욕을 자극하는 고소한 냄새가 시장기에 더해 더할나위없는 바다의 만찬을 만들고 점점 차오르는 위장의 만족감에 웃음 가득해진다.


오늘의 여행은 비록 당일치기 짧은 여행이지만 함께한 사람들, 바다와 파도, 비릿한 속초의 공기, 이곳에서 숨을 쉬고있는 모든 시간과 공간이 이어진 인연의 끈이다. 일정상 단, 하루만 허용된 당일치기 여행이어서 아침부터 서둘러 정해놓은 일정에 따라 바삐 움직였지만 그 속에 웃음과 기쁨, 평안과 쉼을 찾았다. 여행은 언제 떠났나 싶은데 어느새 도착해있고 한 것도 별로 없는 것 같은데 일상으로 돌아와야 하는 눈 앞에서 훌쩍 지나가는 풍경처럼 빠르게 지나가는 파노라마다. 더 보고 싶고 더 누리고 싶어서 지나는 시간들이 아쉽지만 그러나 그 아쉬움이  더 그리운 추억을 만들 수 있는 인연의 끈이 되고 시간이 흐르면 가슴에 담아놓은 여운을 불러내 오늘을 추억하며  또 그 어딘가로 떠날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지하철 테러 사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