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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결 Oct 24. 2023

60년대생 주변인

초고령화시대 에세이 5

[에세이] 60년대생 주변인

민병식


천안을 지하철로 가기는 처음이다. 정확히 말하면 천안 예술제에 초대를 받아 가는데 운전에 시달리지 않고 가장 편히 갈 수 있는 코스가 지하철을 타고 내려서 걸어서 행사장까지 가는 방법이다. 지하철 1호선을 이용한 짧은 여행이라고 생각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집을 나선다. 대중교통에 익숙한지라 부담은 없으나 집에서 가까운 역에서 8시 10분에 신창행 전철을 타야하고 그 시간을 놓치면 다음 신창행은 거의 한 시간을 기다려야 하기에 미리 가기로 마음 먹는다. 약 한 시간  이십분 간 지하철을타고 쌍용역에 도착, 2km정도 걸어서 행사장에 도착하니 시 낭송 대회가 한창이다.


60년대생 주변인늘은 푸르고 햇살은 포근하다. 안락한 느낌에 갑자기 주변을 산책하고 싶어지는데 그렇다. 무대가 공원안에 마련된 거였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나무와 갈대가 우거진  도심 속 숲을 감상하며 10월의 가을 속으로 걸음을 내딛는다. 이른 아침부터 준비하느라 차 타느라 피곤했던 마음이 어느덧 가벼워진다.


주변에서 전시된 사진전을 둘러보고 동화구연

대회와 시낭송대회를 관람한다. 오랜만에 젖어드는 문학의 세상에서 한 곳에 응집되어 있던 근심과 시름이 덩어리를 이루었다가 눈에보이지 않게 서서히 흩어지는 구름처럼  한껏 긴장을 늦추어본다


무사히 시상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에 탑승해 눈 좀붙이려는 찰나 어머니께 전화가 온다.


" 1호선 탔니? 복지관에 운동가고 싶으니까 와라. 아버지가 혼자 나가지 말래. 안양역에 내리면 우리 집에 오는 버스 있어."


"네?  지난 주 말씀드렸잖아요. 이번주는 천안에 갔다가 지하철타고 늦게 오니 집에서 발맛사지기로 마사지 받고 그냥 쉬시기로 했잖아요."


"거기 다섯시인가 여섯시까지 하니까 와."


지난 주에 분명히 이번 주는 천안에 다녀와야해서 늦을 수있으니 집에서 쉬시라고 당부했고 알았노라고 대답까지 해놓구선 다른 말이다. 운동가야하니 무조건 오란다. 행사 시간에 맞춰가고 참여하느라 아침, 점심도 못먹은터에 배가 등가죽에 달라붙을 판인데 내 말이 들리는지 들리지 않는지  막무가내시다. 이럴 때마다 자식 노릇을 안할 수도 없고 힘이 빠진다. 거리나 가까워야지 이제 지하철에 올라탔는데 부모님댁에 도착하려면 최소 두 시간은 걸릴 것이다. 슬슬 지치기 시작하는 시간, 어머니 마음은 알겠지만 내 생활도 있는데 하루 쉬면 큰일이나 나는 것처럼 무조건 당신의 입장만을 반복해서 말하니 어떤 말을 해도 벽을 보고 말하는 듯한 답답함에 저절로 한숨이 나온다.


나이가 들수로 고집이 세지고 어린아이가 된다고 하더니 딱 그짝으로 점점 고집이 세진다. 주변의 사정은 아랑곳 없이 무조건 당신 위주의 말과 행동 들, 나이가 들어갈수록 심해지는 노화 과정이기도 할텐데 이해 해야한다고 생각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짜증이 치밀기도 한다. 노인복지회관가서는 다른 어르신이 기구를 사용하고 있는 중에도 당신이  사용하고 싶어서 기다렸다가 차례가 오면 하시라고 말씀을 드려도 금방 끝나니 먼저 해도 되냐고 묻는 배려하지 못하는 모습과 아들이 무슨 일이 있든 없든 하고 싶은 하고 싶은 것은 해야하는 것, 오로지 당신만의 세상이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자식 새끼 나아 봐야 아무 소용 없다" 또는 "자식을 잘못키웠다" 등 맘에 들지 않으면 툭툭 뱉어내는 말들을 지금까지 수백 번은 들어왔던 탓에 적응도 할만한데 속에서 욱하는 마음은 자제할 길이 없다. 결국 불편한 상황을 타개하는 방법은  최대한 빨리가서 원하는 것을 들어드리는 것 뿐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고집스런 자신만의 세계로 침잠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볼 때마다 안타깝고 안쓰럽기도 하지만 한편 내 마음도 상하게히니 그저 웃으면서 그렇겠거니 반응하지 못하고 때론 화를 내고 짜증이나는 때가 많기에 결코 난 효자가 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다.


지하철 역에 내려 부랴부랴 택시를 타고 부모님 댁에 도착했다.


"아이고 어머니. 지난 주에 안가기로 해놓구 자꾸 가자고 하면 어째요. 나도 쉬어야 내일 일을하지."

  

웃으면서 한 마디 했더니 돌아오는 말은 이것 뿐이다.


"어제 어디 다녀오느라고 운동 못해서 오늘 꼭 해야 돼''


복지관에 도착해서 벨트 마사지를 하면서 드디어 만족한 표정으로 내게 말을 건넨다.


"밥은 먹었니?"


안먹었다고하면 왜 안 먹었니 사먹고오라니 말이 끝없이 길어질 것임이 명약관화한 사실이어서


"먹었으니까 신경쓰지마시고 안전하게 운동이나 집중해서 하세요. 다치면 큰일나요."


피곤이 온몸에 덕지덕지 붙어 양 어깨에 쌀가마니를 지고 있는 듯하다. 그래도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운동시켜 드리길 잘했다는 생각 반, 이제 시작인데데 앞으로 내가 잘 참고 잘 들어드릴 수 있으려나 하는 걱정 반, 그 사이 운동은 끝나고 댁에 모셔다 드리니 만족스럽고 환한 얼굴로 말씀하신다


"수고했다. 고마워."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이들고 병약한 노후의 삶이 참 힘들고 외롭겠다는 생각이든다. 어머니처럼  노인이 되어갈 날이 얼마남지 않았는데 그나마 부모를 부양할 수있는 마지막 세대이면서 자식 들에게 부양받지 못하는 첫 세대라고 불리는 60년대 생에 속해있는 나, 성인도 아닌 아동도 아닌 어디에도 속하지 못해 방황하는 청소년 처럼 나의 중년은 청년도 아니고 노년도 아닌 노후를 걱정해야하는 끼인세대인 또 하나의 주변인으로 느껴진다. 나의 노후는 어떨까. 왠지 가을이 되면서점점 짧아지는 해처럼 그나마 남아있는 나의 젊음의 끝자락도 점점 힘을 잃어가는 것만같아 씁쓸해지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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