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인트 칠이 군데군데 벗겨진 건물의 외관은 마치 나이 든 노인의 얼굴에 잔뜩 핀 핀 검버섯이 얼룩져 있는 것처럼 세월의 흐름을 증명하고 있다. 정부에서 제공한 이른바 경제적 생산 능력이 고갈된 노인들의 집단 거주지, 해피타운, 돈 있는 자들이 아닌 무의탁 노인들이 거주하는 무료 요양원이다.
노을이 온 세상을 덮을 즈음 건물 밖 나무 의자에 김 노인이 먼 곳을 응시하며 하릴없이 앉아 있 무렵 버스 한 대가 도착하는 소리와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들린다.
김노인 : 혹시? 주봉이 아닌가. 맞구만. 이 사람아 자네 여기 웬일인가. 어쩐 일이야.
박노인 : (놀란 표정으로) 어! 형님. 여기에 계셨습니까?
김노인 : (반갑게 맞이하며) 그래. 여긴 어떻게 왔냐구.
박노인 : 해피타운 입소 나이가 칠십부터 잖아요. 그동안은 내 집 있고 퇴직금하고 모아둔 돈으로 살았는데 글쎄 아들 녀석이 회사 명퇴를 해서는 사업한답시고 다 말아먹고 집을 담보로 사업자금을 대달라기에 며느리, 손주 길바닥에 나 앉는 꼴 못 보겠어서 해줬더니.
김노인 : 그래서?
박노인 : (말을 잊지 못하고 땅바닥에 주저 앉으며) 아!
김노인 : 그럼 아들 내외는?
박노인 :그 이후로 소식이 끊겼는데 빚쟁이들이 날 찾아와서는 그나마 있는 것 다 내어주고 결국 이리 오게되었습니다.
김노인 : 일단 들어가세. 짐부터 풀어야지
김노인이 박노인을 안내하며 해피타운 입소를 돕는다
해피타운 7호실 안
김노인 : 이곳이 제 7호실이야 여섯 명이 지내고 있었는데 며칠 전 세 명은 병이 심해져서 다른 곳으로 옮겼어. 지금은 나와 노 박사가 함께 지내고 있네. 이제 우리 셋이 되었군.
박노인 : (노박사를 보고 굽신거리며) 반갑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노박사 : 사연이 많은 듯한데 잘 왔다고 할 수도 없고 아무튼 잘 지내봅시다.
박노인 : 그런데 뭘 그리 만드십니까?
김노인 : 우선 짐 좀 내리고. 잠시 후면 저녁 시간이니 늦으면 안 되니까 서두르자구.
노박사 : (혀를 끌끌 차며) 그게 저녁인가. 아무리 공짜 밥이라고 하지만.
김노인 (당황한 표정으로) 이 사람아, 그게 무슨 소리야!, 그래도 우리 같은 쓸모없는 노인들이 그 정도도 감지덕지지.
노박사(두주먹을 불끈 쥐고) : 제길, 우린 대한민국 경제발전의 주인공이야. 지금의 이 나라가 있기까지 우리 노인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이렇게 선진국이 되지 않았을 거라구.
김노인 : 으이구! 선진국이니까 이곳도 무료지. 자자, 이제 그만하고 저녁 먹을 준비나 하세.
노박사 : (화가 잔뜩 난 표정으로) 젊은이들에게는 막 퍼주고 노인 연금은 쥐꼬리만큼 주면서 그걸로 어떻게 살아. 노인 연령도 이제 일흔 살로 연장되었잖아.
김노인 : 그렇긴 하지.
노박사 : 70세 이하면 69세도 차비를 내야 하는데 말이 백세시대지, 젊은 시절 일하느라 몸 성한 곳이 없는데 모아놓은 돈 없으면 오래 사는 것도 죄야. 비록 이곳에 와서 목숨을 구걸하고 있는 처지지만 나도 잘 나갈 때가 있었는데 이제 언제 낙원 스테이로 갈지 모르는 죽음을 기다리는 처지란말이야.
박노인 : 낙원 스테이가 뭔가요?
김노인 : 아. 이곳은 아프긴 해도 그나마 움직일 수 있는 노인들이 거주하는 곳인데 많이 아파서 움직이지 못하게 되면 낙원 스테이라고 그리로 옮겨. 정원 건너편에 있는 건물 말이야.
박노인 : (궁금하다는 듯) 거긴 어떻게 가는데요?
김노인 : (씁쓸한 표정으로) 쓰러져서 반신불수가 되거나 치매가 심하게오면 가겠지.
노박사 : 거기 가면 끝나는 거지. 죽을 때까지 산송장으로 지내는 거요. 한 병실에 노인 열 명이 지내고 전부 멀쩡한 사람이 없어요.
김노인 : 얼마 전 의식이 없던 노인 하나가 죽었는데 병원에 가보니 욕창 투성이더래.
노박사 : (침상을 부여잡고) 이런 제길..
김노인(박노인을 바라보며) 사실 낙원에 가는 순간,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고 보면 되네. 그곳에서 죽는 날까지 기다리는 거지. 마음대로 죽을 수가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