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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결 Nov 28. 2023

[희 곡] 해피 타운 3

초고령사회의 아픔

[희 곡] 해피 타운


3.해피타운 7호실


배경 360도 회전하며 해피타운 7호실에 밤이 찾아오고 세 명의 노인이 침상에 나란히 누워있다


김노인 : 벌써 10시네, 소등시간이야. 요즘 전기 값이 비싸다고 절약하라고 난리거든. 불끄고 취침등을 켜자구.


박노인 : 늙으면 잠이 없다더니 잠도 안 오는데 뭐하죠?


노박사 : 뭐 밤새 옛날 이야기하다가 잠 오면 자구, 안오면 안자구. 뭐 낮에 자든 밤에 자든 똑같이 자는 거니까.


김노인 : 낮잠도 요샌 안 와.


노박사 : (김영감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이번 주말에는 어디라도 나가서 바람 좀 쐬고 오지 그래.


김노인(길게한숨을 내쉬며) :  나가도 갈 곳이 없으니 그냥 여기 있으려고. 친척들 찾아 다녀봐야 달가워할 것 같지도 않고 만난 지 오래되서 어디 사는 지도 가물가물해.


노박사 : 그래도 어부인 손잡고 맛난 거라도 사주고 와.


김노인 : 할멈이 무릎이 안 좋아. 인공관절 수술한 지 꽤 돼서 지팡이 짚고도 오래 못 걸어. 보행기를 끌고 가야 하는데 걸음도 느리고 차 타기도 힘들고 버겁다네.


노교수 : 그럴수록 운동도 좀 시키고 같이 걷도록 하게나. 건강이 더 나빠지면 낙원 스테이로 가야 하니까. 아무리 그곳에 가면 죽으러 가는 거와 진배없잖아. 지금까지 그곳에 갔다가 해피타운으로 다시 돌아온 사람은 손가락에 꼽아요.


김노인 : 그래서 더 아플까 봐 걱정이야.


노교수 : 그러게 왜 존엄사법은 여태 진척이 안되는 거야. 어느 의원이 제안했다고 하두만 태어난 건 우리 자의가 아니지만 죽을 때는 우리 마음 아닌가. 여기서 더 병들면 사람 노릇도 못해.


김노인 : 옳은 소리지.


박노인 : 노인 요양법인지 뭔지 생기기 전에는 혼자 지내도 동사무소에서 쌀도 주고, 자선단체에서 도시락도 주고 탑골 공원에 가면 무료급식소도 있었는데 그 법이 생기고 나선 독거 노인 들을 이리로 보내는데 두 분 말씀을 들으면 제가 잘 온 건지 아닌지 헷갈리네요.


노박사: 노인요양법의 기본은 노인 존중이고 늙어서 경제적 여건이 되지 않은 노인은 국가의 지원으로 건전하고 안정된 생활을 보장하는거야. 그런데 여기서 생활하는 것이 목숨은 부지 되고 안정되는 것은 맞아. 그런데 이상해. 난 그냥 관리하기 좋게 한 곳에 몰아넣고 사육 당하는 기분이거든.


김노인 : 여기도 나름 괜찮아. 먹여주고 재워주고 굶어죽진 않으니까. 대신 시키는대로 해야하지, 로봇처럼 말일세. 걱정되는 것은 저승 갈 때가 되었는데 오줌, 똥 싸가면서 짐승처럼 가긴 싫어. 스스로 가기는 어려우니 의학의 힘을 빌리자는 건데 그게 안되니.


박노인 : 의학의 힘 이라구요?


노박사 : 이대로 마냥 가만 있을 수는 없지. 우리에게도 죽고 싶을 때 죽을 권리가 있다구. 그나마 해피 타운에 있는 사람들은 아파도 화장실 혼자 갈 정도의 노인들이니 사람처럼 사는 거지. 낙원 스테이로 가게 되면 맘대로 죽지도 못해. 스스로 할 수 있는게 없다는 걸세. 동물도 최악의 경우에는 안락사가 허용되는데 우리는 존엄

하기 때문에 끝까지까지 살아있어야 하는 거거든.


김노인 : 너무 오래 살아도 문제야. 나도 언제 아파서 그리 가게 될는지. 마누라나 건강했음 좋겠네. 나 만나서 평생 고생했는데 늘그막에 호강은커녕, 전 재산 다 잃고 거지꼴이 된 신세라니.


노박사 : 노인 연령을 또 75세로 올린다는 말이 있던데?


박노인 : 75세 미만 노인은요?


노박사 : 뭐 다른 조치가 있겠지. 우리가 무슨 힘이 있나. 모든게 국가 마음이고 잘 난 법 만드는 국회 나으리들 맘인데.


박노인 : 그사람 들이야. 다 부자니까 돈으로 편하게 노후를 보내다가 돈으로 버티다 가겠지만 우리같은 가난뱅이들은 음ᆢ


갑자기 멀리서 울부짓는듯 비명이 울려 퍼지고 잠시 정적이 흐른다.


노박사 : 또 시작했구먼.


박노인 : (놀라는 목소리로) 헉! 저건 무슨 소리입니까?


김노인 : 아. 건너편 낙원 스테이에서 나는 소리인데 치매 걸린 노인네가 소리지르는 거지.


노박사 : 낮엔 잘 안들리는데 밤이되면 크게 들린다네.


박노인 : 그렇군요.


노박사 : 아차, 나보다 동생인 것 같으니 말 놓음세. 이제 푹 주무시게.


박노인 : 그럼요. 형님으로 깍듯이 모시겠습니다.


김노인 : 이제 한식구가 된 것을 환영하네.


노박사 : 나도 환영하네. 이제 할 일이 많아질게야.


박노인 : 네. 그럼 편히 쉬십시오.


깊은 밤잠 적막이 흐르고 박노인에게 약한 조명이 비친다.


박노인(두 팔을 휘저으며) : 안가, 못가, 난 괜찮아 괜찮다구. 나 아프지 않아.


김노인(벌떡 일어나며) : 무슨 일이야 뭐야?


노박사: 박영감 목소리 같은데? 뭐지?


김노인(박노인을 흔들어 깨우며) : 이봐 괜찮아? 어디 아픈거야?


박노인(식은땀을 흘리며) : 꿈을 꿨나 봅니다.


노박사 : 무슨 꿈을 꿨길래, 식은땀 좀 봐.


박노인 : (이마에 땀을 닦으며) 낙원에 가는 꿈을 꾸었어요. 하얀 가운을 입은 남자 둘이 와서는 괜찮다는데도 막무가내로 나를..


김노인 : 긴장해서 그래. 아무일 없으니 걱정 말고 주무시게나.


박노인 : (의기소침한 목소리로) 네에.

사진 전처 출처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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