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 360도 회전하며 해피타운 7호실에 밤이 찾아오고 세 명의 노인이 침상에 나란히 누워있다
김노인 : 벌써 10시네, 소등시간이야. 요즘 전기 값이 비싸다고 절약하라고 난리거든. 불끄고 취침등을 켜자구.
박노인 : 늙으면 잠이 없다더니 잠도 안 오는데 뭐하죠?
노박사 : 뭐 밤새 옛날 이야기하다가 잠 오면 자구, 안오면 안자구. 뭐 낮에 자든 밤에 자든 똑같이 자는 거니까.
김노인 : 낮잠도 요샌 안 와.
노박사 : (김영감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이번 주말에는 어디라도 나가서 바람 좀 쐬고 오지 그래.
김노인(길게한숨을 내쉬며) : 나가도 갈 곳이 없으니 그냥 여기 있으려고. 친척들 찾아 다녀봐야 달가워할 것 같지도 않고 만난 지 오래되서 어디 사는 지도 가물가물해.
노박사 : 그래도 어부인 손잡고 맛난 거라도 사주고 와.
김노인 : 할멈이 무릎이 안 좋아. 인공관절 수술한 지 꽤 돼서 지팡이 짚고도 오래 못 걸어. 보행기를 끌고 가야 하는데 걸음도 느리고 차 타기도 힘들고 버겁다네.
노교수 : 그럴수록 운동도 좀 시키고 같이 걷도록 하게나. 건강이 더 나빠지면 낙원 스테이로 가야 하니까. 아무리 그곳에 가면 죽으러 가는 거와 진배없잖아. 지금까지 그곳에 갔다가 해피타운으로 다시 돌아온 사람은 손가락에 꼽아요.
김노인 : 그래서 더 아플까 봐 걱정이야.
노교수 : 그러게 왜 존엄사법은 여태 진척이 안되는 거야. 어느 의원이 제안했다고 하두만 태어난 건 우리 자의가 아니지만 죽을 때는 우리 마음 아닌가. 여기서 더 병들면 사람 노릇도 못해.
김노인 : 옳은 소리지.
박노인 : 노인 요양법인지 뭔지 생기기 전에는 혼자 지내도 동사무소에서 쌀도 주고, 자선단체에서 도시락도 주고 탑골 공원에 가면 무료급식소도 있었는데 그 법이 생기고 나선 독거 노인 들을 이리로 보내는데 두 분 말씀을 들으면 제가 잘 온 건지 아닌지 헷갈리네요.
노박사: 노인요양법의 기본은 노인 존중이고 늙어서 경제적 여건이 되지 않은 노인은 국가의 지원으로 건전하고 안정된 생활을 보장하는거야. 그런데 여기서 생활하는 것이 목숨은 부지 되고 안정되는 것은 맞아. 그런데 이상해. 난 그냥 관리하기 좋게 한 곳에 몰아넣고 사육 당하는 기분이거든.
김노인 : 여기도 나름 괜찮아. 먹여주고 재워주고 굶어죽진 않으니까. 대신 시키는대로 해야하지, 로봇처럼 말일세. 걱정되는 것은 저승 갈 때가 되었는데 오줌, 똥 싸가면서 짐승처럼 가긴 싫어. 스스로 가기는 어려우니 의학의 힘을 빌리자는 건데 그게 안되니.
박노인 : 의학의 힘 이라구요?
노박사 : 이대로 마냥 가만 있을 수는 없지. 우리에게도 죽고 싶을 때 죽을 권리가 있다구. 그나마 해피 타운에 있는 사람들은 아파도 화장실 혼자 갈 정도의 노인들이니 사람처럼 사는 거지. 낙원 스테이로 가게 되면 맘대로 죽지도 못해. 스스로 할 수 있는게 없다는 걸세. 동물도최악의 경우에는 안락사가 허용되는데 우리는 존엄
하기 때문에 끝까지까지 살아있어야 하는 거거든.
김노인 : 너무 오래 살아도 문제야. 나도 언제 아파서 그리 가게 될는지. 마누라나 건강했음 좋겠네. 나 만나서 평생 고생했는데 늘그막에 호강은커녕, 전 재산 다 잃고 거지꼴이 된 신세라니.
노박사 : 노인 연령을 또 75세로 올린다는 말이 있던데?
박노인 : 75세 미만 노인은요?
노박사 : 뭐 다른 조치가 있겠지. 우리가 무슨 힘이 있나. 모든게 국가 마음이고 잘 난 법 만드는 국회 나으리들 맘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