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박사(뉴스를 보다가 화난 표정으로) : 이런 죽일 놈들을 봤나. 노인 연금 인상은커녕 그나마 몇 푼 되지도 않는걸 깎는다네.
박노인 : 왜 줄인데요?
노박사 : 노인이 너무 많아 젊은 사람들 부담이 심해져서 어쩔 수 없다는데. 이런 제길.
김노인 : 그걸로 마누라가 입만 없다고 하면 외식도 하고 했는데.
박노인 : 세금 걷어서 쓸 곳이 많으니 그렇겠죠.
노박사 : 젊은 사람들에게는 취업 지원금이니 청년 지원금에 양육보조비, 주택 자금 팍팍 챙겨주는데 겨우 쥐 꼬리 만한 걸 그마저도 깎다니 이런 법이 어딨나.
김노인 : 그러니 살기 어려운 노인들이 병마에 빈곤까지 겹쳐 스스로 가는거야.
노박사 : 자네들, 우리나라 노인 자살률이 몇 퍼센트나 되는 줄 아는가?
박노인 : 아니요 잘 모르겠는데요.
노박사: 노인 중에서 우리 같은 80대 노인들의 자살률이 제일 높고 아마 모르길 몰라도 지금이 2045년 이니까 아마 최소 25%는 될 껄? 십수 년 전에 한 20% 정도 됐거든. 노인 네명 중 한 명은 스스로 목숨을 다하는 거야, 압도적으로 세계 최고지.
김노인 : 역시 노박사야. 박학다식해요.
박노인 (빙그레 웃으며) : 그래서 노박사셨군요.
노박사 : 몸 아프지, 우울증 생기지, 잠도 못 자지. 나만 해도 불면증에 전립선에 화장실 수시로 가지. 귀도 잘 안 들리고, 옛날에 교통사고로 무릎 십자인대 접합 수술을 했는데 나이가 드니 이제 다리도 절룩거리고 이젠 끝났어. 지금 먹는 약이 일곱 가지야. 돈이 있어도 살기 힘든게 노인인데ᆢ
박노인 : 그나 저나 노박사님은 어떻게 여기 오셨어요
김노인 : 말 안 할 걸?
노박사 : (고개를 외면하며) 못할 것도 없지. 뭐 대단한 일이라고.
박노인 (다가서며) : 말씀 좀 해보세요
노박사 : 사업에 투자했는데 사기를 당했어. 전 재산 차압 딱지 붙고 마누라는 병을 얻어 죽었지. 나 때문인 것 같아 너무 미안해.
박노인 : 자녀분은 없으세요?
노박사 : (갑자기 언성을 높이며) 없어!
엠뷸런스 소리가 멀리서 가까이로 들려 온다
김노인 : 오늘 또 누가 세상을 떠났구만.
박노인 : 낙원인가 하는 곳에서 말인가요?
노박사 : 아마도.
김노인 : 예전에 우리와 함께 있던 오 뭐더라 아 오구만이, 오 영감 쓰러져서 그리 들어갔었는데 겨우 회복회서 다시 이리 왔지 뭐야. 살아서 이리로 돌아온 사람은 그 사람을 포함해 몇 명뿐이야. 낙원에선 저렇게 생을 마치는거야.
박노인 : 가족들은 알고들 있을까요?
노박사 : (어이 없다는 표정으로) 하하. 이 사람아. 여긴 가족이 없거나 있어도 함께 살 수 없는 어려운 형편인 사람이 오는데 그마저도 낙원은 중증 환자들 뿐이잖나. 가족들이 거추장스러워하는 노인들이 오는 곳이야. 장례 때 가족 들이 오면 다행인데 안오는 사람들도 많다더라구.
김노인 : 우리 때나 부모도 모시고 자식 노릇하려고 했지. 지금이야 어디 그런가.
노박사 : 지금은 스위스뿐만 아니라 미국하고 유럽 등지에서는 존엄사가 시행 중인데 우리나라는 인간의 권리다 뭐다 해서 안된다네
김노인 : 뭐가 인권이야. 잘 사는 것만큼 잘 죽는 것이 인권 아닌가. 우리에게 진짜 필요한 건 죽음에 대한 결정권이야.
박노인 : 박사님 자세히 설명 좀 해주시죠.
노박사 : 말 그대로야. 여기 해피타운에서 살다가 중증 환자가 되서 더 이상 삶이 비루해지면 자신의 선택에 따라 안락사 하는 거지. 살아있으면 기저귀 차고 똥 오줌을 누가 받아내줘야 하는거니까. 미리 존엄사에 대해 약정을 해두는 거라고 할까?
김노인 : 아, 그 머지. 웰 뭐라더라?
박영감 : 웰다잉이요?
김영감 : (손뼉을 한 번 치며) 그렇지 웰 다잉!
노박사 : 참. 이번 주 토요일에 탑골 공원 앞에서 존엄사 촉구 집회가 있잖아. 박 노인도 참여할텐가? 같이 가세. 우리가 피켓도 만들어놓았어.
박노인 : 아! 그럼 그때 만드시던 것이 피켓이었어요?
노박사 : 그렇다네. 노인 존엄사 추진위원회라고 있는데, 거기서 주최하는 합법 집회니까 문제도 없고 거리 행진도 할 걸세.
김노인 : 공원에 가면 아는 얼굴들도 있을 테고 바람도 쐴 겸 나가보지. 뭐.
노박사 : 예끼! 이 사람아. 놀러 가는 거 아니야. 인간답게 죽을 권리를 외치러 가는 거라구.
김노인(노박사의 눈을 피해 박노인에게 귓속말로) : 노박사에게 되도록 자식 문제는 묻지 말게나. 사정이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