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박사 : 아니. 생각을 해보게. 청년 지원금 늘리라는 건 좋아. 근데 노인 알기를 우습게 알잖나. 우린 산업화 시대에 태어나 먹고 살려고 갖은 고생을 다 했잖아. 우리 젊었을 때 휴대폰이 있었고 최첨단 컴퓨터가 있었나, 아님 지금처럼 서울에서 부산 가는데 한 시간 밖에 안걸리는 고속철도가 있었느냐 말이야. 그게 다 우리가 일궈낸 거잖아.
김노인(한숨을 푹쉬며) : 알지 알아.
노박사 : 난 고통스러운 죽음이 무섭고 두려워. 평생 고생만 하면서 살다가 마지막만큼은 편안하게 가고 싶다네. 국가는 노인들을 위한다고 다 가두어 놓고 말이 좋아 해피 타운이지. 자네는 이곳에서 행복한가? 우린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폐기처분을 앞둔 힘없는 로봇일 뿐야. 게다가 젊은 녀석들은 늙고 힘없으면 그냥 죽으라는 거잖아. 그럼 젊어서 우리가 낸 세금은 다 어디로 갔냐구.
김노인 : 그러게 차라리 월세살이라도 어찌보면 마누라랑 살때가 좋았어
잠시 정적이 흐르고 노크 소리가 난다.
박노인: 누구슈?
청년 1 : 실례합니다.
박노인 : 누구세요?
청년 1: 네. 어르신. 아까 탑골공원에서 어르신 들 뵈었던 청년입니다.
박노인 (문을 열고 눈이 휘둥 그래지며) 어쩐일로?
청년 1 (노박사를 향하며 정중히 인사한다) 어르신 아까는 정말 죄송했습니다.
김노인 : 아 그러고 보니 아까 때 연설했던 청년이구만.
청년 1 : 네. 맞습니다. 아까 일로 실수한 것 같아서 사과드리러 왔습니다. 어르신들께 예의를 지켜야 하는데 저희 들이 실수를 한 듯합니다
박노인 : 그런데 우리가 여기 있는 줄 알고 오셨수?
청년 1: 아. 노존추 회장님께 여쭤보니 이곳에 계시다 해서요.
노박사 : 사과 필요 없으니 가요. 젊은 사람들이 우리 같은 늙은이가 눈에 들어오겠소.
김노인 : (당황하여) 그러지 말고 얘기나 들어보세.
청년 1(노박사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 어르신, 아까 일은 제가 정중히 사과드리겠습니다.
노박사 : (마음을 가라 앉히고) 자리에 앉아요.
청년1(자리에 앉으며) 감사합니다.
노박사: 사실, 우리가 오늘 시위를 했던 이유는 정부로부터 돈을 달라는 것도 아니고 노인 우대를 해달라는 것도 아니었소. 누구나 나이가 들잖아요. 노인이 되면 점점 쇠약해지고 아픈 곳이 많아지는데 지금 정도면 그나마 숟가락이라도 들 힘이 있으니 다행이지만 나중엔 병이 들어 갓 태어난 아기처럼 모든 것을 남의 손에 맡겨야 하오. 아마 젊은 사람 들은 거기까지는 생각 못하겠지. 지금 당장 살기가 팍팍하니 말이오.
김영감 : 그래요. 그래요. 지금은 꼰대니 틀딱이니 천덕꾸러기 대접을 받지만 우리도 젊은 시절이 있었다오.
청년 1 : 네. 옳으신 말씀입니다.
노박사 : 옛날에는 우리 조상들은 전부 집에서 돌아가셨지. 그냥 병들면 집에 누워 있다가 세상을 뜨셨는데 시름시름 앓다가 노환으로 가셨다고 다 이렇게 이해를 했고 그런데 요즘은 병원에서 임종을 맞이하게 돼. 일단 병원에 입원하면 자연스런 죽음이 없어. 스스로 식사를 못 하게 되면 코로 관을 넣거나, 수액 주사로 영양공급을 하지, 심장이 멎으면 심폐소생술을 하고, 호흡을 못 하면 인공호흡기를 쓴다네. 만일 뇌가 손상되어 식물인간이 되면 회복 가능성이 없어도 그냥 살아야 되. 연명의료법이 시행된 지가 몆 십 년이 지났어도 사망이 임박한 환자에게만 적용되서 식물인간이 된 사람은 죽지도 못하고 고통스럽게 몇 년을 살지 몰라.
박노인 : 들어보니 그렇네. 아 끔찍하다.
노박사 : 환자도 고생, 가족도 고생인데 우리 같은 갈 곳 없는 노인들은 더 힘들겠지.
김노인 : 세상을 떠날 때 누구에게도 짐이 되고 싶지 않고 마지막 존엄을 지키고 싶어서 그리 했으니이해를 부탁해요.
청년 1 : 네. 어르신. 저도 제 할아버지가 지금 요양 병원에 계셔서 충분히 이해합니다. 집회가 끝나고 집에 돌아가려 하는데 제가 그런건 아니지만 어르신들께 심한 말을 한 것같아 너무 마음에 걸려 급히 어르신들을 찾았는데 모두 가시고 안 계시더라구요.
노박사 : 그랬구만.
김노인 : 사실 젊은이들도 살기가 어렵지. 모르는 바 아니야. 우리도 더 좋은 대우를 받으면 좋겠지만 그건 바라지도 않아요. 돈 많은 사람들이야 돈이 해결해주지만 우리 같은 사람은 그렇지를 못하니 후세에게 짐이 되면서까지 모진 목숨 이어가고 싶지는 않아.
청년 1 : 죄송합니다. 우리는 청년들의 고달픔만 생각했지 어르신 들의 아픔과 걱정에 대해서까지 생각이 미치질 못했습니다.
김노인 : 괜찮아요. 청년 들하고 대화하기도. 어려운 시절에 이렇게 찾아와서 조금이라도 우리 사정을 들어준 것 만해도 고마운 일이야.
청년 1 : 청년과 어르신 들이 마음을 열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세대의 간극을 좁히는 노력이 이젠 어려운 세상입니다.
노박사 : 그렇지. 노인은 고집불통에 잉여인간이며 냄새나는 혐오 대상이된 세상이니까.
청년 1 : 제가 살고 있는 청년 시티에 돌아가면 우리도 언젠가 노인이 될 것이고 어르신 들이 행복해야 다음 세대, 그 다음세대도 행복한 것이라는 것부터 말을 꺼내 이야기 해보려 합니다.
노박사 : 거기 사는 구만. 청년들이 주로 산다는 청년 중점 구역 말하는거지.
청년 1 : 네. 어렵겠지만 청년과 노인, 우리가 모두 행복한 방안을 연구해 봐야 겠지요. 어르신들이 당당하고 존중받는 나라가 되어야 우리도 훗날 노인이 되었을 때 당당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노박사 : 그리 생각해주니 고맙네.
청년 1 : 그리고 존엄사 문제는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해요. 아직 까지는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방식으로만 진행되고 있고 안락사는 불법이니까 쉽지 않을겁니다.
노박사 : 들어주고 이해만 해줘도 한 발 나가는 거지
김노인 : 젊은이와 이렇게 대화 하는게 얼마 만인지.
청년 1 :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또, 찾아뵙겠습니다.
노박사 (손을 잡으며) : 그래요 또 봅시다.
김노인 : 조심히 잘 가요
박노인 : 요새 저런 젊은이가 있다니 놀랍습니다.
노박사 : 그러게 우리 들과의 대화는 그렇다 치고 사과까지 하다니 고맙지.
김노인 : 자, 이제 우리 물이라도 한 잔 하면서 우리의 죽을 권리를 위해 건배라도 외쳐야지
그 시간 TV뉴스에서 앵커가 긴급속보를 전하며 청년들과 노인 들의 시위모습이 화면으로 비춰진다.
앵커(목소리로만) : 오늘 파고다 공원에서는 청년 일자리와 지원금을 획기적으로 늘려 달라는 청년 들의 시위가 있었습니다. 한편, 노인 들 또한 존엄사법 제정을 촉구하며 같은 장소에서 시위를 벌였는데 노인과 청년 사이에 작은 마찰이 일어났습니다. 정부는 2050 청년 프로젝트를 통해 청년 일자리를 획기적으로 늘리겠다고 발표하였으나 노인 존엄사법은 인간 생명 존중의 정신에 비추어볼 때 앞으로 수많은 협의와 공론화 과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