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결 Jan 11. 2024

쪽지의 온도

감성 에세이 7

[에세이] 쪽지의 온도

민병식


아침 저녁으로 해가 짧아졌음을 여실히느끼는 계절이다. 눈을 뜨자마자 밖을 내다보니 깜깜하다. 마치 어젯 밤 자정무렵의 인적이 드문 밤 풍경과 같다. 거리는 노랑색 가로등이 도로의 자동차 헤드라이트 불빛과 어우러져 해뜨기 전의 세상을 비추려는 듯 몸을 태우고 있고 쌀쌀한 아침공기가 계절을 가른다.


난 자가용 출근 보다는 대중교통 이용을 선호하는데 이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예전에 비오는 날, 크게 교통사고가 난 경험이 있어서 그 때 이후로 부득이하게 운전을 해야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비나 눈이오는 날은 절대 운전을 하지 않는다. 또 하나의 이유는 집에서 거리가 먼  근무지로 다닐 때 출퇴근 시간을 이용해 책을 읽기 위해서였다. 늘 피로한데 한 시간씩 운전해서 집에 오면 운동도 거르고 잠만자기 일쑤였다. 또, 환승을 하기 위해 타고 내리는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버스를 이용하는 것은 세상이주는 나름의소소한 행복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마 출근 길에 마음이 가벼운 사람은 없을 듯하다. 하루 중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인 회사는 중요한 삶의 터전이기도 하지만 치열한 생존의 전쟁터이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 생존의 현장으로 가는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는 버스를 만난다. 선택하지 않은  제각기 다른 얼굴들을 만나는 시간, 열심히 세상을 사는 사람들이다. 자리에 앉아 꾸벅꾸벅 조는 사람, 휴대폰을 열심히 들여다 보는 사람, 머리가 부시시한 사람 등 각양각색의 낮선 얼굴들과 조우하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일단 자리에 앉으면 아주 소중한 조금의 짬이 주어진다. 이 시간에 인터넷 신문을 읽거나  책을 읽기도 하고 때론 졸거나 아무 생각없이 차창 밖  풍경을 감상하기도 한다. 밖으로 보이는 거리, 편의점, 육교, 바쁘게 움직이는 차들과 사람들, 부산한 삶의 현장이 그곳에 있고 나도 그들과 함께있다.  회사에서 일단 업무를 시작하고나면 그럴듯한 휴식시간이라고는 점심시간인데 밥먹고 커피한잔 하기도 빠듯한 시간이다. 업무와 업무의 연결고리는 계속 부산물이 생겨 꼬리에 꼬리를 무는 끝말잇기처럼 끊임없이 도돌이표를 찍는다. 퇴근 후에도 집에서 할 것들이 꽤 있다. 결국 무엇을 하든 나 자신을 위해 온전히 쓸 수있는 시간을 찾아 에너지를 얻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시간이 필요한데 나에게 출퇴근 시간은 생각의 공간, 휴식의 공간, 또 창조의 공간이기도한 것이었다.


어김없이 출근을 위해 길을 나선다. 차가운 공기가 뺨을 가르고 안경에 습기가 차서 앞이 뿌였다. 제일 처음 가는 곳은 편의점이다. 뜨끈한 모닝커피 한 잔으로 몸을 풀며 하루의 출발선에 선다. 40살이 거의 다되었다는 야간 아르바이트 총각은 알고봤더니  애기 아빠다. 몇년을 아침마다 만나는 얼굴인데 빠지는 날이 없이 무척 성실하다. 처음엔 사장 아들인줄 알았는데 매일 인사를 나누다보니 그의 말에 의하면 얼떨결에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겨 생활전선에 뛰어들었고 이것 저것 하다 나이가 들면서 받아주는 회사도 없고 어찌어찌해서 알바를 하게 되었단다. 언제부터인가 그는  나를 형님이라 부른다. 아침에 제일 처음 대화를 여는 사람이다. 그냥 아무 조건없는 만남, 인사를 주고 받고 농담 몇 마디 건네고 ᆢ


회사에가려면 육교 건너 버스정류장에 가야한다.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벽에 노랑색 쪽지에 무언가 글씨가 쓰여있다.


"오늘 하루 쭉 ~ 행복한일만 있기를 바랄께요^^  언제나 고생이 많으세요  다들!! 쪽지는 제가 수거할께요 (오늘 중에). 행복한 하루 되세요"


인간적이다.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살면서 저런 쪽지를 처음 봤다. 개인적으로 고맙다는 쪽지나 학창 시절에 유행하는 마니또 게임 처럼 개인을 향한 감사를 표시하는 마음의 쪽지는 많이 받아봤으나 불특정다수를 향한 마음은 처음이다. 하루를 여는 시작점에 단 몇 글자로 고마움이 느껴진다. 별 것 아닌 듯한 몇 글자에 위로를 받는다. 휴머니즘을 최고 삶의 가치로 내세우고 있는 나도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것, 할  생각조차도 못해본 것이다. 가슴 깊은 곳에서 솟아 오르는 고마움, 나도 모르게 저절로 인사를 하게된다. 좀 더 따뜻한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 감사와 존중과 배려의 마음이 것이다.하다.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길은 사랑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실천하는 것임을 쪽지를 보며 다시 한 번 깨닫는다.


누가 붙여 놓은 것인지 모르지만 정말 고맙다. 세상은 말 한마디, 글 몇자로 완전히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조그만 말과 글이 합해져 각각의 마음을 움직인다면 하나의 마음이 여럿을 만들고 그 따뜻한 마음 들이 모여서 좀 더 인간적인 세상을 만들지 않을까. 휴머니즘의 실천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아주 작은 것에서부처 출발한다는 진리를 다시 한번 깨닫고 되뇌이는 아침, 날은 점점 쌀쌀해져가지만 쪽지의 온도가 후끈 내 몸을 뎁히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눈사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