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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결 Jan 20. 2024

회자정리(會者定離), 거자필반(去者必返)

감성 에세이 9

[에세이] 회자정리(會者定離), 거자필반(去者必返)

한결


정기인사발령이 났다. 이번에 근무처를 옮기면 9번째, 정확히 3년을 근무한 곳에서 이제 떠나야한다. 그동안 내가 가고싶어 하는 곳도 있었고 원치않는 곳도 있었는데 매 번 인사철마다 자리를 옮길 때가 되면 세상은 내 맘대로 되지않는다는 법칙을 여실히 깨닫게 되는 동시에 떠나야하는 마음이 시원 섭섭하기도하고 늘 후회가 남는다.


마지막 근무일이다. 출근을 일찍 하는 편이어서 아침 여섯시반 길을 나선다. 아직은 깜깜한 세상, 버스정류장엔 벌써 몇몇의 사람 들이 한 겨울의 추위를 잊고자 발을 동동 구르고 있고 눈에 익은  버스가 들어온다.  매일 아침 일곱시가 되면 정확히 문을여는 회사 바로 길 건너에 있는 단골 커피숍에 들렀다. 따뜻한 생강차 한 잔에 추위를 녹이며 이제 막 깨어 나려 기지개를 펴는 세상의 아침과 조우하며 현 근무처의  마지막 출근을 준비한다.


잠시 후 익숙한 사무실 풍경이 펼쳐진다. 출입문 책상, 나와 한 몸이었던 의자까지 3년간 고락을 함께 해왔던 친구 들에게 아침인사를 한다. 출장 다닐 때 마다 타고 다녔던 승합차는 작년 여름, 혈압 때문인지, 스트레스 때문인지 잠시 정신을 잃으면서 쓰러졌을 때 병원으로 신속히 데려다 준 고마운 존재다. 눈에 익은 집기 들과 풍경 들에게 아쉬움을 담아 작별인사를 건넨다.


3년 전 1월, 처음 이곳에 온 날은 눈이 참 많이 내린 날이 었다. 새로운 인연들을 만나 어느새 3년의 시간이 후딱 지나가고 네번의 겨울을 맞고 있는 즈음 내 머리 위에도 처음 이곳에 온 날 내리던 눈 만큼이나 하얗게 흰 머리가 쌓였다. 낮익은 풍경들과 주변의 환경 들은 그대로 있지만 사람은 강물 흐르듯 계속 바뀐다. 그동안 그만둔 직원 들, 새로 입사해 일하고 함께 일하던 직원 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감과 동시에 코로나가 한창 만연할 무렵 겪었던 숱한 고비 들, 열심히 마음을 맞추어 일했던, 하루 24시간 중 8시간, 3분의 1의 시간을 함께한 소중한 제 2의 가족 들을 이제 함께할 수가 없다고 생각하니 왠지모를 아쉬움이 주변을 덮는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산책에 나섰다. 이것 또한 지금의 동료들과 함께 하는 마지막 산책이다. 처음 산책하던 순간이 떠오르고 늘 다니던 코스가 오늘은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계절에 따라 배경은 달라지지만 길은 그대로이듯  누군가 떠나면 또 누군가가 그 빈 자리를 대신하고 삶은 계절의 순환처럼 흐르며 계속될 것이다. 인생은 만남과 헤어짐의 과정, 무수한 사람 들, 환경, 사물 들까지 만나고 또 헤어지며 평생 내가 소유하고 살 수는 없는 결국은 모두 내려놓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생자필멸의 과정일진대 그 동안을 돌아보면서 나는 만나고 이별한 이들에게 얼마나 괜찮은 사람이었던가. 얼마나 그들의 마음에 감사함으로 남았던가에 대해 돌아보게 되는 시간이다.


회자정리, 거자필반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만남이 있으면 반드시 이별이 있고, 또 간 사람은 반드시 돌아오기마련이라는 불교의 윤회사상이 바탕이 된  말이다. 지금의 직원들과 또 다시 만나서 일하게 될 일은 없겠지만 이별 후에도 내가 그들을 좋은 마음으로 추억하고 그들이 나를 기억하고 가끔 꺼내어 보다면 이것이 반드시 만나게되는 거자필반일 것이다. 오후에는 조퇴를 내고 가기로 했다. 조용히 커피도 한 잔 마시고 산책도 하면서 사랑하는 동료들과의 헤어짐에 스며든 아쉬움을  달래보려한다.


날이 많이 춥지 않아서 다행이다. 남아 있는 동료들이 늘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기원하며 잘 떼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뗀다. 한걸음 뗄데 이 사람, 두걸음에 저 사람, 함께했던 시간 들이 많이 그리울 듯 한 것을 보니 난 이곳에서 행복하고 감사했음에 틀림없다. 드디어 산책이 끝나고 직원들은 회사로 난 집으로 간다. 회사로 들어가며 손을 흔드는 동료 들의 얼굴이 점점 멀어져간다. 오늘 밤은 쉽사리 잠들지 못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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