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재수 시절의 이야기이다.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허구헌 날 친구 들과 놀러만 다녔으니 대학을 갈리가 있나, 결국 재수를 하게 되었는데 서울역 근처 당시 입시 단과학원으로 유명했던 대일 학원이라는 곳을 다니게 되었다. 그 당시 사람이 많이다니는 서울역이나 종로 거리 등에는 늘 야바위꾼이라는 어리숙한 시민들의 돈을 채가는 사람 들이 있었는데 야바위란 컵 세개를 엎어 놓고 그 중 하나의 컵에 주사위나 구슬을 넣은 후 돈을 건 사람이 보는 앞에서 요리조리 섞은 후 주사위나 구슬이 있는 곳을 맞히는 게임으로 맞히면 돈을 몇 배로 돌려주고, 틀리면 돈을 가져가는 식의 사행성 게임이었다. 야바위는 보통 세 명 정도의 팀원으로 이루어지는데 게임을 진행하는 사람, 그리고 바람을 잡는 바람잡이, 단속 경찰이 오는지 망을 보는 망잡이로 구성되어 있고 그들의 무대는 사람이 많이 다니는 전철역 앞, 시장, 공원, 길거리 등이었다.
어느 날 고등학교 동창인 재수생 친구 세명과 함께 학원을 가는 도중 서울역 출구를 나오니 사람 들이 모여 웅성거린다. 가까이 가보니 야바위 아저씨가 좌판을 깔고 큰 소리로 외치고 있다.
"자 돈놓고 돈먹기, 맞추면 거신 금액의 다섯배를 드립니다."
"사장님, 보지만 마시고 한 번 해보세요. 맞추면 다섯배라니까요. 에이 이걸 못맞추나. 그럼 연습게임으로 함 맞춰보세요."
야바위꾼의 컵 세개가 이리 저리 자리를 바꾸며 움직인다.눈에 다 담을 수 없는 현란한 손놀림이 경이롭기까지 하다.
"연습이니까. 이거요"
어떤 젊은 남자가 하나의 컵을 가리킨다.
"앗! 진짜 들어있네. 이러면 안되는데"
연습게임을 했던 청년이 자신감이 붙었는지 이번엔 천원차리 지폐한 장을 꺼내더니 컵 하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킨다.첫번 째와 두번 째 컵은 비었고 청년이 찍은 마지막 컵에서 주사위가 나온다.첫 판부터 망했네라고 하며 목소리를 크게 높여 오천원을 준다.
순식간에 청년은 사천원을 벌었다.
"날이면 날마다 오는 게 아니예요. 자, 횡재 찬스, 맞히면 다섯배 드립니다. 한 번 도전해보세요."
말릴 사이도 없이 평상시 조용하고, 있는 듯 없는 듯한 내 친구 들 중 한 녀석이 나선다.컵은 빙판 위로 스케이팅을 하듯 부드럽게 좌판 위를 지치며 돌아가고 친구는 천원을 건다. 그러나 친구가 자신만만하게 지목한 컵을 열었으나 주사위는 없었다. 친구는 또 천원을 걸고 이번에도 실패하자 이천원, 오천원 단위로 금액이 올라가더니 결국 학원비 모두를 잃고 말았다. 그 당시 단과학원 과목당 한 타임 학원비가 만원이 안될 때였는데 친구는 눈 깜짝할 사이에 한달치 학원비 몇만 원을 잃었다. 친구는 더럭 겁이 났는지 울상이 되어 돈을 도로 돌려달라고 떼를 쓰기 시작한다.
"돈 도로 주세요. 그거 학원비란 말이예요"
"무슨 소리야. 맞추면 다섯 배 달라고 했을 꺼면서, 야 돈없으면 꺼져."
야바위꾼이 눈을 부라리며 소리를 칠 때 갑자기 구경하던 아저씨가 "짭새, 짭새" 소리를 친다. 그러더니 야바위꾼과 짭새라고 소리지르던 아저씨, 아까 돈을 딴 청년까지 합세하여 좌판을 허겁지겁 치우기 시작한다. 저 멀리서 호각소리가 들린다. 단속경찰이 오고있는 것이다. 친구는 야바위꾼의 옷을 붙잡고 악착같이 매달린다. 야바위꾼이 아무리 뿌리쳐도 소용이없다. 경찰들이 가까이오자 야바위꾼은 "미친 새끼"라고 욕을하며 지폐를 던지고는 도망갔다. 그렇게 친구는 학원비를 찾았고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지금 야바위꾼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지만 우리 사는 세상에 야바위같은 일이 얼마나 많은가. 맞추면 몇배로 돌려준다는 말에 현혹된 허황된 욕심이 나를 망친다. 요즘 '바카라'라는 온라인 도박에 빠져 일확천금을 노리다가 부모님 소유의 금붙이까지 몰래 팔아서 도박자금으로 쓰거나 부모님 주민등록번호까지 도용해 사채를 쓰려고 하다가 걸린 청소년까지 있는 등 청소년 도박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이제 한창 미래에 대해 꿈을 꾸고 공부해안할 나이에 코로나 보다 더 무서운 도박 중독의 늪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는 꼴이다.
욕심이 세상을 망치고 사람을 망친다. 불법 토토, 다단계, 이 모든 것들이 물질 앞에선 도덕이고 양심이고 필요 없다는 인간성이 파괴된 황금만능주의를 말한다. 어른 들이 불법을 조장하고 범죄로 한 몫 잡으려고 하는데 배우는 학생 들이 따라하는 것을 뭐라할 수 있을까. 투자와 투기는 다르듯 게임과 도박은 엄연한 차이가 있다. 중심에 거짓이 또아리를 틀고 비정상이 정상인 것처럼 간주되는 야바위의 마음이 판치는 한 나라의 미래는 없다. 눈감으면 코 베어간다는 속담이 있는데 요즘은 눈을 뜨고 있어도 코를 언제 베일지 모르는 세상이다. 사회 곳곳에 여전히 야바위꾼은 건재하고 호시탐탐 사람 들의 순수한 마음을 비집고 상처를 낼 준비를 하고 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없는 사람이 되기는 힘들어도 부끄럼 없기를 기도하고 소망하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야 하 않을까.
야바위는 마술이 아니다. 마술은 트릭을 이용해 즐거움을 선사하지만 야바위는 타인을 이용해 자신의 이익을 취하는 사기다.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금전만을 추구한다면 야바위꾼과 무엇이 다르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당한 노력과 그 결과물에 따른 감사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