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 전 쯤이던가 토요일, 어머니 외출을 위해 요양병원으로 가려고 버스를 타고 가던 중이 었다. 훨체어를 탄 장애인 한 사람이 내릴 준비를 하고 있는데 저상버스였다. 저상버스란 장애인이나 노약자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버스로 장애인들이 휠체어를 탄 채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오를 수 있도록 차체 바닥이 낮고 출입구에 계단 대신 경사판이 설치된 버스다. 경사판이 아주 느리게 서서히 나오고 들어가게 되어있는데 그때 운전기사가 빨리 가야할 이유가 있었는지는 몰라도 '에이 에이' 하면서 인상을 찡그리며 뭐라고 투덜거리는거다. 휠체어가 내리자마자 버스는 신속히 출발하였고 그 뒤로도 버스 기사는 혼자 알아들을 수 없는 투덜거림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우리 어머니도 휠체어를 타고 다니시는데 이 저상버스를 이용했으면 저런 꼴을 당했을까 생각하니 순간 불쾌해진다.
최근에 대중버스의 서비스가 나아졌다고는 하나 만족스럽지는 않다. 과속으로 손잡이를 잡고 있어도 중심이 흔들려 옆사람과 부딪히기 일쑤고 끼어들기, 사람이 좌석에 앉지도 않았는데 출발하기 등 버스 내부에 붙여놓은 친절이나 교통법규지키기 스티커가 무색할 정도다. 오늘도 요양병원을 가는 길, 할머니 한 분이 타셨는데 노인이 되면 동작도 느려지고 평형감각도 떨어진다. 할머니가 천천히 좌석을 찾아 이동하는데 갑자기 기사가 소리를 뻑하고 내지른다.
"할머니 빨리 앉으세요. 빨리 앉으시라고, 버스 출발해요"
노인은 버스도 이용하지말고 택시나 자가용만 타고 다녀야하는지 의아스럽다. 이런 운전 기사들이 하나 둘이 아니다. 버스회사에서는 친절 교육을 하였을 것이고 또, 친절한 기사분도 있으나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해마다 수시로 버스 요금은 올리면서 서비스 마인드는 그대로다. 이런 세상을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을까.
장애인은 선천적인 장애인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어머니는 뇌경색에 알츠하이머 치매로 장애등급을 받으셨고 부친 또한 척추관 협착증으로 거동이 많이 불편하셔서 장애등급을 받으셨다. 젊어서 건강했던 사람 들도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노인성 질환으로 장애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100세시대를 맞아 100세까지 건강하리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갑작스런 사고로 인해서 , 나이가 들어서 등 장애의 요인은 많다. 어떤 나라가 선진국이며 복지국가인가 생각해보면 내가 생각하는 선진국은 장애인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를 최우선적으로 배려하는 나라가 선진국이다. 장애와 비장애간의 경계는 없다. 왜냐하면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내 가족이 장애 때문에 몸이 불편하고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하다면 그래서 버스기사에게 구박을 받는다면 우리들의 마음은 어떨까. 장애는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그때도 모른척하고 가만히 보고만 있을 것인가. 장애인, 비장애인 모두가 존중받을 권리, 인간답게 살 권리,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모두가 평등한 대한민국 국민이고 누군가의 사랑받는 붕소이고 자녀다. 이제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모두가 다 같이 행복하게 잘사는 사회는 구호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나보다 어려운 사람, 힘든 사람을 위해 모두가 마음을 나누어야 한다는 것을 배웠을 터 말로가 아닌 실천하는 사회가 중요하다.
요즘은 저상버스도 많아지고 장애인 택시도 생겨서 예전보다 편해진 것만은 틀림없다. 그러나 저상버스가 늘어나는 숫자보다 훨체어가 내릴 때 기다려주는 시민들의 마음, 기사아저씨 친절한 도움, 장애인 때문에 버스가 느리게 출발해 내가 불편해진다가 아닌 장애이기에 당연히 그렇게 해야한다는 당위성이 평범해지는 세상이 어서 오길 바라는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