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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결 Sep 03. 2024

통증

공감 에세이

[에세이] 통증

한결


아침 일찍 일어나 아파트 앞 의자에 앉았다. 화단에 클로버가 지천이다. 어린 시절 소꿉친구들과 여름에 놓아두었던 작은 추억 조각 들이 바람을 타고 살포시 날아들고 토끼풀꽃 활짝 피었던 길에서 꽃반지를 만들어 팔짝 팔짝  함께 뛰어놀던 시절, 그때는 그 세상이 전부인줄 알았던 동심의 세상을 잠시 추억해본다. 방금 타온 커피에서 낙엽타는 하고처럼 은은한 커피향이 난다. 한낮은 아직 무더위가 가시지 않았지만 아침, 저녁으로는 가을이 빼꼼 하고 문을 열려고 하는 9월의 첫날, 나름 여유를 찾아 혼자만의 선선한 아침을 즐긴다. 앉아 있다보니 허리가 뻐근하다. 요새 허리가 말썽이다. 한동안 괜찮더니  출장이 많아 차를 많이 타고 다닌것도 있겠고 올해 여름이 너무더워 체력이 저하된 탓도 있겠다. 더구나 요양병원에 계시는 어머니 외출시  화장실 사용시킬 때나, 보행기를 끌고 운동시킬 때 무리하게 허리를 써서 요즘  며칠동안 허리가 조금 안좋긵했었는데 딱딱한 의자에 앉아 있자니 영 불편하다.


드디어 저녁 즈음에 사단이 났다. 바닥에 뭘 떨어뜨린 물건을 주우려고 허리를 급히 굽히는 순간 허리에서 '쫙'하는 느낌이 난다. 순간 '악'하고 비명을 질렀다. 원래 허리가 좋지 않아 매사에 조심했었고 이런 경험이 수차례 있는지라  그 통증의 심각함을  알고 있었다. 최근 몇년 간은 조심조심 한  끝에 이런 일이 없었는데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든다.  급히 진통소염제를 복용하고 아픈 허리를 부여잡고 부랴부랴 옷장 서랍 어딘가에서 복대를 찾았다. 허리가 아플 때마다 착용했던 것인데 다행히 이사올 때 버리지 않고 챙겨두었었나보다. 자리에 누웠다. 등에서 식은 땀이 주르르 흐른다. 내일 회사나 갈수 있을려나 걱정이 앞선다. 누워있을 때는 그나마 통증이 덜한데 화장실 사용할 때 일어나기가 여간 버북스러운게 아니다. 일어날 때마다 허리에서 '찌릿 찌릿'  식은 땀이 줄줄 흐르고 온 몸에 힘이 빠진다.  걸을 때 마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어기적 거리며 일요일 저녁을 고통으로 보낸다.


지겹도록 가지 않는 시간을 뒤로 아침에 통증의학과를 방문했다. 아직 진료를 하려면 삼십 분이나 넘게 남았는데 대기실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한결 위로가 된다. 의사 선생님께서 허리가 많이 상했다고 하시며 앞으로는 허리가 약간이라도 뻐근하거나 아픈 전조증상이 있으면 신속히 와서 물리치료를 받으라고 한다.

허리에 주사바늘을 얼마나 쑤셔대는지 엎드려 한참을 끙끙대다보니 먹은 것도 없는 데다가 힘이 빠져 어질어질하다.


치료가 끝나고 회사로 향하는 버스, 부모님의 얼굴이 떠오른다. 수시로 병원  입퇴원을 하는 아버지와 요양병원에 입원해 재활치료를 받고 있는 어머니의 마음은 어떨까. 허리 수술을 두 번이나하고 다리를 절고 지팡이에 의지해 겨우 걸어다니는 쇠약한 몸의 아버지, 그나마 아버지는 걷기나 하지만  어머니는 보행기에 의지해서 걷기도 힘들어 휠체어에 태워 밀어 드려야한다.아픈 곳이 한 두곳이 아니라 부모님이 먹는 약을 보면 아침,  점심 저녁으로 한 웅큼씩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한 양이다. 당신 들이 가진 통증은 얼마나 심할런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를 것이다. 삶의 질은 건강함에서 온다. 허리 조금 삐끗해서 오는 불편함도 이럴진대 안 아픈 곳이 없는 노인의 삶은 어쩌면 100세 시대의 삶 중에서 최악의 시간일 수 밖에 없다.


그 최악의 삶은 돌봄을 하는 자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나마 나의 경우는 아버지는 집에, 어머니는 요양병원에 계셔서 일주일에 하루 정도만 시간을 할애하면 되는데 그것도 힘들다고 늘 투덜거리기 일쑤다. 그렇다면  집에서 아프신 부모 돌봄을 하는 사람의 고통은 얼마나 될까. 점심을 먹고 약을 먹고 산책을 하니 허리 통증이 좀 덜 해진듯한 기분이다. 지금의 허리 아픈 나의 고통은 내 부모님의 신체적 노쇠함에 따른 질병과 고통의 천분의 일도 안될 것이며 하루 종일 부모를 돌보는 이가 받는 고통의 만분의 일도 안될 것이다. 진통제나 소염제로 치유할 수 있는 나의 통증은 진통제로 치유할 수 없는 생의 막바지를 재촉하는 질병과 싸우며 삶을 이어가는 부모님의 아픔과 선과 악의 경계를 넘나들며 어쩌지 못해 자식의 도리라는 커다란 멍에를 지고 감당해야하는 자녀들의 고통에 미치지 못함을 여실히 깨닫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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