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궁이

휴먼 에세이 20

by 한결

요즘은 시골이라도 아궁이가 있는 집이 거의 없다. 모두 도시 가스가 들어가 있어 전부 현대식 보일러를 사용하고 있고, 벽돌에 시멘트를 발라 아궁이 흉내 낸 것이 있을 뿐 천연 돌을 쌓고 황토를 덮은 전통 아궁이는 아마 깊은 시골, 산 속이나 오지에 가야 볼 수 있을 것이다. 어린 시절, 고향마을의 집들이 모두 아궁이에 장작을 땠음에도 우리집은 연탄을 땠었다. 연탄을 주기적으로 갈아 줘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지만 편리함으로 치면 장작보다는 연탄이 나았다. 그러나 편리함은 있었을지라도 짚이나 나무를 때는 아궁이보다는 운치가 떨어지는 점이 단점이 었다.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던 1970년 대는 내가 살던 마을의 대부분의 집 들이 초가집이었고 산에서 나무를 해서 불을 때는 집이 많아 전통 아궁이를 수시로 접할 수 있었고 친척 집인 옆집에 놀러 가거나 친구 집에 놀러가 불 때는 것을 구경하거나 함께 불을 때곤 했다. 아궁이에 불을 때려면 덤불을 먼저 넣고 불을 지핀 후 그 위에 잔가지를 넣어 활성화 시킨 다음 두꺼운 장작을 땐다. 활활 타오르는 불은 이내 탁탁 튀기며 뻘겋게 불을 먹은 장작으로 변하고 동시에 가마솥에 물을 끓인다. 아궁이는 한 개가 아니다. 부엌에는 사람의 음식을 위해서, 마당에는 소여물을 쑤기 위해 아궁이가 따로 있었다. 농촌에서 소는 논밭을 갈 때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자산이었고 소여물을 쑤는 것은 사람의 끼니를 준비하는 것 만큼이나 중요한 일이었다. 부지깽이로 괜히 쑤석거리면서 넣지 않아도 될 장작을 계속 넣으며 불장난을 하고 있노라면 어느 덧 부뚜막 가마솥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 나오며 밥이 구수하게 익어갔고, 국이 보글보글 끓기 시작했다.


내게 중요한 것은 아궁이에 간식거리가 들어 간다는데 의미가 있었다. 장작이 다 타고 난 뒤 뻘건 불씨와 재 안에 고구마와 감자를 던져 놓고 불 멍을 하며 기다리고 있노라면 빨갛게 타 들어가는 불과 불씨, 굴뚝이 다 흡수하지 못한 매캐한 연기와 함께 기다림이 마냥 행복한 저녁, 장작불에서는 원적외선이 나온다고 했던가, 나무 타는 냄새와 아궁이에서 나오는 불빛이 왜 이리 좋은지 새카맣게 탄 감자를 반으로 썩 자르면 뜨거워 손도 댈 수 없는 하얀 속살이 나오고 저녁도 거른 채 고구마 감자를 먹느라고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타닥타닥 펜션의 벽난로에서 장작이 타들어간다. 장작불이 거의 꺼져 갈 즈음 마른 장작으로 다시 생명을 부여하는 곳 은 벽난로 안 이다. 아마 나의 삶도 그러했으리라. 나무에 처음 불이 붙을 때, 활활 타오를 때, 빨갛게 익어 숯이 되기 전의 재를 날리는 모습 들, 태어나서 자라며 혼신을 다해 삶을 살았듯 누군가를 위해 따뜻함을 제공하는 장작불의 꺼져 가는 모습은 인간 삶의 과정을 보는 듯하다. 역시 이런 날은 창밖으로 눈이 펑펑 내려야 분위기가 제격인데 집으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면 눈은 갑자기 불청객이 된다. 눈이 오고 오지 않고는 하늘의 마음인 것을 자격도 없는 내가 이리 생각하는 것도 욕심이겠다.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고 타오르는 불만 바라보아도 편안한 시간, 멈춰있으면서 흐르는 고요한 강물 같은 안정감이 주는 이 시간을 어디에 비교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의 삶은 바쁨 자체가 목표이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나를 위해 일이 존재하고 나의 행복을 중심으로 일이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서 오로지 바빠야 한다는 고정화 된 산업 사회의 의식이 지배했기 때문이라고 본다면 여전히 과거의 틀에 벗어나지 못한 개인은 조직의 부속품으로 소진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시간은 곧 돈이라는 관념에 지배 되어 여가와 게으름이 분리되지 않은 의식 속에서 바쁜 것이 미덕이며 일의 양이 능력을 결정했던 과거는 나무를 태우고 그윽한 숲의 냄새를 맡으며 은은하게 타올라 온 방을 환하게 데워주는 따뜻함이 아닌 증기 기관차를 쉼 없이 달리게 하기 위해 끊임없이 석탄을 쏟아 붓는 것과 같았을 것이다.


따뜻한 벽난로 앞의 시간은 바쁨과 조급함과의 거리 두기이다. ‘코로나 19 팬더믹’에 갇혀 거리두기를 하지 않으면 감염될 확률이 높듯이 자신이 마음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알면서도 모른 체 한다면 결국 마음의 병에 감염되고 말 것이다. 내 삶의 가치를 높이자는 내 안의 목소리를 못들은 척 했던 지난날을 미련과 후회로 버리지 못했다면, 지금 용기를 내어야 한다. 꼭 불 멍이 아니어도 좋다. 각자가 좋아하는 것이 있을 것이다. 숲 멍, 하늘 멍, 꽃 멍, 바다 멍 등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음에도 일부러 피하는 것인지, 두려운 것인지, 하늘을 떠다니는 구름도 지나가고 나면 같은 모습으로 찾아오지는 않는데 외롭고 지칠 대로 지친 우리의 가슴에 멍을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어떤 멍이라도 좋다. 우린 멍이 필요한 세상에 살고 있다. 내가 행복해야 가족이 행복하고 회사도 행복하다. 삶이란 뒤돌아보면 휙 지나가 버린 바람과도 같다. 고개를 돌리면 저만치 앞서 가 있는 찰나들의 집합체,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내게 그동안 내게 행복한 멍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를 말이다.


불에 대한 추억은 아궁이 말고도 많다. 겨울이라고 집안에만 있지 않은 개구쟁이 녀석들은 눈이 오면 새총을 만들어 들판으로 참새를 잡으러 다니거나 앞산으로 토끼를 잡으러 올라가거나 꽁꽁 얼은 냇가에서 썰매를 타기도 했는데 너무 추우니 불이 없으면 버티지를 못했기에 논 가운데나 둑에 불을 피워 놓고 쬐면서 쉬곤 했다. 당연이 옷에서는 불티가 묻었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신발이나 옷을 살짝 태워먹기도 하고 산에서 달라붙은 덤불 조각에 돌멩이 위에 흙 위에 아무렇게나 앉아 있던 탓에 더러워진 옷은 세탁기가 없던 시절 빨래를 널어도 황태 덕장의 황태마냥 몇 번을 얼었다 녹았다 를 반복하며 잘 마르지 않아 어머니의 고충을 더해주는 커다란 짐이었기에 겨울철 실컷 놀고 집에 들어가면 으레 쏟아지는 어머니의 기관총 같은 잔소리를 늘 들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부엌 뒤 쪽의 담장 밑 막힌 공간에 고무로 된 빨간 통에 뜨거운 물을 받아 목욕준비를 해 놓으셨고 나는 뜨거운 물에 들어가 하루의 피로를 푸는 호사를 누렸다.


그날의 고무 통 대신 욕조에 몸을 담근다. 보일러가 돌아가며 연수기의 불이 반짝거리며 맑고 정화된 김이 모락모락 나고 따뜻한 맑은 물이 욕조를 채운다. 그런데 아무 냄새도 나지 않는다. 깜깜해지는 어린 시절 고향 집에서 듣던 우리 집 검둥이 짓는 소리도, 양동이로 물을 실어 나르는 어머니의 잰 걸음 소리도, 어디서 또 신발을 태워 먹고 왔냐는 잔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눈을 지그시 감고 이마에 땀이 송송 맺힐 무렵 콧물을 질질 흘리며 들판에서 불을 쬐던 동무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간다. 세월은 유수와도 같고 나의 부지깽이와 산토끼와 들판의 모닥불과 코흘리개 동무들의 모습은 욕실 천정에 베인 습기처럼 아련한 기억 저편의 그림이 되어 흐르고 있다.


사진 네이버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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