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기준은 무엇인가
황정은의 '상행(上行)'
황정은 단편 '상행(上行)'에서 보는 행복의 기준은 무엇인가
민병식
황정은(1976 ~ )작가는 서울 출생으로 인천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중퇴했다. 2005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서 단편소설 '마더'로 등단하였고, 소설집 ‘일곱시 삼십이분 코끼리열차’, ‘파씨의 입문’, ‘아무도 아닌’, 장편소설 ‘百의 그림자’, ‘야만적인 앨리스씨’, ‘계속해보겠습니다’, 연작소설 ‘디디의 우산’, ‘연년세세’ 등이 있다. 수상경력으로 만해문학상, 신동엽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이효석문학상, 대산문학상, 김유정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젊은 작가상 만해문학상, 김만중 문학상 등이 있다.
이 작품은 2012년 봄부터 2015년 가을까지 발표한 여덟 편의 단편소설을 묶은 작가의 소설집 ‘아무도 아닌’의 표제작이다. 소설에서 '나'는 남자친구인 오제, 오제의 어머니와 함께 고추를 따기 위해 시골로 내려간다. 함께 고추도 따고 감도 따고 시골에 계신 할머니와 식사도 한다. 이게 다다. 그런데 밋밋하면서도 평탄한 이 소설이 주는 재미와 의미는 무엇일까. 함께 들어가 보자.
화자인 ‘나’는 남자친구 오제, 그리고 그의 어머니와 고추밭에 고추를 따러 갔다. 고추밭 주인은 오제의 어머니의 새 고모와 새 고모의 어머니다. 새 고모란 분은 오제의 어머니가 전쟁 때 오제 고모 내외를 따라 남하했는데 고모가 돌아가시고, 고모부과 결혼을 한 고모다. 후에 고모부도 돌아가시자, 새 고모는 친정으로 돌아가서 그녀의 어머니와 남동생과 살았다. 새 고모의 남동생이 갑자기 죽자 남동생의 아내와 아이들이 집과 밭을 팔려고 내놓았다. 새고모와 구십이 넘은 노모는 힘에 부쳐 수확도 못하고, 집이 팔리면 갈 곳도 없어서 새 고모의 남동생이 짓다가 만 공장에서 자야하는 형편이다. 오제는 서울을 떠나서 농사를 짓고 싶어서 따라와 봤지만 가격이 1억 6천이다.
‘시골에서 살면 좀 나을까 싶어서 알아보러 내려온 거거든. 나, 도시에서 사는 건 이제 싫다. 육 개월 단위로 계약서 써가며 일해 봤냐. 사람을 말린다. 옴짝달싹 못하겠어. 마땅하지 않은 일이 생겨도 직장에서 한마디 할 수 있기를 하나. 눈치만 보게 되고 보람도 없다. 계약서 갱신할 날이 다가오면 가슴만 이렇게 뛴다. 다 때려치우고 이런 곳에서 한적하게 살아볼까 싶었는데 만만치 않네. 시골에서도 뭐가 있어야 한다잖냐. 내가 참, 뭐가 없는 놈이구나, 이런 생각만 들고, 괜히 왔다.’
-본문 중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등지고 도시로 올라온다. 이유는 간단하다 시골에는 변변한 직장도 없고 누구나 원하는 꿈을 이루기엔 마땅치 않다. 하고 싶은 것을 찾아서, 돈을 벌기위해 기회의 땅이라고 생각되는 도시로 올라오는 것이다. 남자친구 오제도 마찬가지다. 서울에서 고용이 불안정한 생활을 하는 것보다 시골에 와서 농사를 짓고 싶은데 땅을 살밑천이 없다는 문제가 생긴다.
오제는 6개월마다 계약을 새로 하며 끝까지 버텨서 남들처럼 서울에서 집도 사고 도시에서의 삶을 지속할 수 있을까. 아니면 원대로 시골로 내려가서 밭을 일구며 살 수 있을까. 지금의 그에게는 삶을 선택할 자유가 없다. 미래가 지금보다 나을 거라는 생각도 할 수 없다. 꿈에서라도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꿈조차 그는 꿀 수 없다. 오제는 서울을 벗어나 좀 더 나아질 상행의 삶을 꿈꾸며 시골로 하행하지만 가난한 사람은 시골에서도 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시 도시로 상행한다. 그 길이 상행일까. 또 다시 비루한 삶을 위해 서울로 돌아가는 할 시간 오제의 차는 톨게이트 불빛만을 보며 달리고 오제의 상행 길도 상행이 아닌 하행길일 수도 있을 것이다.
생존 경쟁의 세상에서 상행하지 못하면 도태되는 무서운 세상, 도태되는 사람들을 보며 더럭 겁을 내고 그들처럼 되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 하지만 세상은 힘들고 어렵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자본주의의 행복함이 겉이라면 속에 들어있는 극심하고도 피로한 경쟁은 사람들을 앞만 보고 달리는 상행 길로 몰아붙이는 것은 아닐까. 입신양명이나 재산의 추적, 명예의 획득을 목표로 하던지 소박하고 평안하다고 스스로 정의 하는 나름의 삶이 행복인지는 결론내리기 어렵다. 행복한 삶의 기준을 어디에 둘 것인지는 각자의 뜻이 있을 것이다. 그 기준을 향해 상행하는 삶, 아마도 그것이 가장 행복한 기준이 아닐까.
사진 네이버(위 배경사진 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