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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원 Jun 06. 2020

행복의 기원 / 독후감93

생존과 번식, 행복은 진화의 산물이다

 왜 사는가? 왜 사니? 왜 살고 있냐? 왜 살고 계십니까?

자신으로부터 친구로부터 부모님으로부터 혹은 대화 중에 식사 중에 언제든 어디서든 부담되는 질문이다. 답변을 평소에 준비해 놓았다 하더라도 부담되는 질문이다.

 “내가 중요하다 생각하는 것에 대한 가치를 실현하며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살고 있습니다.” “XX를 통해 가치를 실현하며 공익을 추구하여 모두가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대답하는 ‘도덕적 버전’의 행복론은 우리에게 친근하다.




 행복은 사실 이렇게 거창하지 않다.

생존, 욕정, 번식과 같은 본능들과 뒤범벅된 매우 원초적인 모습이 행복이다. 

다윈의 진화론에서 생존 여부를 결정하는 것처럼 인간과 동물의 모든 특성은 생존과 번식이라는 뚜렷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다.

단단한 껍질로 싸인 씨앗으로 인해 진화된 새의 부리 모양이나 기린의 긴 목 등과 같이 생존을 위한 진화뿐만 아니라 번식을 위해 여전히 남아있는 공작새의 큰 꼬리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신체적 특징만이 생존과 번식을 위해 진화했을까?

 인간의 마음도 진화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피카소도 삶에 새로운 여인이 등장하는 시점에서 예술적 창의력이 폭발하곤 했다. 

보다 진화론적인 해석은 피카소는 창의력을 발휘하기 위해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산 것이 아니라 피카소라는 한 생명체가 그의 본질적인 목적(유전자를 남기는 일)을 위해 창의력이라는 도구를 사용했다고 보는 것이다. 행복은 인생의 목적이 아닌 생존을 위한 도구일 뿐이다.


 우리 조상 때부터 생존과 번식을 위해 그렇게 열심히 살았는데 왜 우리는 행복을 위해 산다고 착각하는 것일까? 목숨을 걸고 사냥을 하고 기회가 생길 때마다 짝짓기에 힘쓰는 와중에 고기를 씹을 때, 이성과 살이 닿을 때, 한마디로 느낌이 완전 ‘굿’이었다. 행복을 느낀다.

 삶의 목표는 생존이었는데 행복(쾌감)에 맛이 들려 삶의 목표인 생존은 잊어버리고 행복을 좇으며 살아가고 행복이 삶의 목적인 냥 살아간다.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상황에서 행복을 느껴야만 했던 것이다.



 행복이 생존에 필요하다면 우리는 언제 행복할까?

물론 나는 고기를 씹을 때, 이성과 살이 닿을 때 여전히 느낌이 좋지만 우리는 더 이상 동굴에 살지 않으며 예전보다 어느 정도 이성이라는 것도 생겼다.

 돈이 많으면 행복할 것 같다.

돈이 많아봐야 진정으로 느낄 수 있겠지만, 돈은 비타민과 비슷한 구석이 있다고 책은 말한다. 비타민 결핍은 몸에 여러 문제를 만들지만, 적정량 이상의 섭취는 더 이상의 유익이 없다.

나라들을 통한 예시도 있는데 북유럽 국가들의 행복 수치는 특히 높다. 

그들의 높은 소득과 사회복지 시스템에서 오는 결과라고 생각하지만 오해다. 

일본이 핀란드보다 국민소득은 높지만 행복 수치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낮다.

 객관적으로 얼마나 많이 가졌느냐보다 소소한 행복을 자주 느끼는 것이 행복하다.

지금의 가치로 약 100억 원의 상금을 받았던 복권 당첨자들은 1년 뒤 주변 이웃의 행복감과 비교했더니 놀랍게도 별 차이가 없다. 또한, 돈이란 것은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얻을 수 있다는 착각을 심어 주기 때문에 자극을 음미하는 능력을 감소시킨다. 우리를 무디게 만든다.

 이쁘거나 잘 생겼으면 행복할 것 같다.

이건 아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연예인들은 늘 행복해야 하지만, 그들도 울고 좌절하고 심지어 자살도 한다.


 생존 행위는 반복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오늘 고기를 먹었어도 내일 다시 사냥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오늘 고기를 씹으며 느낀 쾌감은 곧 사라져야 하는 것이다. 행복이 초기화되는 것이다.

행복은 ‘한 방’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복권 당첨이 되었다고 죽을 때까지 행복하지 않다. 모든 쾌락은 곧 소멸되기 때문에 한 번의 커다란 기쁨보다 소소한 기쁨을 여러 번 느끼는 것이 절대적이다.




 우리의 원시적인 뇌는 아직 이 신세계에 적응이 덜 되었다.

인간의 뇌가 급격히 커진 시기는 함께 생활하던 집단의 크기가 팽창할 때와 맞물려 있다.

인간을 가장 인간스럽게 만드는 뇌는 사람으로 인해 발달했다. 사람들과 관계를 잘 맺기 위해 뇌가 발달한 것이다.

 초고속 승진을 해도 지구 상에 나 혼자 남아 있다면 자랑할 사람도 축하해주는 사람도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고 무슨 행복이 있을까.

 행복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

돈 이외에도 여러 인생 자원들이 있지만 행복에는 모두 부수적인 것들이다.

우리는 이렇게 생존해왔다.

 행복은 거창한 관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경험이다. 기쁜 감정의 경험이고, 자주 경험하면 우리는 행복하다고 느낀다.

 생존하기 위해 먹었고, 번식하기 위해 사람들과 함께 했다.

그럼 우리는 언제 행복할까? 

그래서 나는 가족과 (좋아하는 사람들과) 모여 음식을 먹으며 술 한잔할 때가 행복한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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