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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원 Aug 15. 2020

사피엔스 / 독후감103

유발 하라리

 600페이지 적지 않은 분량의 책으로 10시간 정도 앉아 꾸준히 읽으면 책 한 권을 마칠 수 있겠지만 사피엔스로서는 불가능하다. 책 내용 자체만으로도 재미있기는 하지만 분량이 많아 읽는 중간중간에 맥락을 잃어버리곤 했다. 짬짬이 읽더라도 책을 관통하는 주요 골자만 잊지 않고 따라간다면 유발 하라리의 인사이트를 맘껏 즐길 수 있는 책이다.


 이야기는 단연코 사피엔스부터 출발한다.

인간은 단일 계보로 진화한 종이 아니다. 교과서에서 봤던 것처럼 등이 굽은 침팬지처럼 보이는 종에서 직립보행을 하는 인간으로 진화했다는 이야기는 사실이 아닌 것이다! (참고로 생물 분류하는 ‘종속과목강문계’라는 단계가 있는데 사피엔스는 종種에, 호모는 속屬에, 영장류는 과科에 속한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를 영장류과의 호모 사피엔스라고 부를 수 있다.) 지구에는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 호모 에렉투스 등의 다양한 인간 종이 동시에 살았다. 몇 만년 전의 지구에는 적어도 여섯 종의 인간이 살고 있었다. 그리고, 현재는 호모 사피엔스만이 살고 있다.

 사피엔스의 성공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어째서 호모 사피엔스가 세상을 정복하게 되었을까?

이를 설명할 실마리는 세 개의 혁명에서 시작한다. 약 7만 년 전 일어난 인지 혁명은 역사의 시작을 알렸다. 1만 년 전 발생한 농업혁명은 역사의 진전 속도를 빠르게 했다. 과학혁명이 시작한 것은 불과 5백 년 전이다. 세 개의 혁명 이야기가 이 책의 내용 꺼리다.




 장마철이라 비가 오는지 지구온난화로 인해 장대비가 쏟아지는지 명확히 판단하기 힘들다. 우리의 잘못인지 자연현상인지 섣불리 대답할 수 없는 요즈음 [사피엔스]는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어떻게 해서 이처럼 막대한 힘을 얻었는가?’에 대해 배우고 고민할 수 있게 해 준다. 중요한 질문이지만 내 생활에 너무 동떨어진 질문이라 느낄 수 있다.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질문을 바꿔본다. 지구온난화로 기후가 바뀌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직업시장에서 컴퓨터가 사람을 대체하고 대부분의 인간이 경제적으로 쓸모가 없어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바이오 기술의 혁신 덕분에 인간의 업그레이드가 가능해지고, 가난한 자와 부자간에 진정한 생물학적 격차가 생기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와 같은 생명의 미래에 관한 질문에 우리의 결정이 필요하다. [사피엔스]가 가져다준 ‘우리 자신을 생각하게 하는 질문’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고민한 후에 현명하게 결정해야 한다. 우리의 결정은 천국을 결정할 수도 있지만, 인류의 멸종이라는 비용을 치르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여섯 종의 인간 중 호모 사피엔스가 세상을 정복한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우리에게만 있는 고유한 언어 덕분이었다. 인지혁명이란 새로운 사고방식과 의사소통 방식을 말한다. (무엇이 이것을 촉발했는지는 책에 정확하게 나와있지는 않다.) 인간의 언어가 진화한 것은 소문을 이야기하고 수다를 떨기 위해서이다. 우리는 사회적 동물이고, 사회적 협력은 우리의 생존과 번식에 핵심적 역할을 하기 때문에 언어가 세상을 정복하게 했던 주요 원인이라는 사실에 동감한다. 언어의 역할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언어는 허구를 만들고, 신화를 만들어 집단을 만들고 동맹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자연 상태에서 전형적인 침팬지 무리의 개체수는 20~50마리 정도이고, 집단의 ‘자연적’ 규모는 150명이 최대이다. 150명이라는 임계치를 넘게 되면 군대의 소대나 중대와 같은 방식으로 운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교회는 공통의 종교적 신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 국가는 공통의 국가적 신화에 기반을 두고 있다. 사법체계는 공통의 법적 신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 경제를 지탱하는 푸조 자동차와 같은 회사도 우리의 집단적 상상력이 만들어낸 환상이다. 재앙이 닥쳐서 푸조의 임직원 전원이 사망하고 조립 라인과 중역 사무실이 모두 파괴될 수 있겠지만, 그럴 때도 푸조는 돈을 빌리고 새 직원을 고용하여 회사 자체는 그대로 있을 것이다. 집단적 상상 속에서 푸조는 건재하다.

 인간의 대규모 협력은 모두가 공통의 신화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그 신화는 사람들의 집단적 상상 속에서 존재한다. 언어는 이를 가능케 했다.


 호모 사피엔스는 가는 곳마다 야생식물을 채취하고 야생동물을 사냥하면서 사는 방식을 유지했다. 이 모든 상황은 1만 년 전 달라졌다. 이때부터 사피엔스는 거의 모든 시간과 노력을 몇몇 동물과 식물 종의 삶을 조작하는데 바치기 시작했다. 인간은 해 뜰 때부터 해 질 때까지 씨를 뿌리고 작물에 물을 대고 잡초를 뽑고 좋은 목초지로 양을 끌고 간다. 인간이 생활하는 방식의 혁명, 즉 농업혁명이었다.

 네안데르탈인은 수렵 채집 사냥을 했고, 사피엔스는 정착지에서 경작 재배를 했다고 잘못 알고 있다. 이 시기를 살았던 모든 종들의 어떤 이는 수렵 채집의 삶을 살았고, 어떤 이는 정착해서 농사를 지었다. 다만, 농사를 짓고 정착하는 이들의 사람 수가 많은 이유로 대립하게 되면서 점점 수렵채집인들은 도망가거나 농작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농업혁명은 밀에 의한 사기였다. 우리가 밀을 길들인 것이 아니라 밀이 우리를 길들였다. 농업은 사피엔스의 삶을 영구히 바꾸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업혁명은 오직 한 가지만으로 결산한다. 개체와 종족의 증가! 농업 덕분에 모여 사는 인구가 1백 명에서 1만 명이 되었다. 인구의 증가라는 장점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더욱 열악한 환경에서 살게 되었다. 모여 살면 질병도 들끓는다. 농업혁명은 덫이었다.


 농업혁명 이래 인간사회는 점점 더 규모가 크고 복잡해졌다. 모든 사회는 상상의 위계질서를 기반으로 한다. 세계와 인류 전체가 동일한 상상의 위계질서를 갖는다면 인류는 통합 가능하다. 인류를 통합하는 보편적 질서는 최초로 등장한 경제적인 것, 화폐 질서였다. 두 번째 보편적 질서는 정치적인 것, 즉 제국의 질서였다. 세 번째 보편적 질서는 종교적인 것, 즉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 같은 보편적 종교의 질서였다.

 세계 전체의 화폐 총량의 90퍼센트 이상은 컴퓨터 서버에만 존재한다. 다시 말해 돈은 물질적 실체가 아니라 심리적 구조물이다.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서로 다른 언어로 이야기했지만 금화와 은화는 신뢰했다.

 인도인들은 크리켓 경기를 매우 좋아하고 차를 열심히 마시는데, 둘 다 모두 영국의 유산이다. 기원전 200년경 이래로 인간은 대부분 제국에 속해 살았다. 로마인들은 로마 제국을 건설했고, 아랍인들은 칼리프가 다스리는 제국을 건설했다. 유럽인들은 유럽제국을 건설했다. 미래에도 대부분 하나의 제국 안에서 살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종교가 역사에서 맡은 핵심적 역할은 취약한 구조에 초월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농업혁명은 키우고 있는 양 떼의 다산多産을 기원했고 신은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공했다. 수천 년간 종교의 예배는 주로 인간이 신에게 양과 포도주, 케이크를 바치고 그 대가로 풍성한 수확과 가축의 다산을 약속받는 것이었다.


 저 위에서 이야기한 세 개의 혁명 중 마지막은 과학혁명이었다.

제국과 자본의 힘을 얻어 과학은 지난 5백 년간 역사의 가장 중요한 엔진이었다. 덕분에 인간은 막대한 힘을 얻게 되었다. 이 정도는 나도 안다. 하지만, 어째서 군사 산업 과학 복합체는 페르시아나 이집트, 오토만 제국이 아니라 유럽에서 꽃피었을까? 영국이 약진했을 때 어째서 프랑스, 독일, 미국은 재빨리 따라가고 중국은 뒤쳐졌을까? 증기기관 같은 기술적 발명들은 베끼거나 사들일 수도 있었다. 이들에게 부족한 것은 서구에서 여러 세기에 걸쳐 형성된 보편적 질서와 사회 정치적 구조였다. 이런 것들은 빠르게 복사하거나 내면화할 수 없다.

 현대 과학과 유럽 제국주의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과학자와 정복자는 둘 다 무지를 인정하는 데서 출발했다. 새 영토뿐 아니라 새 지식을 획득한다는 희망을 안고 먼 곳의 해변을 향해 떠났다.




 이야기는 사피엔스로부터 출발했지만 지금의 우리가 되기 위한 중간 과정의 인간부터 지금의 우리까지를 포함한 전방위적인 이야기이다. 우리는 누구인가 어떤 유구한 역사를 통해 지금에 와 있는가를 고민하다가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를 보여주지는 않을까 내심 기대했으나 마지막은 인류의 진정한 행복에 대해 논한다. 그럴 수도 있겠다. 행복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이 사피엔스가 어디로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 길일 수도 있겠다. 과거 세 개의 혁명들은 개발하고 발명하기에 정신없이 바빴지만 이것들이 인류의 행복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기술이 반드시 행복을 만들어주는 것은 아니다. 기술은 절반에 불과하다. 나머지 절반은 우리가 기술로 무엇을 할 것인지에 따라 행복과의 거리가 결정될 것이다.

 그래서 [사피엔스]는 사피엔스의 행복을 찾는 방법에 관한 책이다.


 오늘을 살아내기도 바쁜 사람들이 전 세계적으로 이 책을 글로벌 베스트셀러로 만들었다는 것은 감동적이다. 누구나 자신의 뿌리를 궁금해하면서 이를 통해 한걸음 앞으로 나아가려는 노력을 동감하는 것은 기쁜 일이다. 새로운 질문들을 가져다준다. 새로운 질문을 만든다는 것은 더 나은 더 넓은 시야를 만드는 것이다. 그만큼 유발 하라리의 인사이트는 탁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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