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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원 Aug 22. 2020

남아 있는 나날 / 독후감104

The Remains of the Day

 책을 펴자마자 다시 책 표지를 본다. 분명히 일본 작가의 소설이었는데.... 가즈오 이시구로.

조금 더 읽어본다. 일본인 작가가 쓴 영국 배경의 서양인이 주인공인 소설이라니. 물론 일본인이 서양을 배경으로 한 소설을 쓸 순 있지만 동양적인 느낌이 하나도 없다. 이 소설에서 나는 일본인 작가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까?

 프롤로그를 읽는다. 글의 결이 누군가와 닮아 있다. 자신의 사색을 잊지 않고 하나도 남김없이 그리고 서두르지 않고 풀어낸다. 갖고 있는 생각을 모두 펼쳐내어 조사해서 글로써 표현한다. 그의 글은 [프랭클린 자서전]에서 읽은 벤저민 프랭클린의 문체를 닮았다. 사고의 틀이 비슷한 듯 느껴진다. 일본인 작가가 서양인 같다.




 달링턴 홀의 집사執事로서 평생을 보낸 스티븐스가 새로 그곳을 인수한 새 주인의 호의로 출발하는 6일간의 자동차로 떠나는 런던 근교 여행길 이야기. 여행길 도중에는 예전에 달링턴 홀에서 총무로 같이 일했던 켄턴 양과의 만남도 포함되어 있다.

 집사의 직분으로 쉽게 가질 수 없는 여행의 기회인 만큼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다.

집사란 무엇인지, 위대한 집사란 무엇인지, 그냥 집사와 위대한 집사를 나누는 품위란 무엇인지, 자기가 어째서 그냥 집사가 아니라 위대한 집사인지, 위대한 집사가 되기 위해 자기가 어떤 것을 희생해야 했는지를 풀어낸다.


 과거 이야기인 집사 이야기의 반대편에는 현재 이야기인 여행길 이야기가 있다.

이 부분이 흥미롭다. 그렇게 최고의 집사라고 본인을 여겼지만 여행길 만난 사람들에게는 본의 아니게 달링턴 홀의 주인인 냥 행세를 한다. 자신을 숨기고 싶은 (숨길 수 있는) 상황이라면 집사의 타이틀을 내려놓고 달링턴 어르신 흉내를 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는 정도는 아니다. 사람이 그럴 수 있으니.

 ‘그때 내가 대체 무엇 때문에 그다음 말을 내뱉었는지는 지금 생각해도 영 모르겠다. 다만 내가 처한 상황이 왠지 그렇게 하도록 요구하는 것 같았노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주인공은 드디어 켄턴 양과 만난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일까 스티븐스 씨는 선창가의 벤치에 앉아있다.

같은 벤치에 앉은 60대 후반의 노인에게는 이상하리만큼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내고 울먹이기까지 한다. 한 사람의 인생을 대화 몇 마디로 단정 짓기는 쉽지 않지만 때론 의도치 않은 상황에서 조우하게 되는 일면식 없는 누군가가 자신의 삶을 가장 객관적으로 이야기해줄 수 있는지도 모른다.

“즐기며 살아야 합니다. 저녁은 하루 중에 가장 좋은 때요. 당신은 하루의 일을 끝냈어요. 이제는 다리를 쭉 뻗고 즐길 수 있어요. 내 생각은 그래요. 아니, 누구를 잡고 물어봐도 그렇게 말할 거요. 하루 중 가장 좋은 때는 저녁이라고.”




 스티븐스 씨에게는 이번 여행이 어떻게 다가왔을까?

과연 그는 인생의 가장 좋은 저녁때를 즐길지 아니면 집사의 직분으로 다시 충직하게 돌아갈지. 벤치에 같이 앉아 이야기했던 노인의 충고가 일리가 있다고는 했지만 여행 후 남아 있는 나날을 어떻게 보낼지는 온전히 그의 몫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도 스티븐스 씨와 똑같이 남아 있는 나날에 대한 결정의 몫이 있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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