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성원 Oct 10. 2020

곱슬머리 / 독후감111

 우리 인생은 몇 페이지 정도로 써야 적당할까? 답도 없는 이 질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묘비에 쓰인 한 문장의 글귀도 있을 것이고, 두꺼운 자서전도 있을 터인데.

 책 앞날개에 이력 대신 적은 작가의 말이 계속 머릿속에 맴돈다. “이 책은 온전히 내 것들로 채워 넣었다.” 자신을 온전히 채워 놓은 (허구가 인정되는)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아무리 비슷한 학창 시절 이야기, 동감 가는 부모님 이야기, 모두가 겪는 회사 이야기, 누구나 한 번쯤 해보았을 연애 이야기 더라도 여타의 소설들과 느낌이 다르다. 작가 자신이 숨은 그림 찾기의 숨은 그림처럼 소설 어디인가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읽으면서 자꾸만 작가를 찾고 있었다.


 책 제목은 생각이 나질 않지만 무라카미 하루키였을 것이다.

자신에 대해 써야 할 상황이 생긴다면 ‘굴튀김에 대해 써보는 것은 어떨까요’라고 했던 글이 있다. 황당했다. 갑자기 굴튀김이라니. 글을 쓰는 과정에서 굴튀김의 상관관계나 거리감이 자동적으로 표현되게 마련이고 그것은 이른바 ‘나의 굴튀김 이론’이 되어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작가는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소설에 온전히 자신을 채웠다.



 책은 여섯 편의 고민苦悶들로 채워져 있다.

지금의 우리들은 ‘고민 덩어리’ 일 것이다. 엄청나게 많은 고민들을 거치면서 지금도 이것저것 고민하면서 우리는 우리를 만든다. 지나간 고민은 해결되면서 휘발하듯 잊힌다. 빈자리는 끝도 없는 대기표를 들고 서있는 다음 고민들로 채워진다.

 휘발된 고민들은 좀처럼 기억하기 쉽지 않은데…..

상대방에게 도대체 어디까지 이야기를 해주어야 나를 이해시킬 수 있을까?

“상대를 이해하려면 알아야 한다고 했잖아요? 내가. 그런데 어떻게, 그리고 어디까지 말해 줘야 할까요. 상대가 나를 이해하게 하려면? 당신 말대로 어떤 사람들은 나를 알고도 이해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나를 깔볼 수도 있잖아요. 어떻게 상대를 온전히 믿고 알려 줄 수 있겠어요? 나를.”

 어떻게 살아야 할까? 눈치를 봐야 하나? 내 생각대로 살아야 하나?

“다들 그렇게 말한 걸 보면 정말 눈치가 없긴 했나 봐요. 그래서 나는 모든 행동과 말에 정답이 있는 줄 알았어요. 마치 연극의 대본 같은 것이 이 세상에 있는데 나만 모르는구나, 왜 나만 안 가르쳐 주는 걸까 서운했어요. 그러니까 눈치를 볼 수밖에 없잖아요?”

 어떤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 하나? 나는 특별한 존재인가? 그냥 평범한가?

‘내가 특별했다면 여기서 역전을 노렸겠지. 하지만 나는 특별하지 않으니까 그럴 수 없다. 기적의 역전 같은 건 나 같은 사람은 꿈도 못 꿀 테니. 조금만 더 일찍 깨달았으면 입 다물고 회사나 다녔을 텐데. 돈이나 받아먹으면서 그렇게 살았을 텐데.


 어렴풋했던 모두의 고민들을 글로 읽을 수 있다는 것이 감사했다. 

무형의 무엇을 명확하게 읽을 수 있다는 것에서 작은 감정이나 생각들을 놓치지 않고 적으려 했던 작가의 고민들이 느껴진다. 어렴풋한 것들을 글로 읽을 수 있다. 그런 것들이 많은 글이다.

 살아가면서 심각하고 심오한 고민만을 담고 있지 않다.

누구나 했을 법한 스쳐가는 짧은 연애 이야기가 그랬고, 누구나 했을 법한 후회하는 이별 이야기가 그랬으며, 누구나 생각하기도 싫은 아침나절의 회사 지각 이야기가 그랬다.

너무나 우리와 밀착되어 있어서 너무나 우리 생활의 일부분 같아 존재감이 없어져 버린 것들의 어렴풋함을 읽고 있으면 ‘나만 동떨어져 살고 있는 것이 아니구나’ ‘우리 모두는 다들 비슷비슷하게 살고 있구나’ 하는 동질감을 넘어 안도감을 느끼며 쓰윽 웃게 된다.



20년쯤 연락되지 않다가 SNS를 통해 어쩌다 연락된 오래전 옛 친구의 그동안 살았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만 같았다. 책 앞날개에 작가는 이 책이 시작이란 말도 남겼다.

그의 이야기가 또다시 듣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삶의 정도 / 독후감11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