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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원 Oct 17. 2020

죽음의 에티켓 / 독후감112

나 자신과 사랑하는 이의 죽음에 대한 모든 것

 죽음은 죽음을 자각하는 순간, 그 자각이 삶을 지배하는 순간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는다.

죽음. 이 운명은 모두 남의 것이지 나의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부모님의 죽음은 머릿속으로 스쳐갈 만큼 ‘어떨까? 어떻게 하지?’하며 생각해 본 적은 있다. 나의 죽음은 ‘이다음엔 죽겠지’하며 인정은 하지만, 머릿속을 스쳐갈 만큼 생각해 본 적도 없다.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분위기는 가라앉으며, 모두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죽음의 기운에 휩싸이게 된다.

 굳이 그런 죽음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모두들 너무나 터부시 해서, 나도 죽음이라는 경험을 간접적으로 직접적으로 겪을 존재로서 죽음이 궁금하다. 그리고, 죽음은 오로지 나의 문제라는 것을 받아들이기 위해 죽음이 궁금하다.




 책을 읽으면서 독후감 쓰기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한다. 

온통 죽음만을 논하고 있으니 글을 읽고 난 감상보다는 죽음에 초보자인 우리 모두가 알았으면 하는 내용들을 함께 나누는 것이 좋겠다.

 독일인 작가는 가능한 죽음의 많은 단면을 내재하기 위해 평범한 할머니, 청년, 아이 그리고, 책을 읽고 있는 독자를 가공의 인물로 각자 죽음까지의 경로와 죽은 망자가 가는 길을 담았다.


 당신이 죽는다면 아님, 주변의 누가 죽는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죽음이 임박한 사람의 소원입니다. 그 일이 무엇이든 당신이 원하지 않는다면 솔직히 말을 해야 합니다. 침묵 속으로 도망가지 마세요! 사람들은 당신이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립니다.


 죽음을 준비하는 것에는 많은 것이 필요하진 않습니다.

병의 마지막 단계에서 의사가 해야 할 일 혹은 하지 않아야 할 일, 죽은 뒤에 어떤 일이 이뤄져야 하는지 등을 담고 있는 환자처분서, 장례식의 종류와 장소를 지정한 사후 방식 그리고, 서명한 유언장 세 가지만 있으면 됩니다.

 장례방식을 유언장의 한 부분에 적어 놓는 내용은 별로 소용이 없습니다. 당신이 죽고 유언장을 열어 읽게 되는 때는 대개 이미 장례절차가 끝난 다음이기 때문입니다.

 너무 자세하게 적을 필요는 없습니다. 장례식은 사실 당신을 위한 게 아니라 당신의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들을 위한 의식입니다.


 서른부터 심장의 힘이 점점 약해집니다.

 마흔부터는 근육이 탄력성을 잃습니다.

 쉰부터 뼈의 밀도가 낮아집니다.

 예순부터는 평균적으로 치아의 3 분의 1이 빠집니다.

 일흔부터는 두개골 속의 뇌가 줄어듭니다.


 제일 먼저 사라지는 감각은 후각인데, 죽는 순간보다 훨씬 이전부터 사라지기 시작해서 미각과 함께 없어집니다. 이제 맛있는 것이라곤 없습니다. 그중에서도 좀 오래 맛있다고 느끼는 것은 아이스크림이나 얼린 과일입니다. 요구르트가 좋다는 사람도 있죠.


 가끔 사람들이 임종 직전에 잠시 확 살아나는 듯 보이기도 합니다. 모두가 깜짝 놀라게 말입니다. 별안간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정신이 너무나도 또렷합니다.

 정확한 것은 아무도 모릅니다. 인간으로서는 완전히 알아낼 수 없는 신비한 영역이겠지요.


 당신의 얼굴은 충격적입니다. 죽음이 당연한 섭리가 아니라 생활 습관을 잘못 운용해 온 결과라고 믿는 현대 사회에서는 더더욱 충격적입니다. 젊거나 늙는 것이 자연스러운 육체의 흐름이 아니라 정신 태도에서 비롯된다고 보는 현대 사회의 시선 때문이죠.


 숨을 쉬면 공기가 그렁거리는 소리를 냅니다.

가족들은 그 소리를 들으면 당신이 괴로워한다고 생각합니다. 요양사들조차도 그건 견디기 어려워합니다. 이건 반사 작용 같은 겁니다. 듣고, 보는 것 같은. 그르렁거리는 호흡 소리를 들으면 많은 이가 즉각 어떤 행동을 요구합니다. 경험이 많은 요양사들은 이런 경우에 오히려 이마를 봅니다. 통증 때문에 찌푸렸는지를요.


 일단 눈 하나를 감기고 나서 다음 눈을 감기는 게 더 간단합니다. 계속 눈을 뜨고 있다면 헝겊이나 거즈를 물에 적신 뒤 눈꺼풀을 닫고 그 위에 헝겊을 지그시 눌러 놓습니다. 이제 입 차례입니다. 시신이 입을 벌리고 있다면 손 하나를 머리에 올리고 다른 손은 턱 아래로 가져가 구강을 부드럽게 위로 밀어 입을 닫아 줍니다.


 죽은 것이 확실하다는 첫 번째 징조는 시반입니다. 시신이 똑바로 누워 있기 때문에 몸통의 가장 아래쪽, 목 부위, 엉덩이인 시신의 가장 아래쪽에 피가 고이게 됩니다. 그래서 피부에 반점이 생깁니다. 두 번째 징조는 사후 경직입니다.


 당신의 의지를 미리 분명히 해 놓지 않는 경우라면, 법이 정한 시신에 대한 결정권은 배우자, 자식, 부모 순으로 갖게 됩니다.


 온기만 빠져나가는 게 아니니까요. 피부의 습기도 다 말라 버려서 그것 때문에 손톱이 길어 보이고, 수염이 난 것처럼 보이죠. 그래서 예전에는 사람들이 죽은 몸에도 계속해서 손톱이나 수염이 자란다고 생각했죠.


텅 빈 느낌이 당신의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들을 엄습합니다.


그렇게 슬픔 옆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웁니다. 그들은 탁자 옆 당신의 자리가 비어 있는 것에 익숙해졌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적 없는 사람들은 이 커다란 슬픔 덩어리가 얼마간 시간이 흐르면 줄어든다고 가정합니다. 시간이 지나며 점점 더 작아지고 부서져서 어느 날에는 완전히 사라진다고요. 이건 완전히 틀렸습니다.

 단지, 슬픔이 점점 더 작은 공간에 모여 있게 되는 것뿐입니다. 슬픔은 예전과 똑같은 크기로 남아 있으며 없어질 수 없는 상태로 작은 공간에 놓이는 겁니다. 슬픔은 여전히 남습니다.




 죽음은 유쾌하지 않지만, 불쾌한 것 만도 아니다. 모두에게 일어날 일이기 때문에.

죽음의 준비에 대해 서두를 필요는 없지만, 반드시 필요한 준비를 시작하는 것뿐이다.

자신의 방식으로 삶을 채웠던 것처럼 자신의 방식으로 마무리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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