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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원 Oct 31. 2020

이 그림은 왜 비쌀까 / 독후감114

인사동에 가끔 간다. 

중국인 관광객 붐으로 많은 갤러리들이 관광기념품 가게로 변해가고 있던 것이 마지막 기억이다. 이제는 갤러리든 관광기념품 가게든 두 집 걸러 임대 간판이 걸려있다. 중국인 관광객들로 인해 올라간 월 임대료를 견디지 못하거나 코로나로 인해 그림 판매도 예전 같지 않아 화랑을 접는 모양이다. 경기가 좋지 않아 그나마 없는 거래들도 이제는 세상이 변해 화랑이 아닌 옥션 auction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림에 대한 관심은 예전보단 늘었지만 지금의 그림시장은 어느 때보다 온기를 찾아볼 수 없다. 그나저나 그림을 다루는 화랑들은 부자 아닌가? 그림은 워낙 비싸니까. 그런데 그림은 왜 그렇게 비쌀까?




 사실 모든 그림은 비싸지 않다. 비싸다는 인식이 지배적일 뿐이다.

사실 모든 그림이 이익을 가져다 주진 않는다. 미술 시장에 제공된 전체 작품의 1%만이 연간 20% 이상의 이익률을 달성하고, 4%가 연간 10%의 이익률을, 나머지 5%가 연간 5% 이상의 이익률을 달성한다. 나머지 65%의 그림들은 금전적으로 손해를 본다.

 연간 20% 이상의 이익률을 가져다주는 그림은 네 가지 요소를 충족한다.

한 미술가가 미술 시장에서 자리를 잡도록 투자 (초기 비용)를 하고 그의 작품으로 돈을 벌기 시작한 화랑 운영자는 다른 무명의 미술가보다는 그에게 우선권을 줄 것이다. 초기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 화랑 운영자는 같은 미술가를 돌보는 다른 화랑 운영자들과 협력할 것이다(협력 효과). 그의 시각적 언어를 배운 비평가, 큐레이터와 수집가는 앞으로 성공할지의 여부가 불확실한 다른 미술가의 암호 기호를 배우는 대신에 계속 그 미술가에게 관심을 쏟을 것이다(학습 효과).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미술가의 성공은 계속 가치가 증가하고 더 높은 지위를 획득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과 연결되어 있는 또 다른 상승에 대한 수집가의 믿음을 강화시켜준다(기대에 대한 적응).


 오늘과 같은 세계화된 자본주의 시대에는 헤지펀드 매니저들이 가장 활발하게 미술 작품을 구매하고 판매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들은 대규모로 두세 명의 미술가들에게 투자하고, 그들의 지위를 높인다. 그림의 가격 상승에 기여하고, 이윤이 남는 판매 혹은 기증을 통해서 투자 상품을 처분한다. 기증을 함으로써 세금 부담이 줄어들고 잘하면 유명한 미술관의 평의회 의원직을 덤으로 얻을 수도 있다. 평의회 의원직은 자신들이 투자한 미술가의 작품이 전시될 수 있도록 미술관 전시회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고 이는 또 다른 비즈니스로 확장된다.

 가격 변동폭이 어느 정도 일정한 옛 거장의 작품이나 인상주의 작품들의 경우와는 달리 현대 미술품의 가격은 상당한 폭으로 오르내릴 수 있다. 그리고, 누가, 무엇을, 언제, 어디서, 얼마에 샀는가에 따라서 가격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왜냐하면 현대 미술품의 경우에는 제대로 된 취미도, 그 취미를 입증해줄 수 있는 안정적인 가격 구조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경매시장은 이미 현대 예술 작품에 지불된 낙찰가 총액이 인상주의와 고전이 된 근대 작품에 지불된 낙찰가 총액을 넘어선 지 오래다. 미술 시장의 규모가 증가한 이유는 모두 현대 미술 분야에서의 가격 상승 때문이다. 미술 시장의 스타들은 더 이상 수 세기 전의 거장들이 아니라 현대의 미술가들이다.


 좋은 미술품인가 혹은 나쁜 미술품인가? 잘못된 질문인 듯하다.

어떤 물건은 미술가, 비평가, 화랑 운영자, 미술관 관장, 큐레이터, 전문가와 수집가가 그것이 예술품이라고 합의하게 될 때 예술 작품으로 통용된다. 그들이 합의할 때에 그 작품에 품질이 부여된다.


 그림이 비싼 또 하나의 이유는 비쌀수록 잘 팔리기 때문이다.

백만장자가 점점 늘고 있다. 미술 작품은 소유자의 지위를 나타낸다. 소유자를 사회적 엘리트의 일원으로 드러내 준다. 이전엔 음식에서 후추가, 옷에서 비단이, 장신구에서 보석이 그랬던 것처럼 미술 작품은 소유자의 지위를 눈에 띄도록 만드는 사회적 정보를 제공한다.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으며 보여주는 물건은 더 이상 사치품이 아니다. 뉴욕 5번가에 있는 백만장자 신분에 맞는 아파트는 몇 백억 원에 이르며, 러시아 거부는 몇 억 달러를 주고 축구 클럽을 산다. 결과적으로 가격이 미술품을 그렇게 만드는 경우에는 미술 작품도 진정한 신분의 상징이 될 수 있다.




 책은 거시적인 관점에서 세계 미술 시장의 메이저인 미국, 영국, 프랑스, 홍콩 그리고, 독일의 이야기를 한다. 높은 위탁 판매 수수료를 챙기기 위한 경매 회사의 관심과 노력을 이야기하지만, 마이너인 한국 미술 시장의 현실은 조금 다르다. 시장은 얼어붙어 서울의 경매 회사들은 높은 위탁 판매 수수료가 아닌 거래를 성사시키기 위한 낮은 위탁 판매 수수료라도 불사不辭한다. 

 한국 고서화古書畵 시장은 고사枯死 직전이다.

가만히 앉아 소정小亭 변관식卞寬植(1899~1976) 선생님의 산수화를 바라본다. 한국 산의 모양새가 눈에 익어 푸근한 느낌이다. 산길 따라 산책도 가고, 강 주변 물가에도 가보고, 마을 초입에 서있는 사람들을 지나쳐 보기도 하며 그림 안에서 시간을 보낸다. 내가 좋아하는 이 그림은 현대 미술도 아니며, 외국 작품도 아니다. 

책 덕분에 현대의 미술 작품에도 조금씩 관심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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