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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원 Nov 07. 2020

산시로 / 독후감115

나쓰메 소세키

 요동치는 시끌벅적 한 세상에서 광화문 광장의 이순신 장군이 들고 서있는 칼자루 뿌리처럼 중심을 확고하게 잡게 해주는 그 무엇만이 우리를 지켜주지는 않는다. 일본 정원에 깔린 정갈하게 놓인 모래나 자갈을 볼 때 느껴지는 차분함이 우리를 위로해주고 지켜 주기도 한다.

 20대의 추억이 멀어진 지금에 대학생 시절을 배경으로 한 소설은 나의 대학생 시절과 얼마만큼 오버랩되었는가 보다 그 시절을 찬찬히 읽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도쿄 제국대학에 다니기 위해 상경한 시골청년 산시로는 차분하고 덤덤한 성격의 청년이다.

산시로의 성격이 책 전체에서 묻어 나와 [산시로]란 소설은 산시로답다. 이런 식이다.

산시로는 상대방의 질문에 자주 대답하지 않는다. 상대방의 대꾸에 더 재치 있는 말을 하지 못하는 성격이다. 그래서 입을 다물어버린다. 또다시 질문을 받는다. 대답할 방법이 여러 가지였으나 대꾸를 하지 않고 잠시 동안 걷는다. 상대방과 무언無言으로 동의하고 있는 채 상황은 진행되지만 어색하진 않다. 꽉 찬 느낌보단 여백과 여유가 있다고 해야 할까 그런 느낌이 산시로답다.

 활기차고 ‘얄개’라는 단어와 어울릴 법한 대학생 청춘소설에서 받는 느낌 치고는 다소 어색하지만 이는 산시로를 만들어낸 작가의 영향이 아닐까? 추측만 해본다.


 산시로는 자신의 상황과 처지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학생이다.

자신은 지금 활동의 중심에 서 있다. 하지만 단지 자신의 전후좌우에서 벌어지는 격렬한 움직임을 보고 있어야 하는 위치에 놓인 것일 뿐, 학생으로서의 생활은 예전과 달라진 것이 없다. 세상은 이렇게 동요하고 있다. 자신은 이 움직임을 보고 있다. 하지만 거기에 가담할 수는 없다. 자신의 세계와 현실 세계는 하나의 평면에 놓여 있으면서도 전혀 접촉하지 않는다. 그리고 현실 세계는 자신을 내버려 둔 채 격동하고 있다. 산시로는 몹시 불안했다.


 도쿄로 온 산시로에게 세 가지 세계가 생겼다.

하나는 멀리 있다. 소위 도피처 같은 곳이다. 산시로는 벗어던진 과거를 이 도피처 속에 가둬놓았다. 고향에 계신 보고 싶은 어머니가 여기 있다.

 두 번째 세계는 이끼가 낀 벽돌 대학 건물이 있다. 이 안에 들어온 사람은 현세를 모르니 불행하고, 생활고에서 벗어나 있으니 행복하다. 산시로는 이 안의 공기를 대충 익힐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나가려면 나갈 수도 있다. 그러나 모처럼 몸에 익힌 것을 포기하기는 아깝다.

 세 번째 세계는 찬란하게 봄날처럼 빛나고 있다. 모든 것 위에 군림하는 아름다운 여성이 있다. 산시로는 그중 한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그 사람을 두 번 봤다. 미네코! 첫사랑이다.

 산시로는 미네코를 좋아한다. 산시로의 사랑은 스멀스멀 마음에 들어와 자리를 차지한 것이 아니라 그냥 마음에 자리를 딱 잡고 들어와 앉았다. 단지 말을 않고 표현하지 않을 뿐.


 산시로는 세 가지 세계를 나란히 놓고 서로 비교해보았다. 그런 다음 이들을 뒤섞어 한 가지 결과를 얻었다. 말하자면 고향에서 어머니를 모셔오고, 아름다운 아내를 맞이하고, 자신은 학문에 몰두하는 게 최선이다. 이튿날 학교에 나가자 강의를 들을 때는 두 번째 세계에 속한 사람이었다가 미네코와 만나면 세 번째 세계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시골에 계신 어머니의 편지를 읽고 있으면 첫 번째 세계에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산시로와 같이 자신의 세계를 만들고 구분하며, 그 세계들 안에서 자신을 찾아가는 것이 진정으로 아름다운 청춘이 아닐까?




 청춘이란 시절엔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갈팡질팡하는 와중에 사랑을 경험하게 된다. 안정된 것 하나 없는 불안정함이 아름다운 시절이다. 그 시절을 안에서는 요동을 치고 복잡하지만 밖으로는 차분하게 보이는 산시로처럼 겪을 수도 있고, 마음속과 행동까지 좌충우돌 표현하는 산시로 친구 요지로처럼 겪을 수도 있다.

 여하튼 마음속과 생각이 몹시 불안하거나 요동치는 것이 정상인 시절이 청춘이고 대학생 시절이다.


 나쓰메 소세키의 글을 읽으려고 책을 펼쳤다가 20대의 청춘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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