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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원 Nov 14. 2020

기러기 / 독후감116

모리 오가이

 모리 오가이를 설명하는 방법은 백이면 백 ‘나쓰메 소세키와 더불어 일본 근대문학의 양대 산맥’이라 불리지만 작가 본인은 다음 설명을 더 좋아하지 않았을까? 

누군가 작가에 대해 말했다. 사물을 관통하는 뢴트겐적인 묘사력을 지니고 있다고.

뢴트겐 Röntgen!!?? ‘아! X-선 X-ray를 말하는 것이구나!!’ 표현이 참으로 절묘했다. 글로써 사람 마음을 관통할 수 있다니.




 [기러기]는 가난 때문에 고리대금업자의 첩이 된 여인이 집 앞을 매일 지나는 의대생으로 인해 사랑과 자아에 눈뜨게 된다는 내용이다. 

오다마의 가슴에 맺힌 것의 본질을 굳이 조리 있게 따져보면 아마도 이런 것이 아니였을까. 남에게 속고 버림받았다고 생각했을 때 오다마는 처음 분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번에 어쩔 수 없이 첩의 신세가 돼야 했을 때 다시 분함을 느꼈다. 지금은 그것이 단지 첩이어서가 아니라 남들이 미워하는 사채업자의 첩이라는 것을 알게 되니, 어제오늘 ‘시간’의 톱니에 물려 마모되고 ‘체념’의 물에 씻겨 색이 바랜 ‘분함’이 다시 선명하고 강렬한 색채로 오다마의 눈앞에 나타났다.


 사람의 마음은 여러 겹으로 되어있어 한 겹 한 겹 들추어 볼 수 있는 것일까?

아니면 여러 구획으로 나뉘어 각각의 공간에는 다른 감정과 다른 마음이 한 가지씩 들어가 있는 것인가? 혹은 그 방에 여러 가지 감정이 모여 섞인 마음이 차지하고 있는 것인가?

 소설 이야말로 이를 풀어낼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도구가 아닐까 싶다.

사람 가슴에 맺힌 마음을 읽을 수 있다는 자체가 신기하기도 하지만 시대를 뛰어넘고 국적을 뛰어넘어 뢴트겐에 투영된 마음에 동감하는 나 자신도 우리는 다르지 않다는 동질감을 느낀다.

 고통스럽고 분하다는 감정의 다음에 착잡함과 체념으로 넘어가는 오다마가 안쓰럽다. 체념이 습관처럼 익숙하다는 것이 안쓰럽다.


 오다마에게 사랑이 찾아왔다.

이제껏 눈으로만 인사를 나눈 오카다와 가깝게 말을 나누게 되자 자신도 놀랄 정도로 마음이 급격하게 변화된 것을 느꼈다.

가게에서 물건을 훔치는 여자도 특별히 이상해서가 아니다. 단지 갖고 싶은 물건과 살 수 있는 물건과의 경계가 희미해진 여자일 뿐이다. 오다마에게 오카다라는 존재는, 예전에는 단지 갖고 싶은 물건이었으나 지금은 순식간에 변하여 살 수 있는 물건이 된 것이다.

 이렇게 사랑이 찾아왔다고 표현해도 되는 것인가?

갖고 싶은 물건이었으나 살 수 있는 물건이 되었고, 이제는 사고 싶은 물건이 된 것이다.

상대방을 물건 취급한다는 비하보다 상대방을 사랑하게 되는 감정으로 가는 마음 과정을 표현한 것이 너무나 갖고 싶은 물건이 이제는 살 수 있는 물건이 된 것이다.

 오다마에게 사랑이 찾아왔다.


 첩을 둔 스에조는 이 마음에 희롱당하는 것을 유쾌한 자극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게다가 오다마는 뻔뻔해짐에 따라 행동도 조금씩 방종해졌다. 스에조는 이 방종으로 인해 정욕이 불붙어 오다마에게 더욱더 빨려 드는 느낌이었다. 이 일체의 변화를 스에조는 눈치 채지 못했다. 오다마에게 매혹되는 듯한 느낌은 바로 거기에서 생겨났던 것이다.

 사람의 ‘호감’이라는 감정을 잡아내어 설명하는 능력은 탁월하다.

남자가 자신의 첩에게 매혹을 느끼는 프로세스를 이리도 잘 설명할 수 있을까?

이런 능력은 어디서 공부를 해야 하는 건가 싶기도 하다.


 오카다의 친구인 나는 오다마를 바라본다.

내 가슴속에는 여러 감정이 싸우고 있었다. 이 감정에는 나를 오카다의 위치에 놓고 싶다는 마음이 저변에 깔려 있었다. 그러나 내 의식은 그것을 인식하는 것을 혐오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난 그런 비열한 놈이 아니야’라고 외치며 그것을 부정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러한 억제가 효과를 거두지 못하자 나 자신에게 분개했다. 

나를 오카다의 위치에 갖다 놓고 싶다는 것은, 그녀의 유혹에 몸을 던지겠다는 생각이 아니었다. 단지 오카다처럼 아름다운 여자에게 사랑받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렇다면, 사랑을 받으면 그다음에는 무엇을 할 것인가? 나는 이 점에 관해서는 의지의 자유를 유보하고 싶다. 나는 오카다처럼 도망치지는 않겠다. 나는 만나서 말을 나누겠다. 내 깨끗한 몸을 더럽히지 않겠으나 만나서 대화는 하겠다. 그리고 그녀를 여동생처럼 사랑하겠다. 그녀에게 힘이 되어주겠다. 그녀를 진흙탕 속에서 구원하겠다. 내 상상은 이렇게 종잡을 수 없는 데까지 흘러갔다.

 오다마(첩), 오카다(의대생) 그리고 스에조(고리대금업자). 이렇게 삼각관계만으로도 충분했다(고 생각했다).

여기에 뢴트겐을 쬐인 것처럼 날카롭고 현실적이게 오카다의 친구인 ‘나’의 상상을 끌어들인다. 남자들은 친구 넘의 예쁜 여자 친구를 보고 아름답다고만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 마음은 이리될 수도 저리 될 수도 있지 않은가. 사람 마음에 정답이란 것은 없으니.




 찾아보니 인체는 1주일 동안에 300∼600mR(밀리 뢴트겐)을 넘는 조사선을 받으면 안 된다고 한다. 1주일 동안 모리 오가이의 책을 읽으며 너무 많은 뢴트겐에 투과된 듯하다. 어디가 끝인지 나도 모르는 나의 속마음을 들키면 안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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