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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원 Nov 21. 2020

선물의 문화사 / 독후감117

조선을 이끈 19가지 선물

 [열하일기]를 펼쳐 놓고 읽지 못한 지 반년이 되어간다.

훌륭한 문학 작품이기도 하고 청나라를 오가며 본 문물만을 담은 것이 아니라, 풍부하고 활달한 필치로 철학과 사상, 과학과 음악, 실용과 논리를 담기까지 한 이 훌륭한 책을 왜 이리 읽기가 쉽지 않을까? 왜 이리 고전은 집중해서 계속 읽기가 어려울까?




 1780년 8월 17일의 [열하일기]를 살펴보면 박지원은 만리장성 출입로를 둘러본 뒤 인근의 한 절에 들르게 되었다. 그 마당에 오미자를 말리느라 펼쳐놓았기에 무심코 두어 알을 집어서 입에 넣고 씹어보았다. 순간 한 승려가 눈을 부릅뜨고 호통을 치면서 거칠게 무어라고 말을 하는 것이었다. 마침 마두(말몰이꾼) 춘택이 담뱃불을 붙이러 들어섰다가 이 광경을 목격한다. 즉시 승려에게 쫓아가서 박지원을 위해 싸움을 한다. 그러자 승려 역시 입에 흰 거품을 물면서 말대꾸를 했다. 춘택은 즉시 그 승려의 뺨을 후려갈기면서 조선말로 엄청나게 욕을 퍼붓는다. 그제야 그 승려는 손으로 뺨을 가리고 비틀거리면서 안쪽으로 들어간다.

 엉뚱하게 얻어터진 승려가 항의를 했지만, 춘택은 더욱 기세를 올리면서 청나라 황제를 운운하면서 폭언을 하자 기세가 죽는다. 내친김에 춘택이 벽돌 하나를 뽑아서 던지는 시늉을 하자 승려는 별안간 웃으면서 도망쳤다가 잠시 뒤 산사 열매 두 개를 가지고 와서 웃는 얼굴로 박지원에게 바치면서 혹시 청심환이 있으면 달라고 부탁을 하는 것이다.


 [열하일기]를 보면 박지원은 교역을 해서 돈을 벌고 싶은 마음보단 중국에 가서 훌륭한 선비를 만나 학문적 토론을 하고 진리를 구하며 좋은 벗을 사귀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했다. 그러니 좋은 벗을 만나기 위해 필요한 약간의 선물을 준비하기만 하면 되었다. 박지원은 필요할 때면 늘 선물을 주곤 하는데, 부채와 청심환 등이 대부분이었다. 아마도 오미자 몇 알을 집어먹는 박지원에게 시비를 걸었던 것은 분명 청심환을 얻을 요량이었을 것이다.

 ‘선물’의 관점에서 읽은 [열하일기]는 너무나 재미있고 술술 읽힌다. 잊지도 않을 듯하다.

이와 같이 역사를 하나의 관점으로 접하고 싶다. 흘러갔던 시간 속에서 어떤 이는 무명으로 죽고, 어떤 이는 이름을 남길 만큼 업적을 남겼지만 이는 단지 역사책에서 나열될 국사책에서 외워야 할 단편적인 지식이나 상식일 뿐이다.

 ‘선물’이라는 키워드로 보게 될 조선시대의 역사는 내가 관심이 있고, 내가 궁금하기에 더욱더 잊지 못할 재미있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선물은 그 물건이 한 사람의 삶 속에 들어가기까지의 과정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조선시대 선조들은 어떤 선물을 주고받았을까? 왜 그런 선물을 주고받았을까?

이해되는 선물들도 있지만 더 이상 유용하지 않은 선물들도 있다. 무엇보다도 조선시대의 좋은 선물의 조건은 중국 사신이 탐내야 하는 정도의 조선 명품이어야 하지 않았을까? 위에서 언급한 청심환이나 비단처럼 희고 질긴 조선의 종이 등이 이에 속한다. 그리고, 당연히 희소성도 필요한 조건이었다. 제주도에서만 재배되었던 귤은 공물 중 가장 귀하고 중요하게 취급받은 품목 중의 하나였다.

 총 19가지의 조선시대 선물들이 소개되어 있는데 지금까지도 여전히 선호하는 선물로는 화장품, 차 tea, 청심환, 귤, 술 등이 있다. 청심환 같은 경우는 공진단供辰丹으로 변형되어 자주 선물되곤 한다. 예전에 즐겨했던 선물들이 이제는 어떤 선물들로 변했는지 생각해보는 것도 재미있다. 짚신은 구두로, 달력은 플래너로, 벼루는 만년필 정도로 변했을 것이고, 단오부채는 에어컨으로 변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시조를 한 편 지어서 쓰고 그 안에 버드나무 가지 하나를 곱게 넣어서 보내거나 자신의 마음을 담기 위해 주고받는 매화꽃과 같은 선물들은 지금은 대체할 수 없는 선조들의 고아한 풍류를 느끼게 해 준다.




 선물은 때가 있다. 여름이 서성거리는 단오 무렵에는 더운 시절을 준비하기 위해 부채를 선물하고, 설날이 가까이 오면 책력(달력)을 선물한다. 때에 맞춰 선물하는 마음은 예쁘다. 선물을 주고받는 마음으로 사는 것이 사람답게 사는 것이 아닐까?

 선물은 시절도 중요하지만 상황과 마음도 중요하다.

 조선 중기 호남의 어떤 관리는 부채 한 자루를 선물로 받았다는 이유로 탄핵을 당했다.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국가의 재정이 피폐해지고 기강은 문란한 상황이라 강직한 성품의 관리가 사회적으로 절실하게 필요했다. 선물은 때가 있게 마련이다. 선물이 뇌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욕심이 개재되어 선물의 가치가 변질될 수 있다.

아름다운 선물은 아름다운 마음과 함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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