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성원 Dec 05. 2020

당신 인생의 이야기 / 독후감119

TED CHIANG

 새로운 장르의 글을 읽었다. 이런 식이다.

우리는 작곡을 한다. 트로트나 동요를 듣는 즉시 우리는 어떤 류의 음악인지 판단할 수 있다. 다시 음악이 들려온다. 어디에서고 들어보지 못한 직관적으로 분류할 수 없는 음악이 들려온다. 새로운 음악이 태어났다. 그냥 클래식이나 발라드가 아니라고 말할 수는 있겠으나 대중음악은 맞지만 도저히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음악이다. 신기하다.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 건가.




 바빌론의 탑. 만약 그 탑을 시나르의 평원에 눕히고 한 쪽 끄트머리에서 다른 끄트머리까지 걸어간다면 이틀은 족히 걸릴 것이다. 그러나 탑은 곧추서 있기 때문에 밑동에서 꼭대기까지 올라가려면 짐이 없더라도 한 달 반이나 걸린다. 그러나 빈손으로 탑에 오르는 사람은 거의 없으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벽돌을 실은 손수레를 끌고 올라가기 때문에 훨씬 더 느리게밖에는 움직이지 못한다. 한 개의 벽돌이 수레에 실린 다음 탑의 일부를 형성하기 위해 수레에서 꺼내어질 때까지는 넉 달은 걸리는 것이 보통이다. 그리고, 어떤 이는 하늘로 가는 길가에 살고 있고, 어떤 이는 지상을 한 번도 걸어본 적 없이 생을 마감한다.


소설을 쓴다고 하면 사람 사는 이야기나 내 마음속의 이야기를 풀어낸다고 생각했지만 테드 창의 소설은 우리가 사는 삶을 재조명하는 소재의 소설이 아니다. 비범한 상상력과 과학이 존재한다. 이와 같은 소설을 SF Science Fiction소설이라고 한다. SF라고 하면 스타워즈같이 우주를 배경으로 우주선이 종횡무진 활약해야 하는 줄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SF소설은 독서의 또 다른 즐거움을 느끼게 해 줄 것이다. 그야말로 득템 했다.


 이해. 나의 육체를 새롭게 자각한다. 마치 손을 절단한 환자의 손목에 갑자기 시계 직공의 손이 자라난 듯한 느낌이다. 내게는 초인적인 근육 협조 능력이 있어 보통 몇 천 번은 되풀이해야 습득할 수 있는 기술도 내 경우에는 두세 번만 연습하면 된다. 나는 곡을 연주하는 피아니스트의 손을 찍은 비디오를 찾아냈고, 얼마 후에는 키보드 없이도 그의 손가락 움직임을 똑같이 흉내 낼 수 있었다. 근육의 선택적인 수축과 이완은 나의 근력과 유연성을 향상시킨다. 근육의 반응 속도는 의식적이든 반사적이든 간에 35밀리세컨드이다. 곡예나 무술 습득에도 이제는 거의 연습이 필요없다.


 너무나 신기한 소재의 아이디어는 내가 당연시했던 것들과 정의들을 무력화한다. 나는 읽으면서 놀랄 뿐이고 신기해할 뿐이다. 누군가 계속 거짓이 참이다 우긴다면, 참을 거짓이라 우긴다면, 너무나 강력하게 주장한다면, 너무나 자신 있게 설명한다면 우리는 1=2라고 믿을 것이다. 믿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떤 수를 영 zero으로 나눈다는 자체도 그 결과를 고민한다는 자체도 내 삶과 무관하지만 글을 읽기 시작하는 순간 나는 영으로 나누는 것을 고민하고 그것을 인정한다면 1과 2는 같을 뿐만 아니라 그 어떤 두 개의 수도 같다고 증명하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가능과 불가능이 섞어진다. 참과 거짓이 모호해진다.


 네 인생의 이야기. 이런 문장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헵타포드들이 왜 <헵타포드 B>와 같은 의미표시 문자 시스템을 발달시켰는지 이해가 된다. 동시적同時的인 의식 양태를 가진 종족에게는 그쪽이 더 편리하기 때문이다. 그들 입장에서 볼 때 한 단어 뒤로 다음 단어가 순차적으로 뒤따라야 하는 음성언어는 병목 현상을 일으키는 것이다. 반면 문자를 쓸 경우에는 한 페이지 위에서 모든 기호를 동시에 볼 수 있다.


 뫼비우스의 띠가 상상된다. 돌고 돌고, 면 안팎의 구분도 없는. 문맥이 있는 문단들은 뒤섞여서 읽히지만 의미 또한 연결되지만 친숙하지 않은 글의 흐름들을 만난다. 이런 소설이 SF소설이 아닐까.


 일흔두 글자. 스트래튼은 하역荷役용 자동인형의 뒤통수를 점검해 보았다. 하역부의 이름은 오래 전에 이미 일반 공개되었기 때문에 이름을 넣는 슬롯에 자물쇠는 달려 있지 않았다. 철제 슬로에서 양피지 끄트머리에 달린 탭이 튀어나와 있었다. 그는 웃옷 호주머니에 손을 넣어 언제나 가지고 다니는 작은 노트와 연필을 꺼냈고, 아무것도 안 쓰인 페이지의 일부를 작게 떼어 냈다. 그는 어둠 속에서 완전히 암기하고 있는 일흔두 글자의 조합을 그 위에 썼고, 종이를 네모난 사각형이 되도록 잘 접었다.

 하역부를 향해 속삭인다. “저 문 앞에 바싹 다가가서 서 있어.” 주철제 인형은 앞으로 한 걸음 걸어 나온 다음 문을 향해 갔다.

  A=B라는 정의와 작가가 의도했던 상황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상상하기 힘든 힘 있는 상상력이 핵심인 이야기를 전개하기만 하면 독자는 읽게 되며, 독자는 이해한다.

 기독교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기적과 천사들의 출현이 일상화된 세계에서 왜 천사들이 강림하여 자주 기적을 볼 수 있게 되었는지 굳이 설명하지 않는다. 언령言靈 기술이 정통 과학으로서 기능하고 있는 세계에서는 어떻게 일흔두 글자 조합의 이름으로 자동인형을 움직일 수 있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지옥은 신의 부재. 천사가 처음 어디에 출현할지를 예상하는 방법은 없었기 때문에, 빛을 좇는 라이트시커light-seeker들은 천사가 도착한 후에 모여서 천사가 떠날 때까지 그 뒤를 따라가야 했다. 천상의 가느다란 광선 안에 들어갈 가능성을 최대한 높이기 위해 그들은 강림중인 천사에 가능한 접근했다. 그것이 어떤 여정이 될지는 강림한 천사가 누구인지에 달려 있었다.


 외모 지상주의에 관한 소고: 다큐멘터리. <비지수>란 눈에 스펙스를 끼고 사람들을 볼 경우 상대방이 마치 미용 성형수술을 했을 때의 상태처럼 보이도록 하는 소프트웨어입니다. 칼리그노시아를 사람을 성숙하게 만드는 일종의 보조 수단으로 보아 주십시오. 표면을 무시함으로써 더 깊은 내면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겁니다.




 처음 SF소설을 읽었고, 처음 테드 창 Ted Chiang을 만났으며, 처음 이와 같은 상상력들을 만났다.

매거진의 이전글 평균의 종말 / 독후감 118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