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성원 Jan 09. 2021

성과지표의 배신 / 독후감124

The Tyranny of Metrics

 재능과 경험을 토대로 판단 내리는 시대는 가고 측정의 시대가 왔다!!

숫자와 표준화된 성과 측정과 빅데이터는 미래의 대세로 여겨지는 반면, 경험과 재능을 살린 전문가의 판단은 시대착오적 유물 취급을 받는다. 온통 그래프와 지표로 만들어 측정하고 평가하려고만 한다. 무언가 찝찝한 마음은 있는데 시원하게 반박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측정 자체가 문제라고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문제는 과도한 측정과 부적절한 측정이다. 다시 말하면, 측정지표가 아닌, 측정 강박이 문제인 것이다.


 왜 문제인가?

측정과 보상에 관심이 집중되면 다른 본질적 목표들은 희생되기 마련이다.

측정하고 보상할 수 있는 것은 모두 꼼수의 대상이 된다. 여기서 꼼수란 혁신과 창의성은 억압될 뿐만 아니라 거의 불가피하게 장기적 목표보다 단기적 목표에 가치를 두게 된다. 실질적인 일의 진척도 대신 측정의 진척도가 성공의 모조품이 되는 것이다.


 꼼수는 어떻게 부리는가?

1) 원하는 결과가 복잡할 경우, 단 하나의 책임이나 목표에 측정을 집중한다.

2) 결과를 측정하지 않고, 결과를 위해 투입된 금액이나 자원을 대신 측정한다.

3) 표준화를 통해 정보의 질을 떨어뜨린다. 계량화는 되었으나 주의점이나 불확실성이 떨어져 나간 정보는 확실하게 보일지는 몰라도 반쪽도 안 되는 정보일 뿐이다.

4) 고객을 선별하는 꼼수를 부린다. 더 쉽게 측정지표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고객을 선별하고, 어려운 고객은 거부한다.


 무엇이든 이유가 있게 마련인데 측정지표가 그토록 인기를 끄는 역사와 이유를 읽을 수 있다.

권위에 대한 의심은 1960년대 이후 좌파의 본질이 되었다. 전문가의 판단에 의존하는 것은 기성 엘리트층의 편견에 굴복하는 것이어서 좌파에게는 ‘성과측정’이라는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표준을 이용해서 기관들을 책임 있고, 투명하게 운영하자는 의제를 제시할 이유들이 있었다.

 우파의 입장에서는 공공 기관들이 유권자보다 직원의 복리 후생에 더 신경을 쓴다는 의심을 품고 있었고, 공공 기관 또한 포퓰리즘의 공격 대상이 되자 그 역시 기관의 효율성을 보여주기 위해 측정지표를 방어 수단으로 이용하게 되었다.

 조직의 복잡성을 감당해야 하는 리더십은 과다한 정보를 처리할 시간과 능력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결정을 내려야 한다. 측정지표는 리더십의 이해를 넘어서는 문제에 대처할 수 있는 매력적인 수단이다. 마지막 인기 요인은 정보기술 IT의 전파다. 데이터 수집 기회가 늘어나고 그 수집 비용이 감소함에 따라 데이터가 곧 해답이라는 밈meme현상(유전자처럼 개체의 기억에 저장되거나 다른 개체의 기억으로 복제될 수 있는 비유전적 문화요소)까지 유행하게 되었다.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성과측정’이 된 것이다.




 책 제목을 보면서 내 케이스만 생각했다.

‘성과지표의 배신’은 비즈니스와 금융에만 있다고 생각했지만, 고등교육에서는 대학 순위를 매기고 있고, 논문은 더 좋은 저작물보다 더 많은 저작물을 발표하도록 부추긴다. 초중등교육에서는 학교의 운명이 결정될 주요 과목 위주의 수업을 하고 있고, 의료분야에서는 측정지표를 위해 위험성이 높은 중증 환자들을 받지 않으려고 한다. 치안분야에서는 잔챙이 잡범들을 체포해 범죄율을 낮춰 측정지표를 향상시키고 있고, 군대와 자선사업 및 대외원조에서도 측정 강박은 건실하다.

 추가적으로 답답한 현실은 모든 분야에서 이런 데이터 쓰나미를 수집하고 입력하고 처리하는데 드는 가시적인 비용 외에도, 데이터 쓰나미와 함께하는 시간에 대한 헤아릴 수 없는 기회비용이 존재한다는 것이며, 사실 이 일에 투입된 시간은 계산되지도 보상되지도 않는다.


 나의 관심사인 비즈니스와 금융 부분을 별개로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면,

비즈니스는 결국 수익을 내기 위해 존재하고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목적 역시 생계를 위한 돈을 버는 것이기 때문에 측정지표는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회사들은 성과에 따른 인센티브 제도가 이미 마련되어 있으나 실제로 성과지표의 작동 원리를 가장 잘 아는 경영자와 직원이 가장 쉽게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 지표를 조작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도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드물지만 영국의 우드퍼드 인베스트 매니지먼트는 상여금을 없애고 높은 고정 임금을 도입하기도 했다.


 성과 측정이 문제가 아니라 성과지표에 이해관계가 얽혀 있을 때 꼼수가 발생하는 것이다. 문제는 기업의 계층 사다리 상단과 말단에서 모두 발생한다. 상단에서는 수익률을 올리기 위해, 말단에서는 성과급을 올리기 위해 꼼수를 부린다.

 성과지표 확인을 위해 성과를 보여야 하는 기한이 다가오면 연구개발이나 직원들의 기술 향상을 위한 장기적인 투자를 포기하더라도 즉각적인 수익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유혹이 생긴다. 단기 성과주의를 조장하는 것이다. 심각해지면 수치를 조작하거나 가장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게 된다. 더욱더 슬픈 일은 측정과 수치만이 해답이라는 맹신으로 추측과 위험이 수반되는 혁신 또한 제한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필연적으로 나타난다.




 측정은 판단의 대안이 될 수 없다. 측정에는 판단이 요구된다.

모든 것을 측정으로 개선할 수 있다거나, 측정이 가능한 것은 무엇이든 개선할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이는 경험의 문제이자, 또한 계량화할 수 없는 기술의 문제다. 중요한 문제들은 대부분 판단과 해석에 의해 좌우되므로 표준화된 측정지표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측정지표냐 판단이냐가 아니라 판단 정보로서 측정지표가 가치 있는가의 여부다.

 중요한 것은 균형의 문제이고, 판단의 문제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형제 / 독후감12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