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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원 Jan 02. 2021

형제 / 독후감123

위화

 류진에서 유일하게 덩크슛을 했던 송범평의 아들 송강과 변소에서 여인의 엉덩이를 몰래 훔쳐보다가 똥통에 빠져 죽은 남편을 가졌던 이란의 아들 이광두는 배다른 형제 사이다.

홀아비 송범평과 과부 이란의 결혼생활은 일 년 남짓 그지없이 행복했으며, 둘 사이에서는 아이가 없어 송강과 이광두 둘은 세상에 둘도 없는 형제 사이다. 문화 대혁명의 시절 지주로 몰린 송범평은 비참하게 죽었고, 상해에 치료를 갔던 이란은 돌아와 남편 송범평의 장례를 치렀다. 류진에는 남편을 잃은 여인이 한 달간, 길게는 반년간 머리를 감지 않는 풍습이 있었지만 7년 동안 머리를 감지 않았다. 결국 이란은 송강, 이광두 형제만 남기고 송범평의 곁으로 갔다.

 죽은 자는 떠났고, 산 자만 남았다.

멘털 갑인 이광두는 류진의 복지공장 공장장이 되었고, 차분하고 내성적인 송강은 금속공장을 다니게 되어 둘도 없는 형제로서 지냈으나 둘 사이를 가르는 류진 최고의 미녀 임홍은 미치도록 이광두를 싫어했다. 어릴 적 이광두는 피는 못 속이는지 변소에서 임홍의 엉덩이를 훔쳐본 장본인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송강은 임홍과 결혼함으로써 형제 두 사람은 각자의 길을 가게 되었다.

 파란만장 십수 년 후 이광두는 현 전체 인민의 총생산을 책임질 만큼의 돈을 번 거부가 되어 류진 사람들이 사는 집은 이광두가 지은 것이고, 먹는 채소나 과일도 이광두가 유통시킨 것이었다. 이광두는 또 화장장과 묘지를 사들였으니 류진 사람들은 죽어서도 이광두에게 돈을 줘야 했다. 그즈음 류진의 금속공장이 파산해서 송강은 실업자 신세가 되어버렸다. 대신에 류진 나루에서 새로 하역 일을 시작했는데 석 달 만에 허리를 삐끗하고 말았다. 일 년 동안 임시직을 떠돈 후에 얻은 시멘트 공장 일자리는 포대에 시멘트를 담는 것으로 이 년 후 송강의 폐는 완전히 망가졌다.

 이광두는 전국 각지에서 유명해졌고, 전국에서 편지를 받았으며 기자들에게 싸여 끝도 없이 인터뷰를 한지 딱 석 달부터 기자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이광두는 바로 심심해졌다. 류진에서 전국 처녀 미인대회를 개최하기로 했다. 삼천 명의 처녀 미인들이 참여했으며 썰물처럼 밀려나갔던 기자들이 또다시 밀물처럼 되돌아왔다.

 돈을 벌러 집을 떠난 송강은 다시 집에 돌아와 가지고 온 돈을 낡은 신문으로 잘 싸서 베개 아래에 놔두고 다시 류진을 벗어나 철로가 지나는 곳에 이르러 기찻길 옆 돌 위에 마스크를 벗고 앉아 이광두와 임홍을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광두는 성대하게 송강의 장례연을 연 것으로 소설은 끝난다. 그리고, ‘남은 이야기’가 남겨져 있다.




소설을 읽으면서 난 분명히 웃었으며, 분명히 울었고,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적도 있었다. 재미있어서 껄껄대고 웃었으며, 눈물이 주르륵 흘러 연신 닦아낼 정도로 울었고, 본능적이지만 천하지 않은 문장들은 흥미를 더했다.




 위화 그는 [형제]에서 거대한 간극에 대해 썼다고 했다.

위화 그는 거대한 간극에 대한 이유를 모른다고 했다.

이유를 모른 채 글을 쓰는 것이 가능할까 했으나 유럽에서는 사백 년 동안 겪었을 천태만상의 경험을 단 사십 년 만에 경험한 이광두와 송강의 이야기를 읽으며 수긍했다.

 문화 대혁명 시대와 오늘날의 간극은 역사적 간극일 것이고, 이광두와 송강 사이의 간극은 현실적 간극일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역사적 간극과 현실적 간극이 존재한다.

음식물 쓰레기가 넘쳐나는 나라가 있는 반면에 굶어 죽는 아이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경제적으로 부유한 국가는 2020년 현재를 살고 있는 것이고, 기아로 허덕이는 국가는 마치 1950년 대의 한국전쟁 시절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거대한 간극에 대한 이유는 모르지만 거대한 간극 속에서 살고 있다.


 코로나는 그 간극을 더욱 넓혀 놓고 있다.

지금 위화 씨는 무엇을 하며 지낼까? 팬데믹이 지나가면 엄청난 작품들이 쏟아질 것만 같다. 모두가 현재의 심정을 토로할 것이다. 더구나 위화 같은 작가라면야 코로나로 인한 간극에 대해 펜을 번쩍 들지 않았을까? 심지어 그는 지금 겪고 있는 코로나로 인해 생긴 간극에 대해 이유를 모르더라도 우리 시대를 대변할 글을 써줄 것이다. 

위화니까. 그의 다음 글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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