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성원 Jun 12. 2021

1026 /독후감146

 ‘1979년 10월 26일, 대통령 박정희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중앙정보부장 김재규로부터 총격을 받고 유명을 달리했다.’ 이 문장 하나가 소설 속으로 스멀스멀 빠져들어가게 한다..


진실을 갈구하는 의심의 실마리는 다음 문장에서 시작된다.

‘합수부의 발표와 김재규의 진술서는 달라도 너무나 달랐다. 합수부는 김재규를 충성 경쟁에서 밀린 나머지 이성을 잃고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몰아붙였지만, 김재규는 자신의 범행이 철저히 계획된 것이라고 진술하고 있는 것이다.’

 더해서 작가는 머리말에 이렇게 남겼다.

이 소설은 사실과 허구의 경계선에 놓여 있다.

(중략) 때로는 허구의 소설이 발표된 사실보다 훨씬 진상에 가깝게 접근하는 길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얘기하고 싶다.




 ‘도대체 무엇이 진실인가?’도 중요하지만, 흥미 없는 소설은 재미없다.

우리가 살고 있는 별반 다를 것 없는 평범한 삶에서 라스베이거스 카지노판을 배경으로 연결 짓는 아이디어는 참으로 기발하다. 거기에다가 작가 자신의 직업인 소설가를 엮어 넣어 이야기를 진전시키는 노련함에서 ‘확실히 김진명은 김진명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소설의 중심인물인 김재규를 파헤치기 위해서는 주변을 파야 한다.

김재규 전에 중앙정보부장을 지낸 김형욱의 실종 미스터리는 주변을 파는 과정에서도 흥미를 놓치지 않는다.

 이제 이야기는 케렌스키 변호사에게 부탁받은 목갑으로 넘어간다. 70만 달러와 맞바꾼 목갑은 은행 금고에 넣어 두었다. 목갑에는 엄청난 비밀이 있으리라!


나는 목갑이 어디에 있는지 기억이 나질 않아 다시금 책의 앞 절로 돌아간다.

라스베이거스를 떠나 보스턴은행의 대여금고에 보관해 두었다. 그리고, 다시 읽던 부분으로 돌아간다. 책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읽는 앞뒤 줄거리는 작가 의도대로 잘 흘러가고 잘 짜여 있다. 읽으면서 그런 느낌을 받을 만큼 탄탄하다.

 틈을 보이지 않는 내용과 형식적인 부분이 소설의 기본이라고 한다면, 내가 주변인에게 이 소설을 추천할 수 있는 또 다른 이유는 작가가 전달하려고 하는 내용이다.

한국인의 저력! 5천 년을 한 핏줄로 살아온 역사의 저력! 5천 년을 이어온 민족의 저력!

마지막 장을 덮으면 마음속에서 조그만 불씨 하나가 생긴다.


 흥미! 재미! 이외에도 소설을 붙잡고 계속 읽게 만드는 추진력의 비법을 찾아냈다.

주인공 이경훈을 칭찬하는 것이다. 작가는 그에게 무한신뢰를 보낸다. 

이런 종류의 문장은 잊을 만하면 나오는데 묘하게 나까지도 기분 좋다. 

‘경훈은 사건의 핵심을 정확하게 짚어냈다.’ 

‘나는 이 변호사(이경훈)가 필립 최를 이용해 홀리건의 이름을 얻어내는 것을 보며 감탄했소.’ 이런 부분을 반복적으로 접하면 주인공이 잘하고 있구나! 주인공 파이팅!! 이런 마음도 생겨 책을 놓을 수가 없게 만든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암살을 당한 10·26이라는 엄청난 사건의 진상을 아는 한국인이 단 한 사람도 없다는 사실로 소설은 쓰였을 것이다.

 모든 정황으로 미루어 보아 미국이 김재규와 어떤 형태로든 관계를 맺고 있었던 것은 틀림없지만 의문은 여전히 남아있다.

 미국이 김재규를 시켜 박정희를 살해했다면 무엇보다 그 뒤가 연결되지 않았다. 미국이 배후에 있었다면 김재규는 실패할 리가 없었을 것이다. 설사 실패했다 하더라도 그토록 어설프게, 아니 우스꽝스럽게 실패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경훈은 이제 10·26에 대한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하지만 결론이 나왔다고 해서 현실적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래서 작가는 글을 썼을 것이다. 글을 쓰는 사람이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미술전시 홍보, 이렇게 한다 /독후감145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