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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원 Aug 07. 2021

성냥팔이 소녀 /독후감155

안데르센 동화

섣달 그믐날 밤에 도대체 무슨 일인가? 추운 건 왜 그렇게 추운지.

길모퉁이 벽에 기대어 밤새 얼어 죽은 어린 소녀의 죽음이 의문이다.

타살은 아닌 것으로 추정되지만 자살 인지도 의문이다. 왜냐하면 아이는 미소를 머금은 채로 죽어 있었기 때문이다.




아자! 아자! 일어나 보자!!

어제 아빠에게 두들겨 맞은 게 뻐근하지만 그래도 일어나 보자! 그렇지 않으면 또.....

역시나 집안에는 먹을 것이 없구나!

연말이지만 연말 분위기를 느껴 본지는 기억도 없다.

엄마와 할머니는 끝도 없이 그립다.

살아 계셨을 때만 해도 이렇게 희망이 없지는 않았는데.

살아 계셨다면 이렇게 희망이 없지는 않았을 텐데.

절망이 끝이 없다. 끝을 알 수 없는 것이 더더욱 절망스럽다.

성냥을 팔아 부자가 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하루를 버텨야 하니 성냥을 들고 밖으로 나가보자. 배고프다.

어디부터 가야 할까? 춥다.

나가야 할까? 집에 있을까? 아니다. 나가자!!! 아빠가 언제 깰지 모르니 일단 나가자.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너무나 배고프고 춥다. 내가 딱 거지 신세구나!

배가 고프니 목소리에 힘도 없어 "성냥 사세요~~"라고 외치기도 힘들다.

어찌 힘든 일은 매번 겹쳐서 올까?

넘어지면서 신발이 벗겨졌다. 눈도 오는데 너무 발이 시리다. 아까부터 헐렁거려 자꾸만 벗겨졌는데. 엄마 신발을 신고 나오는 게 아니었는데.

어차피 집에 있는 신발이라곤 엄마 신발뿐이었으니. 아니 아까 그놈은 그 닳아 빠진 신발이 뭐가 좋다고 그걸 가지고 도망갔을까? 어찌 힘든 일은 매번 겹쳐서 올까?

그나저나 넘어지면서 성냥이 모두 망가졌다. 팔 만한 성냥은 얼마 남지도 않았다.

어찌 힘든 일은 매번 겹쳐서 올까? 이제 춥고 힘들어 걸을 힘도 없다.


이제 헛것이 보이나?

맛있는 저녁 앞에 앉은 우리 가족이 보인다. 크리스마스트리의 불빛도 휘황찬란하다. 모든 것이 사랑스럽고 따스하다. 당연히 보일만도 하겠지. 헛것은 헛것일 뿐이다. 행복한 상상은 상상일 뿐이다. 상상을 한두 번 했던 것도 아니고 모두 다 부질없음을 아는데 오늘은 조금 더 아쉬운가 보다. 이런 낙이라도 없으면 어찌 살아갈 수 있을까? 희망이 없는 내일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내 인생은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내 잘못인 건가? 나만 이런 가? 왜 이리 고생스러울까? 내 또래들도 모두 힘들까?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벗어날 수 있기는 한 건가? 누구에게 물어봐야 하나? 나 혼자 해결해야 하나?

힘든 일이 매번 겹치는 것보다 희망이 없는 게 더 쓰라리다.


그래도 난 마음속에 사랑하는 엄마와 할머니가 있으니 감사한다.

마음속에 품을 사람도 없는 누군가보다는 내가 낫다.

내가 어떤 생각을 해도, 어떤 선택을 해도 지금 내 상황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어차피 이렇게 흘러온 것을. 하지만 조금은 다르고 싶다. 그게 나니까.

할머니가 너무나 보고 싶다. 엄마 품에도 안기고 싶다. 주정뱅이 아버지도 사연이 있겠지. 모두 이유가 있겠지. 어렵지만 감사하자! 그냥 그렇게 해보자! 담에 할머니랑 엄마랑 내 이야기를 모두 들어주시겠지. 지금 나에게 있는 성냥을 켜보자! 하쿠나 마타타! 카르페 디엠!




죽어 있던 성냥팔이 소녀의 미소는 깊은 감사의 미소였다. 어찌 그럴 수 있었을까?

숨의 마지막엔 팔고 있던 성냥을 켜서 몸을 녹이려고 한 듯하다. 부모는 고사하고 사회의 돌봄도 받지 못했는데. 증오가 아닌 미소를 머금고 죽었다니. 어찌 된 일일까?

눈 오는 날 신발 없이 걸어가는 아이에게 관심을 갖는 이타주의를 장착했다면 새해 아침에 씁쓸한 뉴스를 접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아마 그 아이의 미소를 머금었던 굳은 차가운 얼굴을 구경하고 있는 동네 사람 중의 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창 밖에 있던 그 아이를 집안으로 데려와 같이 식사를 하고, 적어도 내 딸내미의 신발이라도 신겨 돌려보냈으면 어땠을까? 그 아이는 그렇게 얼어 죽었으면 안 되었는데 그렇게 맨발로 두면 안 되었는데.

그 상황에 존재할 수 없었던 그 아이의 미소에 한없이 미안해진다.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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