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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원 Jul 31. 2021

노포老鋪의 장사법 /독후감154

 세상은 생존하려면 ‘변화하라’ 하는데 노포老鋪는 이름을 지키고 이름을 남긴다.


음식점을 소개하는 책이기보다 노포를 지키는 삶의 철학을 소개하는 진중한 책이라 말하고 싶다. 글 잘 쓰는 작가 박찬일 셰프는 에필로그에 다시는 ‘이 시리즈는 못할 것 같다. 내가 왜 이 짓(글 쓰고 섭외하고 인터뷰하는 일)을 그만두고 요리사로 전업했는지 다시금 상기가 되었다.’라고 적었다. 그저 술이나 마시면서 주인 눈치를 살피다가 그냥 온 적도 많았다고 한다. 자신의 노포가 책에 나온다고 모두가 반기며 환영하는 분위기는 당연히 아녔으리라. 

원래 내가 느끼는 노포는 음식점 장사로 자신의 삶을 묵묵히 만들어가는 집이다. 


 난 그냥 사람들이 살면서 티 내는 것이 싫은 사람이다. 내 성정性情이 그렇다.

어차피 모두 살아가는데 그렇게 힘든 티 어렵다는 티를 내는 것이 무슨 도움이 될까 싶기 때문이다. 그런 티를 내더라도 피할 수도 없는 것을. 그래서 그냥 싫다.

 그래서 나는 노포가 좋고, 이 책이 좋다.

책의 에필로그는 작가가 책을 마무리할 수 있게 해 준 노포들에 대한 고마움을 적었다.




 노포는 당연히 우리의 역사와 함께한다.

그래서 생활에서 자주 쓰는 단어들의 어원도 배울 수 있다.

‘양은’이란 이미 일제 강점기에도 있었던 금속으로 그릇에 많이 썼다. 양은洋銀이란, 은 같은 색을 띤 금속이되 서양에서 왔다는 뜻으로 명명되었다. 양복도, 양장도 그런 방식의 명명이다. 구리에 아연과 니켈을 섞어 만든다.

 술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우리가 생맥주를 호프라고 부르는 건 맥주에 들어가는 홉에서 왔다는 것은 와전이고 정설은 오비맥주에서 ‘호프’라는 말을 프랜차이즈 상호로 쓰면서 시작된 일이다. 호프 hof는 독일어로 광장이라는 뜻이어서 오비맥주에서 열 평 이상 큰 가게는 오비 호프였고, 그 보다 작으면 오비 베어라고 상호를 썼다.


 돈이 그냥 벌리나요.’

이 한 마디가 이 책을 대변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주문이 들어오면 그때서야 반죽을 하기 시작해서 음식을 낸다. 메밀은 재빨리 삶지 않으면 퍼져버리므로 국수틀 아래에 설설 끓는 솥이 있게 마련이다. 아주 차가운 물에 헹궈내므로, 사리를 짓는 이의 손은 늘 빨갛게 붓고 얼어 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육수 뽑는 걸 하루도 미뤄본 적이 없다. 개업하고 30년이 훌쩍 넘었다. 얼마나 고단하고 긴 싸움이었을까.

 새벽 4시에 일어나 불 피우고 만두와 여러 가지 빵에 쓸 반죽을 준비해야 한다. 37년째 만두를 빚고 있다.

 포장마차의 포장이 날아갈 것 같은, 아니 실제로 훌렁 날아가던 태풍이 불던 날도 문을 열었다. 새벽 3시. 포차가 닫는 시간이 되었다. 손님이 있건 말건 그 시간에 정확히 문을 닫는다.




 변화를 거부하고 지금까지 살아남은 음식점이 노포老鋪는 아니다.

불고깃집으로 유명한 한일관의 주력 메뉴는 처음엔 장국밥이었다. 대전역 앞의 전설적인 신도칼국수도 처음엔 냉면집이었다. 부산역 앞 차이나타운의 만둣집 신발원은 공갈빵, 호떡, 계란빵, 꽈배기가 주 메뉴였다.

 노포도 핵심 메뉴를 바꿀 만큼 변화한다. 

다만 그들이 지키는 것은 경쟁력은 떨어져도 지켜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을 지키는 것이다.

 이 책은 정말로 정말로 음식점을 소개하는 책이 아니다.

근대의 역사책이기도 하며, 노포들의 근면함, 성실함, 그리고 음식에 대한 정직함을 배울 수 있는 철학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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