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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원 Sep 11. 2021

나는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독후감160

예전에 어머니의 우울증을 옆에서 겪어본 적이 있다.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다. 나는 그때 엄마에게 어떻게 다가갔을까? 나는 해드린 게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시간이 해결해 주었다고 생각했는데 책을 읽어보니 시간이 지난다고 자연히 해결될 우울증이 아니다. 우울증은 병이며, 병은 전문가의 영역이다.

우울증에 시달리고 지쳐 있던 엄마에게 무조건 나는 엄마 편이라고, 편해질 때까지 마음 놓고 울어도 된다고 곁에서 묵묵히 기다려주지 못했던 나를 기억한다.

브런치 작가분들 중에도 우울증으로 힘들어하시는 작가분들이 계신다. 나는 얼마나 같은 편에 서서 좀 더 깊게 그분들의 글에 동감하려고 했을까? 책 표지에 입체적인 빠알간 하트가 그려져 있는데 하트 표면을 따라 선인장 가시가 일렬도 삐죽삐죽 솟아 있다. 저 가시에 찔리는 것보다 더 큰 아픔이겠지. 진물 나고 베이고 쓰리고 물러 터지고 곪고 아프고 아픈 게 우울증 이리라.

조금이나마 예전 어머니가 겪었던 아픔과 슬픔을 헤아려본다.




 그 고통을 끝낼 버튼은 오직 자살밖에 보이지 않는

 너의 고장 난 세상을 사람들은 모르지.

 죽음이 마지막 희망으로 보인다는 걸

 사람들은 모르지.


작가는 초등학교 선생님이라는 살아오던 공간과 직업을 버리고 세계여행을 떠났다.

예측할 수 없게 된 미래에 그동안 번 돈과 앞으로의 시간을 몽땅 투자했다. 사직과 꽤 긴 여행으로 입게 될 경제적 사회적 손실은 여행을 통해 얻게 될 찬란한 것들에 비해 작다고 생각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될까. 얼마나 많은 경험을 하게 될까. 오랜 우울증의 망령에서 벗어나 깨끗이 나아 있을까.

그렇게 떠난 세계여행에서 일주일 만에 버스 전복사고로 사랑하는 친구를 잃었다.

버스에 밑에 깔려 꼼짝도 못 한 채 그나마 움직일 수 있는 부분만 부르르 떨며 고통을 삭이고 있다. 감각이라곤 전혀 느껴지지 않는 오른쪽 다리와 오른팔, 어디에 제대로 끼어버렸는지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 왼쪽 다리는 불에 덴 듯 뜨겁다. 구겨져 깔린 공간에 쇠 냄새와 기름 냄새가 가득하다. 그나마 들어오는 공기도 갑갑하고 역하다.

 깔려 죽는 게 이런 거구나. 조금만 더 압박이 가해지면 온몸의 장기가 퍽 하고 터질 것만 같다. 간신히 버텨오던 뼈들도 그대로 부러질 것만 같다.


 버스에 깔린 채 생각했다.

버티면 살 수 있다는 점에서 우울증과 버스 사고는 같은 선상에 있었다.

고통의 정도는? 비슷했다. 놀랍게도 비슷했다. 

어쩌면 우울증이 더 힘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온몸이 부려져 누워 있을 때와는 달리 우울증으로 아플 땐 의지가 약해서 그런 거라는 말을 계속해서 들어야 하니까. 심지어 날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까지.

 하루 이틀도 앓고 지나가는 것도 아니고 몇 달을, 심하면 몇 년을 그런 상태로 지내야 하니까.

우울증의 고통은 버스 전복 사로고 버스 아래 끼인 것보다 더욱더 고통스럽다. 꾀병이 아니었다.


 괴사 범위가 더 넓어져 죽은 피부와 근육을 다시 긁어내야 한다.

왼팔에 주렁주렁 링거 줄을, 오른팔엔 굵은 호스와 진물을 빨아내는 기계를 달고 오른쪽 팔다리에 붕대를 감고 다녔다. 그건 그래도 ‘보이는 아픔’이었다. 그렇게 다니는 게 참 기뻤다. 환자복을 입고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내 모습은 더할 것도 덜할 것도 없이 아픈 사람이기에, 누가 봐도 아픈 사람. 아무도 몰라주던 고통을 사람들이 드디어, 그것도 먼저 알아주었다. 뜻밖의 선물을 받는 것만 같았다.

 찾아오는 이 모두가 얼마나 힘들고 아프냐고 빠짐없이 물어봤다. 그 말에 얼마나 목말랐던 걸까. 아픔을 알아주는 공감의 말들에 깊게 베어 벌어져 있던 마음의 상처가 한 땀씩 꿰매 졌다. 오래된 마음의 상처가 아물고 있었다. 힘들었지만 행복했다.


 아픔을 알아주는 사람들이 그저 고마웠다.

눈에 보이지 않으니 우울증을 겪고 있는 사람도 자신이 아픈 줄 모른다. 남들 말이 맞나 보다 한다. 세상은 아파하는 걸 약함으로 규정하기에 사람들은 애써 아픔을 묻고 강한 사람이 되려 한다. 그게 아픔을 더 키우는 일인 줄도 모르고.




 어떻게 우울증이 완치되는지 보다는 우울증은 마음에 암과 같은 못된 세포가 살고 있는 것이라고 주변에서 알아주었으면 한다. 치료받지 않으면 정말로 죽어버릴 수도 있으니까. 우울증은 그만큼 무서운 병이니까. 누구나 걸릴 수 있는 병이지만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면 정말 죽을 수도 있는 병이니까. 나는 당신 편이라고, 편해질 때까지 마음 놓고 울어도 된다고 곁에서 묵묵히 기다려주는 내가 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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