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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원 Oct 16. 2021

달과 6펜스 /독후감165

 작가 서머싯 몸 (William Somerset Maugham, 1874-1965)은 오래전부터 고갱 (Paul Gauguin, 1848-1903)을 소재로 한 소설을 쓰고 싶었다. 그렇게 쓰인 소설이 [달과 6펜스]이다. 오랜만에 미술이나 화가를 소재로 한 소설을 읽는다. 마지막 읽은 소설이 앙리 루소 Henri Rousseau와 그의 작품에 관한 하라다 마하의 소설인 [낙원의 캔버스]로 기억한다.

내가 사랑하는 책에 내가 좋아하는 미술이 소재인 글은 나를 행복하게 만들기에 충분조건이다.




소설에서 찰스 스트릭랜드가 고갱이다.

허구인 스트릭랜드와 실제의 고갱, 둘의 삶이 동일하지는 않지만 충분히 유사하다. 스트릭랜드의 삶이 훨씬 더 극적이다. 그는 비정상적인 사람이다. 런던에서 증권 중개인 일을 하던 부유한 사십 대 남자는 오직 그림을 그리기 위해 아내와 아이들을 떠났다.

 폴 고갱 정도 되면 그의 천재성, 예술가적인 기질 그리고, 그림에 대한 비상한 열정으로 말도 안 되지만 처자식을 버리고 홀연 단신 떠났다고 하면 어느 정도 이해할 만했다.

하지만, 그를 아낌없이 지원해주며 스트릭랜드의 천재성을 한눈에 알아본 친구이자 화가인 더크 스트로브를 읽으며 답답해 죽은 줄 알았다. 계속 끊임없이 도와주는데 무시당하며 욕먹는 스타일이다. 그는 생의 후반에 과연 복을 받을 수 있을까? 물질적으로 소소한 앞의 일들은 그러려니 했지만 와이프도 빼앗기고, 집도 빼앗기고. 빼앗긴 건지 주었다고 해야 맞는 건지.

 그 이후 화자인 ‘나’와 우연히 만나 체스를 두는 상황에서 스트릭랜드와 스트로브의 아내, 이 둘은 전문 사기단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스트로브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저 그 사람 마음을 기쁘게 해주고 싶어서 그럽니다.”

 나의 입장에서 스트릭랜드를 이해하기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해 포기해버렸지만, 스트로브는 답답하고 울화통이 터져도 이해해보려고 노력하게 된다. 하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처음 시작이 어렵다.

 다음은 스트로브를 가장 잘 설명한 문장이 아닐까 싶다.

‘그래도 스트로브는 구제할 길 없는 어릿광대이면서도, 아름다움에 대해서만은 자신의 영혼처럼 성실하고 정직한 사랑과 이해를 가지고 있었다.’


 여하튼 [달과 6펜스]는 스트로브가 아닌 찰스 스트릭랜드에 대한 글이다.

천재 예술가들의 면모를 이해까지는 아니어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소설이다. 우리 모두에게 내재된 보편적인 욕망을 천재 화가는 억압된 현실에서 벗어나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내가 보기엔 마음대로) 살며, 그리고 창조하는 것이다.

 다음은 스트릭랜드를 가장 잘 설명한 문장이 아닐까 싶다.

‘파리에 살면서도 그는 테베 사막에 사는 은자隱者보다 더 고독했다. 그가 친구들에게 바란 것은 오직 자기를 혼자 있게 내버려두라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지향하는 것에 온 마음을 쏟아부었다. 그것을 추구하기 위해 그는 자신뿐만 아니라 남들까지 희생시켰다(자기 희생쯤이야 많은 사람들이 하지만). 그에게는 비전이 있었다.’


 스트릭랜드, 스트로브와 그의 부인은 시계의 시침, 분침, 초침 같다.

서로를 바라보는 법이 없다. 계속 한쪽 방향으로만 돈다. 설령 마주친다 해도 각자 자신의 속도로 자신이 관심 있는 것만 바라보고 가는 각각의 시침, 분침, 초침이다. 각자의 열정을 위해 달려만 가고 어떤 결실도 없다. 성격을 빗대어 굳이 따지자면, 가장 느린 시침이 스트릭랜드일 것이고, 그다음에는 스트로부 부인, 그다음에는 가장 빨리 달리는 초침이 스트로브일 것이다. 안타깝게도 분침은 서 버리고 말았다.




 타히티는 오랜 방랑 끝에 이른 곳이며, 이곳이 바로 그가 자신의 명성을 확립시켜준 그림들을 그려낸 곳이기도 하다. 스트릭랜드는 폴 고갱처럼 타히티에서 죽었다. 비참하게 죽었다고 해야 할지 ‘다 이루었다’ 하면서 죽었다고 해야 할지 스트릭랜드를 보아서는 판단되지 않는다. 그건 독자의 몫이다. 그는 너무나 상식적으로 비정상적이었기 때문에. 모든 그 이유는 자신이 그리고자 하는 그림 때문이었다.

 소설 어디에도 제목으로 쓰인 달과 6펜스는 나오지 않는다.

달과 6펜스가 어떤 의미인지도 독자의 몫이다. 나는 어찌하다 보니 작품 해설을 읽어버렸다. 그래서 옮긴이가 적은 달과 6펜스의 의미를 읽은 후로 다른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그냥 작품 해설에 갇혀버렸다. 소설을 읽고 작품 해설을 읽기 전에 달과 6펜스가 어떤 의미일지 곰곰이 생각해보는 것도 서머싯 몸과 폴 고갱에게 조금 더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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