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성원 Nov 13. 2021

현대미술은 처음인데요 /독후감169

“여보! 이 통조림에는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아?”

이번 주에 읽고 있는 책 표지를 보여주며 내가 묻는다.

 모노그램으로 디자인한 라벨에는 4개의 다른 언어로 각각 상품명을 적어 시장에 내놓았다. 당시 이 통조림이 가격은 통조림과 같은 무게의 금값으로 책정되었으며, 지금은 그보다 훨씬 더 비싸게 거래되고 있다.


           예술가의 똥, 정량 30그램, 신선하게 보존됨, 1961년 5월 생산되어 저장됨

‘그렇지! 통조림 안에 들어있는 게 똥이니까 나도 와이프에게 질문도 하겠지. 그 안에 들어가 있는 게 쉽게 상상할 수 있는 것이었다면 무엇하러 말을 꺼내겠어’

이렇게 이번 주 어느 날, 똥은 우리 부부의 대화 주제가 되어버렸다.




 그럼 난 이 작품을 보고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피에로 만초니 Piero Manzoni는 이 작품을 통해 예술가에 대한 컬렉터의 기대와 미술 시장을 함께 조롱하려고 했다. 같은 해에 그는 이런 기록을 남겼다. “컬렉터가 작가에게 친밀한 무언가, 정말 개인적인 무언가를 원한다면, 여기 예술가가 직접 싼 똥이 있다. 이 똥이야말로 진정한 작가의 것이다.” 

만초니는 예술작품으로서의 오브제가 소비주의와 상업주의의 메커니즘에 철저히 속박되었다는 것을 비판하고 싶었다. 사실 이 작품은 주요 미술관이 한 캔을 억 단위로 구매하고 있다. 5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만초니의 <예술가의 똥>은 미술 시장의 본성과 부조리함을 재치 있고 신랄하게 비판하는 작품으로 여전히 남아 있다.


 마르셀 뒤샹 Marcel Duchamp이 남성용 소변기에 ‘R. Mutt’라고 사인해 1917년 뉴욕 독립미술가전에 출품했을 때, 위원회 측은 작품이 아니므로 전시할 수 없다고 이를 거절했다. 모름지기 예술가는 독특하고 섬세한 솜씨로 공들여 작품을 만드는 숙련된 창조자라는 생각이 이어져 왔는데, 뒤샹은 스스로 ‘Ready Made’라고 지칭한 이 작품으로 그 생각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현대미술 작품을 보고 사람들이 몹시 언짢아하는 이유 중 하나도 그런 장인의 솜씨가 빠져 있는 걸 눈치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트가 아티스트가 매력적인 것은 비즈니스가 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일본 작가인 무라카미 다카시 Takashi Murakami가 운영하는 카이카이 키키 주식회사 Kaikai Kiki Co., Ltd. 는 수백 명의 예술가를 조수로 고용해 다양한 아트 상품뿐 아니라 순수 미술품도 디자인하고 제작한다. 백만장자나 살 수 있는 작품도 만들지만 사탕과 함께 포장한 ‘스낵 토이’ 같은 수집할 수 있는 상품도 제작해 일반인들도 자신의 예술적 취향을 즐길 수 있게 한다. 그리고, 뤼이뷔통 Louis Vuitton과의 공동 작업으로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다양한 색상의 모노그램과 웃는 얼굴의 벚꽃 문양을 디자인해서 이탈리아에서 태국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패셔니스타의 핸드백을 장식했다. 2008년 로스앤젤레스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무라카미의 개인전에서 루이뷔통은 미술관에 매장을 통째로 들여와 운영하기도 했다. 그에게 미술은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화폐일 것이다.


사실 ‘이게 미술이야?’ 하고 묻기보다는 ‘뭔가가 예술로 변신하는 순간은 언제부터지?’라고 묻기 시작하면 모든 것이 훨씬 더 흥미로워진다. 예술작품은 제안이다. 벌거벗은 임금님 앞에서 벌거벗었다고 큰소리로 외칠지 말지 결정하는 사람은 관객 개개인이다. ‘이거 예술 맞아?’ 하고 묻는 충동을 잠시 억누르고 ‘이게 어떤 점에서 의미가 있지?라고 질문해 보면 어떨까?

매거진의 이전글 좁은 문 /독후감168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