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성원 Nov 06. 2021

좁은 문 /독후감168

앙드레 지드

 소설에서 인간관계는 복잡하지 않다.

제롬이 주인공이다. 제롬의 아버지는 일찍이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는 뷔콜랭 외삼촌 집에 매년 초대받아 여름을 그곳에서 제롬과 함께 보낸다. 여기서 문제인問題人은 뷔콜랭 외삼촌의 와이프인 뤼실 뷔콜랭 외숙모다!

 제롬은 외숙모 곁에 있을 때면 야릇한 거북함을 느끼곤 했다.

그것은 일종의 탄미와 두려움, 그리고 불안함이 뒤섞인 감정이었다. ‘뤼실 뷔콜랭이여, 이제는 더 이상 당신을 원망하지 않으렵니다. 당신이 내게 얼마나 몹쓸 짓을 했는지도 잠시 잊고 싶은 마음뿐….’

 어떤 몹쓸 짓을 했을까?

맨살이 드러난 팔을 내 목에 두르더니 반쯤 벌어진 내 셔츠 속에 손을 집어넣고는 웃는 낯으로 내가 간지러움을 잘 타는지 물어보면서 손을 아래로 점점 아래로 밀어 넣는 것이 아닌가..... 내가 어찌나 소스라치게 놀라 펄쩍 뛰었던지 그 바람에 세일러복은 찢어지고 얼굴은 홍당무처럼 벌게졌다.

이 사건은 분명히 제롬에게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너무나 제롬을 한 방향으로 치우치게 만들지 않았을까?


 뷔콜랭 부부에게는 제롬보다 두 살 많은 알리사와 제롬보다 한 살 어린 쥘리에트, 그리고, 막내인 로베르가 있었다. 제롬이 사랑한 이는 알리사였다. 알리사가 사랑하는 이도 제롬이었다.

 알리사의 엄마가 뤼실 뷔콜랭이다!

외숙모 방 문이 열려 있는데 나는 그 방을 지나가야만 알리사의 방에 갈 수가 있다. 

외숙모가 소파에 누워 있다. 그 뒤에는 중위 군복 차림을 한, 처음 보는 젊은 사내가 있다. 그녀가 담배 한 개비를 내밀자 그가 불을 붙여 주고 외숙모가 몇 모금 빠는 모습이 보인다. 드디어 알리사의 방문 앞이다. 방문을 살짝 밀자 소리 없이 그대로 열린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나를 돌아보지만 몸을 일으키지는 않은 채 소곤거리듯 말한다.

그런데 그녀의 얼굴이 온통 눈물범벅이다. 어렴풋이 그녀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제롬, 그 사람들에게 들킨 건 아니지? 자, 빨리 돌아가! 들키면 안 된단 말이야.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 불쌍한 아버지는 아무것도 모르셔…”

이 사건은 분명히 알리사에게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너무나 알리사를 한 방향으로 치우치게 만들지 않았을까?




 글을 읽다 보면 여러 고전들이 떠오른다.

뷔콜랭 씨네 딸들을 보면 [오만과 편견]도 떠오르고, 바람난 이들을 보면 [보바리 부인]도 떠오른다.

열네 살 소년으로서 자의식이라는 것이 생겨났을 때의 제롬을 읽으면 [데미안]을 읽고 있다는 착각마저 든다. 모두 다 그 시절 이야기이겠지만 제롬과 알리사는 서로를 사랑하는 것일까?

 

이것이 좁은 문이다. 

둘이 사랑해서 가는 길이 좁은 길이라면 업고 가든 안고 가든 둘이 가면 될 텐데 길이 좁아 못 가고 문이 좁아 못 들어간단다. 알리사가 제롬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다.

 ‘하느님, 무기력한 제 마음은 제 사랑을 억누를 길이 없사오니, 더 이상 저를 사랑하지 않는 법을 그에게 가르쳐줄 수 있는 힘을 제게 허락해 주옵소서. 그리하여 저의 공덕보다 훨씬 더 훌륭한 그의 공덕을 주님께 바칠 수 있도록…..’ 플러스 ‘주여, 아니옵니다! 주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시는 길은 좁은 길이옵니다. 둘이서 나란히 걸을 수도 없을 만큼 좁은 길이옵니다.’


 그 둘의 대화와 독백을 따라가다 보면 정말로 둘이 사랑한다고 속을 수도 있지만…

나는 정말 둘이 사랑했을까 싶다. 그렇지 않다면, 혼자서 한탄하고 혼자서 머뭇거리고 혼자서 의심하곤 한다. 삼각관계의 의심이 아니다. 청교도적인 사랑으로 서로서로 사랑의 폭을 좁게 만든다. 그냥 신앙과 사랑 사이에서 고뇌만 했다. 제롬이나 알리사 둘 다 사랑에 대한 생각이 한 방향으로 너무나 치우쳐졌다고 생각한다.

 혼란스러웠다. 희한한 사랑 이야기였고, 도대체 이 사랑은 어떻게 흘러가자는 것인지 궁금했다.

수많은 세월이 흐른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다양한 분석과 상호 모순적인 해석을 낳고 있다고 하니 다행이다. 나와 비슷해서…

매거진의 이전글 석유 전쟁 /독후감167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