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성원 Dec 04. 2021

제비뽑기 /독후감172

 푸른색 양복 차림에 키가 큰 사람이 주인공이든 범인일 것이다.

범인은 없었다. 단지, 인간의 평범한 행동 속에서 악의와 광기만이 엿보일 뿐이다. 무심한 어투로 잔인하리만큼 독자의 불안을 고조시킬 뿐이다. 그래서 독자인 나는 공감하기 어려워 불만을 느낀다.




 한 권에 들어있는 25편의 단편 소설을 읽는 것과 25개의 챕터로 이루어진 하나의 장편 소설을 읽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독자의 기대가 다르기 때문이다.

 후자라 생각하고 읽었던 나는 매 챕터에서 푸른색 양복 차림의 키가 큰 사람을 만났다. 읽으며 머릿속으로 연관을 짓기 시작했지만, 읽으면서 ‘25편의 소설을 읽고 있구나!’ 깨닫는다.

‘그럼, 허무하게 앞뒤 없이 끝맺는 이미 읽어버린 소설들을 나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독자의 인내심을 자극하는가? 무엇을 나로부터 끄집어내고 싶은 것일까? 

책 표지만큼이나 자극이 왔으면 좋겠다.


 오랜만에 읽는 한 편의 멋진 추리소설일 줄로만 알았다.

다 읽고 나면 추천해주고 싶은 주변에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도 생각해 두었다.

 A를 만나고 싶지 않아 피하니 더 싫어하는 B를 만난 격이다.

책 읽기를 하다 보면 내가 고르는 책書임에도 불구하고 좋아하지 않는 책을 피해 갈 순 없나 보다. 내가 가야 할 곳을 찾는 방법은 내가 가고 싶은 곳을 찾아보는 방법도 있겠으나, 내가 가지 말아야 할 곳을 찾는 것도 한 방법이다. 내가 읽어야 할 책을 찾다가 우연히 나와 맞지 않는 책을 만났을 때 배우는 교훈이다.

 결국, 추리소설 정도로만 생각했던 [제비뽑기]는 나에게 내가 원치 않았던 장르와 이야기들을 선사했다. 기괴했고, 어마어마하고 무시무시한 것이 아닌 평범한 악惡이었다.


 셜리 잭슨은 한없이 끝도 없이 평화롭고 행복한 정경과 상황을 적어 내려갈 수 있는 작가일 것이다. 단지 그런 아름다움이 존재하는 상황을 가만히 보고 있을 수만은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이어서 적는다. 주변과 이웃은 한없이 정상적인 하루를 보내고 있지만, 주인공 한 사람만 작가가 만들어 놓은 상황에 고립되어 고통을 겪는다. 그것이 직접적인 표현이 아니어도 좋다. 무언가 독자가 공감하지 못하는 암시여도 괜찮다. 그렇게 해서 그녀는 좀 더 적기 시작하고 그렇게 소설들은 마무리된다. 그녀만의 색깔로.




 ‘제비뽑기’는 책 [제비뽑기]에서 마지막 25번째 단편소설이다.

마을 광장 한편에 돌더미가 쌓여 있다. 어떤 아이는 자신의 주머니를 이미 돌멩이로 가득 채웠고, 또 다른 아이는 가장 매끄럽고 둥근돌을 고른다. 이내 마을 주민들은 검은 상자에서 제비뽑기를 한다. 허친슨 씨 가족이 당첨되었다. 허친슨 씨 집안은 아이 셋과 부부로 총 다섯 명이다. 다시 다섯 명은 제비를 뽑는다. 허친슨 부인이 당첨되었다. 누군가 꼬마 데이비 허친슨에게 자갈 서너 개를 쥐여주었다. 그리고, 마을 사람 모두 그녀를 향해 돌을 던진다.

매거진의 이전글 원미동 사람들 /독후감17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